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배움
언제부터인가 나는 알아차렸다. 나는 진심일 때만 그것이 동기가 된다.
외부의 무언가는 동기가 되지 않았다. 내면에서 들리는 진심만이 동기가 되었다. 진심이 아니라면 얼마 안 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반대로 하고 싶어 하는 무언가는 미루려고 해도 어떻게든 언젠가 그것을 하게 되어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줄곧 생각해 왔다.
때로는 속지 않으려 했다.
혹시나 “나는 동기가 진심이어야만 그것을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변명이지는 않을까. 내가 나도 모르고 있는 무언가를 피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경계하기도 했다. 실은 그렇게 까지 경계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표면적으로 변명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동기가 진심일 때, 풀어 말하자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일 때, 필요하다고 느끼는 일일 때 그 일은 잘 실행될 뿐만 아니라 성장도 빨랐다.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 다소 강제될 때보다 성장은 효율적이었고 성과의 질이 좋았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어디까지나 단기간에 불과했다. 마치 설레는 감정만으로 불같이 시작한 연애 같았다.
결국 멈추게 된 어느 시점에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시작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동기만 가지고는 무엇도 지속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심인 동기로 무언가를 진행하는 초기에는 기분이 좋기 때문에 나는 그 기분을 즐기고 싶어 했다. 내킬 때 운동하는 것은 즐겁지만 근육을 키우는 일은 어렵고 힘든 것이었다. 나는 근육을 키우고 싶어 했지만 본능적으로 즐거움에 끌리고 있었다.
진심인 동기만 따라가면서 살아가도 될까? 누군가에겐 될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질문이 꽤나 여유롭게 들린다. 내 삶은 저런 태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내 상황도 허락하지 않고, 내 마음도 허락하지 않는다. 본성은 좋아하는 것 같다. 내면에서 우러나온 동기는 아주 효과적인 트리거다. 그것은 시작을 도와준다. 힘차게 등을 떠밀어서 상쾌하게 달리게 해 준다. 하지만 그 상태는 얼마 가지 않는다. 스스로 달려야만 하는 시기가 온다. 그때부터는 다리가 아파오고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끼면서, 달리기 시작한 이유를 기억하면서 애써 달려야 한다. 중간에 쉴 수야 있겠지만 중요한 건 꾸준히 달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을 때 보이지 않던 것이 점점 보이게 되고 새로운 곳에 달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동기의 짜릿함만 찾아다니기에 삶은 꽤 길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