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코로나 팬데믹을 함께 겪어내고 있습니다.
처음엔 누군가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처음 발생했던 지역의 국가, 주민들을 원망하고 바이러스를 옮긴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미 예견된 팬데믹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었더라도 더한 바이러스가 우리를 덮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인간들이 저지른 환경파괴가 원인이라는 것도 알았고, 기후는 재앙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던 말이 쏙 들어갔습니다. 서로 책임 전가시키고 실랑이 벌이느라 시간 낭비했다가는 더 빨리 함께 멸망한다는 사실도 인지했습니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 더 권력을 가진 사람, 더 힘이 있는 사람, 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움직이면 세상은 더 빨리 바뀐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더 빨리 더 많이 알게 된 사람들이 더 앞장서서 이미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도 지금에사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권력이 있고 더 힘이 있는 사람들도 이 위기를 극복해 내느라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더 빠르게 어쩌면 혁명처럼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연대적인 실천이 진행될 거라는 예상과 희망을 함께 가져 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의 삶의 목적은 평소보다 훨씬 낮추어졌습니다.
당장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먼저 확보해야 할 상황 앞에서 고차원적인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여력이 없어졌습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삶의 목표가 낮추어진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여력이 없어진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 의미만 남기고 스스로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곁가지 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던 일들이 다 사라지고 삶은 단순해지고 단정해졌습니다.
곁가지 다 치고 나서 마지막 남은 이것이야말로 삶의 엑기스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삶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라고 한 번에 정리해서 손에 꼬옥 쥐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이것을 잘 붙들고 잘 살아보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 한 가지에서부터 삶의 목적도 찾고 의미도 발견하고 해야 할까 봅니다. 이 한 가지는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내어야 하는 내 가족이었습니다. 잘 살아내어야 하는 내 가정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엄마가 더 중요해졌다고 세상이 거듭 말하는 건 이 이유 때문일 겁니다. 가족 그리고 가정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서 삶의 목적도 삶의 의미도 찾아나가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목적과 의미가 아니어도 지금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뜻일 겁니다. 그 의미 있는 일을 엄마가 척척 더 잘해 낼 것이라는 우리 모두의 희망과 선한 책임감을 조심스럽게 지우는 것입니다. 사실 이미 엄마는 더 잘해 내고 있습니다.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MKTV(유튜브 방송)에서 최근에 ‘내일 수업’이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같은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상의 루틴을 지켜 내세요.
코로나 블루라고 하잖아요. 기약 없는 격리와 단절에 기분도 처지고 행동도 느려지고,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잖아요. 일상의 흐름이 다 깨어졌잖아요. 기분 꿀꿀해지니까 더 많이 먹게 되고, 활동은 줄고 운동하지 않으니까 더 살은 찌고, 몸 무거워지니까 자신에 대한 비하감도 더 들고, 기분이 나쁘니까 자녀들에게 가족에게 더 짜증내고…….
예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하리라는 기약은 현재는 모르겠잖아요. 일상의 루틴을 지켜내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상황에서 오늘 이 하루의 일상의 루틴을 지켜내는 것이 앞으로 닥칠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도 덜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제시간에 밥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잘 챙기고, 가족이랑 보내는 시간도 갖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전화도 챙기고, 잠깐 확보해서라도 독서시간을 갖는 등……. 이런 작고 사소한 일상을 잘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일상의 루틴을 잘 지켜내는 것이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이잖아요.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와 내 가족은 무너지지 않게 도울 수 있겠다는 부모로서의 유능감과 자신감이잖아요. 이런 가족과 가정 안에서의 나의 통제권은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통제권이 생긴다는 말이잖아요. 나의 일상의 루틴만 잘 지켜내어도 삶의 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실천해 보면 이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 것입니다.
저도 자가격리 2주일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2주간 이중 삼중의 일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 벌어졌었지요. 이 상황을 어떻게 잘 겪어낼까 걱정이 되었고 고민했습니다. 일상의 루틴을 깨지 말자고 다짐했었지요. 시간이 없으니까 더 일찍 일어나 방안에서 운동을 했고, 스트레칭도 더 열심히 했습니다. 밥도 잘 챙겨 먹고 시간이 없어도 쪼개어 독서시간도 확보했습니다. 일상의 루틴을 지켜내니까 다른 것도 할 만하다는 통제력이 생기더라고요. 일상의 루틴을 지켜낸 덕분에 2주간의 격리기간을 잘 이겨내었습니다. 그냥 흘러 보낸 게 아니라 통제하여 겪어내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더 잘 해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뿌듯함도 생기더라고요.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극정성으로 도우세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삶이 훨씬 더 의미 있어진다고 합니다.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 심지어 식물을 돌보는 일조차도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면 그 의미는 훨씬 더 깊을 겁니다. 내 가족, 특히 내 자식은 돕는 일을 의무감이라고 생각해 버릴 때가 많으니 말입니다. 해야 하는 일이라서 마지못해서 밀린 숙제 억지로 하듯이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사실 지금은 엄마가 번아웃될 지경이잖아요. 엄마가 가장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인데, 누구를 도울 여력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실천을 해 보면 그게 아니라네요. 내가 의무감으로 해야 할 일보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을 주라고 합니다. 내 자식 챙기는 일은 안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의무감이라고 먼저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생각을 바꿔 보면 어떨까요? 내 자식, 이 어린 생명들은 나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니까 내가 기꺼이 돕겠다는 마음으로 해 보면 정성으로 돌봐진다는 말입니다. 같은 일인데도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의미 있는 일도 되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다네요
부모를 의미 있게 살게 하려고 보내준 신의 선물이 자식일 거라는 생각으로 내 자식을 챙기면 어떨까요? 도움이 필요한 내 자식 온 정성으로 돕는 일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되어주는 부모가 되는 것만큼 좋은 부모는 없는 것 같아요.
코로나 팬데믹이 금방 끝나지는 않는다고 하잖아요. 적어도 5~6년은 지속될 거라고 합니다. 초기는 몰라서 우왕좌왕을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우왕좌왕을 계속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지켜낼 가족이 있는 부모는 더 그래야 합니다. 이제는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밥도 잘 챙겨 먹고 일상도 잘 지켜내어야 합니다. 내 가족과 가정을 돌보며 잘 살아내어야 합니다.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코로나 덕분에 많은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어떤 식으로든 도약해 있을 거고 진화할 수 있을 겁니다. 내 가정도 우리 가족도 잘 생존해 있을 것입니다. 생존을 훨씬 넘어서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더 성장하고 의미를 찾은 가족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루틴을 지켜내기 위해 애쓴 엄마의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인 덕분일 겁니다. 자신을 도우랴 가족을 도우랴 고군분투한 엄마의 애달픈 헌신 덕분일 겁니다. 생존, 의미 있는 삶, 둘 다 지켜낸 나의 ‘엄마’ 덕분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