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다 하는 명예퇴직을 나는 선택하지 않는 이유

by 엄마의 삶공부

내 나이 58살이고 정년퇴직이 만 5년 남았다.

자의든 타의든 내 나이쯤 되면 승진을 하지 않은 평교사들은 학교 현장을 거의 떠난다. 우리 학교도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교사이다. 내 위로는 아무도 없다. 이번 여름 방학을 앞두고도 내 나이 또래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교실 현장을 떠났다. 당황스럽고 마음 한 켠이 썰렁하기는 했다.


‘내가 늙어 보이진 않을까?’

‘눈이 안 보여서 안 되겠다.’

‘동료 교사들에게 민폐 되면 어쩌지?’

‘아이들과 학부모님도 싫어할지도 몰라.’

‘교장, 교감선생님도 나이 먹은 내가 있으면 불편할 거야.’


가장 건강한 시기에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던 동료들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도움이 덜 되겠다는 마음에서 명예퇴직을 선택하는 선생님들의 속 깊은 결정에는 나도 박수를 보낸다.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적당한 시기에 은퇴를 선언하고 현장에서 물러나면 많이 아쉬워하면서도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과 같은 이유일까? 나도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닌지 헷갈릴 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명예퇴직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실 교사는 명예퇴직을 조금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인 이유도 숨어있다. 일반 회사처럼 누군가의 눈총(^^)이 없어도 미련 없이 명예퇴직을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연금(돈) 체계 때문이다. 교직생활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명예퇴직을 해도 경제적인 손해를 거의 보지 않는 시점이 온다는 것이다. 명예퇴직 최적의 나이(연금이랑 명퇴금, 현장에 있으면서 받을 수 있는 월급을 계산해서 가장 이익이 되는 지점)도 교사들끼리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오히려 명퇴하고 학교 현장에 나가서 강사로 뛰면(이 표현을 한다) 학교 현장에 남아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 퇴직금은 따로 받고 또 강사로서 받는 월급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은 강사가 늘 필요하니까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강사를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명퇴한 교사들도 내 주위에는 많이 있다.






이런 극복해야 할 여러 상황들과 만나는 지점에 내가 교사로서 서 있다. 나에게 유리한 선택지도 내 앞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명예퇴직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명예퇴직을 선택하지 않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정년퇴직하기까지의 남은 5년간을 내가 꼭 하고 싶은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 같은’ 교사가 아니라 ‘진짜엄마 같은’ 교사로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교사는
엄마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하늘로부터 허락받은 사람입니다.


제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여정 중에 어느 날 권영애 선생님의 이 말씀을 만났다. 가슴에 천둥을 울렸다.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교직생활 처음, 좋은 교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름의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결국 한계를 만났고 풀리지 않는 매듭이 늘 있었다. 그다음은 ‘사랑이 가득한 교사’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나만의 최선을 다해 보아도 결국은 그 한계와 풀리지 않는 매듭을 또 만났다. ‘좋은 교사’, ‘사랑이 가득한 교사’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엄마 같은 교사’가 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이 든 시점부터는 교사로서의 직업 정체성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방법적인 것을 하나 더 가르쳐주려 안달하던 마음이 내려졌다. 대신 아이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교사가 되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 마음 먼저 챙겨지면 방법은 언제 들이밀어도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들의 마음 챙김을 위해서 내 마음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결론에도 도달했다. 하지만 뭔가 한 가지 풀리지 않는 마지막 매듭이 있었다. 그것을 교사생활 끝자락에 만났다. 마지막 매듭을 풀 수 있는 해법인 것 같았다.


‘엄마 같은’ 교사가 아니라 ‘진짜엄마 같은’ 교사로 살아보는 것이다. 코스프레 엄마가 아니라 진짜 엄마처럼 교사로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엄마는 아니지만 생물학적 엄마 마음 그대로를 장착한 사람으로 교사생활을 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 경지에 도전해 보겠다는 것이다. 신이 이미 허락해 주셨다고 했다. 허락해 주셨다는 건 하면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말이다. 허락해 주신 게 아니라 신이 요구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 교사로 살려면 엄마 같은 마음으로 교사해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 말이다. 지금까지 그것도 모르고 엉터리 교사 짓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수학공식 하나 더 가르쳐 주는 게 좋은 교사인 줄 착각을 하고 교사를 했으니 말이다. 엉터리 교사짓 했던 것 다 바로 잡아놓아야 한다. 숨어있는 교사의 철학적인 의미, ‘교사= 엄마’ 여야 하는 이 삶을 실천하며 남은 5년을 살아내고 싶다.


엄마로 살아가는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34년 엄마로 살아왔으니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엄마로서 내 자식 위해 져야 할 선한 십자가의 의미도 잘 알고 있다. 이 십자가를 기꺼이 져 보겠다는 말이다. 그런 나로 살아갈 수 있는지 나에게 도전장을 내민 기간이다. 피로 섞인 내 자식 키우기도 여전히 힘들었다. 하지만 엄마로서의 여정이 얼마나 감동적인 여정인지도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내 자식처럼 사랑하고 싶은 이 경지를 생생하게 실천해 보고 싶어서이다. 내 마음의 지경을 한없이 넓힐 선하고 선한 도전이다. 신도 허락해 주신 이 귀한 기회를 절대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솔개의 선택’이라는 동영상은 볼 때마다 뭉클하다.


솔개는 다른 새들에 비해 오래 사는 동물이랍니다. 70~80년을 산다네요.

40년 정도 살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도 닳아서 무뎌지고 날개는 무거워져 날기도 힘든 볼품없는 모습이 된답니다. 이때 솔개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네요. 이대로 서서히 죽어 갈 것인지? 힘든 갱생의 과정을 거쳐 다시 태어날 것인지?

갱생을 선택한 솔개는 바위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튼답니다. 먼저 자신의 부리로 바위를 쪼고 쪼아서 낡고 구부러진 부리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쫀답니다. 닳아 없어진 부리에 튼튼한 새 부리가 나면 그 부리로 이번에는 낡은 발톱을 다 뽑아버린답니다. 그래야 새 발톱이 나니까. 마지막은 무거운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버린 답니다. 새 깃털이 돋아나도록 하기 위해서

반년에 걸친 갱생 과정을 잘 겪어낸 솔개는 완전히 다른 새로 변신을 한답니다.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라 새로운 30년을 살게 된답니다.



나도 솔개처럼 남은 이 기간을 내 삶의 갱생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선하게 갈고닦는 것부터가 나의 갱생의 출발이다. 내 마음이 선하고 맑아야 진짜 엄마 마음이 되니까. 진짜 엄마 마음이 되어야 내 아이들을 엄마처럼 선하게 도울 수 있으니까. 헌신하는 마음으로 돌볼 수 있으니까. 온 정성으로 챙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니까.




갱생의 과정(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장을 제대로 돕고 싶다. 아이들의 성장을 제대로 도우려면 교사가 먼저 성장해야 할 것이다. 마음이 자라는 것을 성장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내가 배운 것 열심히 실천해봐야 깨달아지고 그러면서 성장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 잘 가르치고 싶어서 배운 것 내가 먼저 실천한다. 내가 먼저 깨달아지면 아이들에게 적용해 본다. 아이들에게 적용하면서 나도 아이들도 깨닫고 함께 성장하고 그러는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갱생의 과정이다 생각되고는 예전 교사생활할 때보다 훨씬 많이 배우고 실천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는 더 휙휙 변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내 나이 먹었다고 나이 먹은 지식을 가르치면 안 된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 지식을 가르치려 열심히 공부하고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러니 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새로운 지식, 도움 되는 지식으로 업데이트하려고 공부하고 적용하는 과정 또한 제게는 갱생의 과정이다.



이다음의 갱생 과정이 쭉 계획되어 있다. 더 선한 일들을 아이들과 함께 해 낼 여정이다. 사실은 순전히 나를 위한 여정이다. 내가 가장 업그레이드될 기간이다. 솔개는 환골탈태의 힘듦을 기꺼이 이겨내고 다시 30년의 더 높은 비상의 기회를 얻어냈다. 이런 환골탈태의 기회가 5년이나 내게 주어진 것이다.


엄마로 살아가는 삶만큼 나를 도전하게 하고 힘듦을 감수하게 하는 존재는 내게는 아직 없다. 그 존재인 우리 반 아이들이 24명이나 내게 있다. 아이들을 위해 온 정성과 헌신의 노력을 기울일 기회다. 사실 내가 더 성장하고 점핑할 기회임이 이미 짐작된다. 새로운 부리, 발톱, 날개가 돋아날 시간이다. 이 갱생의 과정 덕분에 정년퇴직 후의 내 삶이 또 얼마나 사람답고 고양된 삶일까! 나는 퇴직 후 얼마나 하늘을 잘 날아오를까! 신이 주신 특별한 기회인데 놓치면 절대 안 된다. 내가 명예퇴직을 절대 선택하지 않는 이유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