먼저 이 글을 쓰기는 써야겠는데 마음이 불편합니다. 제 학부모님 중에는 입시학원 원장님도 계시고 학원 선생님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반 아이, 학부모님도 해당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제 조카도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이들의 마음 불편함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주행으로 운전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깜빡이 넣고 차선 변경하라고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자식이라면 이대로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모라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내 자식도 사는 길이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브레이크 살짝 밟아가며 깜빡이 넣어 다른 길로 접어들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가던 길로 쭉 주행하다가는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에 급브레이크 밟아서 사람 다치고 차 다칠 일이 생길 것 같기 때문에 많이 염려가 되어서입니다.
이번 방학에도 우리 반 아이들은 여전히 바쁘게 생활했을 겁니다. 코로나 4단계라도 어떤 식으로든(대면이든 비대면이든) 학원은 갔을 겁니다. 4학년 2학기 과정을 이미 다 배웠을 겁니다. 심지어 중학생 단계까지 마친 아이도 있을 겁니다. 영어학원은 필수, 한자공부, 중국어, 심지어 독서하는 것도 학원에서 공부로 배웁니다. 이런 선수학습의 여정은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시작되어서 대학에 들어가면 그제야 대장정이 끝나나요?
학원 공부, 선행학습은 왜 할까요?
이렇게 힘든 일인데 왜 하고 있을까요?
공부 잘해야 → 좋은 대학 가기 → 좋은 곳 취직해서 → 돈 많이 벌기 → 성공 →행복한 삶
결국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거지요?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곳에 취직을 할 수 있겠고, 그러면 돈도 잘 벌 수 있게 되고 내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공식인 것이지요? 그렇게 될 수 있게 학원에서 선행학습으로 더 앞서야 유리하다는 계산이지요?
지금까지 왜 이 길을 모두가 함께 이렇게 전력 질주하고 있는 거지요?
갑자기 "땅!"하고 출발 총소리 나니까 너도 나도 달리는 한 무리 경주마처럼요.
불안하니까 그렇겠지요.
공부 잘해야 → 좋은 대학 가기 → 좋은 곳 취직해서 → 돈 많이 벌기 → 성공 →행복한 삶
이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어야 그나마 안심이 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왠지 우리 아이만 뒤쳐질 것 같으니까요. 이 시스템을 선택하지 않는 건 불이익을 자초하는 일일 것 같으니까요. 이 시스템으로 해서 잘 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으니까. 그것만 크게 눈에 들어오니까. 더 확신을 갖고 달리게 되는 거겠지요. 이 길로 가다가 실패한 많은 사람들, 다른 길로 가서 성공한 사람들은 볼 수가 없는 시야가 좁아진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공식이 이제는 틀렸다면요?
이 길이 맞는 길인 줄 알고 줄곧 갔습니다. 온 힘을 다해서 갔습니다. 끝까지 쉬지 않고 갔습니다. 도착하니 그 길이 아니랍니다.
“이 길 아니에요. 죄송합니다만 잘 못 오신 겁니다.”
이런 외침을 그제사 듣게 된다면요?
다른 길로 다시 가려면 너무 까마득해서 너무 늦어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 온다면요?
비록 이 길이 아니란 짐작이 되더라도 다른 길로 나아가야 할지 아닐지 의심이 자꾸 드니까요. 누구는 맞다고 하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고 이럴 때는 팔랑귀가 되는 거지요. 더 헷갈리고 더 확신이 서지 않는 거지요. 차라리 원래대로 하는 게 안심은 되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잘못되어도 같이 잘 못 되는 거니까 ‘보통’은 되겠다는 위안입니다. 몇 년 후에 확 바꿔질 세상은 지금 서서히 진행되지만 감이 오지는 않으니까요.
엄마가 공부해야 알 수 있는 일이니까요.
‘세상이 왜 이렇게 불안하지?’
‘내 자식 계속 이런 방법으로 공부해 가도 맞는 것일까?'
이런 의구심이 먼저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뭔가 다른 변화에 대한 민감성은 공부를 해야 센스 등이 하나씩 하나씩 세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면 세상이 왜 이런지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지도 서서히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긴급한 공부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여전히 우리 아이 좀 더 성적 잘 오르는 길이 뭘까? 이런 것은 머리 싸매고 공부합니다. 영향력 있는 엄마 통신망(좋은 대학 보낸 엄마의 정보) 알아내서 따라다니면서 필기하며 배웁니다. 그러면서 내 자식 미래를 위한 공부, 세상 읽는 공부는 전혀 하지 않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심정인지도 모릅니다.
공부하지 않는 부모가
변화도 모른 체,
관성에 따라
자식의 미래에 관여하는 게 제일 위험하다.
어떡하지요?
세상이 엄청나게 변해 가는데, 예전 공식은 먹혀들어가지도 않을 텐데, 그 공식 그대로 대입해서 자식의 미래에 관여하면 자식의 미래까지 망치게 만들 것입니다.
공부하면 다른 세상이 보입니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아이가 잘 자랄 거라는 확신도 듭니다. 하지만 실천하려니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학원 공부, 선행학습은 학원에서 시켜줍니다. 부모는 돈만 대어주면 됩니다. 이 공부는 엄마가 직접 키를 잡아주고 함께 실천해 나가야 하는 일입니다. 아이와 함께 정성 들여 식물 가꾸듯 해 나가야 하는 공부입니다. 학원 성적처럼 바로 결과가 보이는 일도 아닙니다. 서서히 드러나는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긴 여정입니다. 다시 조바심이 날 겁니다. 실패할까 봐 두렵기도 할 겁니다. 이러다 내 아이까지 망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결국 학원에서 선행학습 시키고 원래대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좋은 대학 간 게 반드시 좋은 곳 취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요?
대학 안 가도 좋은 곳 취직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면요?
좋은 곳 취직 안 해도 돈 잘 벌 수 있는 세상이라면요?
다시 이 질문을 던져봅니다.
공부 잘해야 →좋은 대학 가기 →좋은 곳 취직해서 →돈 많이 벌기 →성공 → 행복한 삶
지금까지 내가 철떡 같이 믿고 있었던 이 시스템이 시스템 오류라는 것을 마지막에 알게 된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요즘처럼 그냥 있어도 바로 감지되는 세상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이 시스템을 점검해봐야 할 시점은 아닐까요? 내 자식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