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배움
나는 자아를 억누르고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명함이라고 생각한다.
자아를 억누른다는 것은 자아의 표출을 참아내는 것이다. 자아의 표출은 최선의 행동이 아닌 경우가 많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자아의 표출은 ‘기분’의 표출을 수반한다.
언짢은 기분은 아주 빠르게 솟아올라서 외부로 드러나기가 쉽다. 기분의 표출은 감정적인 행동이므로 최선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과 이성이 충돌할 때는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최선의 행동을 선택하고 싶다. 기분의 표출을 막으려 할 때는 멈추게 된다. 아무것도 아무 말도 않고 멈추어서 내 감정을 인지하게 된다. 이는 어려운 일, 매 순간 신경 써야 하는 일이지만 그렇기에 의미 있다.
최선의 행동을 방해하는 자아의 형태로, 나를 표출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내 생각과 가치관은 말로 뱉어내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 대해 말하는 일은 재미있다. 그렇게 재밌게 말하다 보면 상대방은 어느새 나와의 대화를 꺼리게 된다. 상대방은 나에 대해 그리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내 생각을 굳이 솔직하게 모두 말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러는 편이 더 낫다. 내 생각은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대화에서 최선의 행동은 경청이다. 경청이 내 자아의 표출을 참으면서 상대방이 마음껏 자아를 표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라는 점은 신기하다.
최선의 행동을 방해하는 또 다른 나의 본성은 나를 믿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나는 내 판단을 믿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내가 아끼던 반지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반지가 없다는 걸 깨달은 곳은 식당이었다. 가방 안을 살펴볼까 하다가, 내가 가방 안에 반지를 넣는 습관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 두고 온 거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반지를 찾아보았다. 집에는 반지가 없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가방을 뒤져보았는데 맨 아래에 반지가 깔려 있었다. 다행스러우면서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이런 사소한 일에서조차 최선의 판단을 내리지도, 나를 잘 알고 있지도 못했다. 겸손했더라면 식당에서 가방 안을 꼼꼼히 살펴보았을 것이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이리도 어렵다! 무지를 받아들여야 함을 이해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무지를 받아들이는 일은 다르다. 실제로 받아들이려면 노력해야 한다. 어떤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고 인지해야 한다.
인간의 자아는 항상 최선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듯하다. 최선의 행동은 자연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최선의 행동, 현명한 행동은 나와 다른 누군가와의 충돌과 내면의 자아와 이성의 충돌을 다 이겨내고 인내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를 억누르려고만 하면서 살아가는 건 힘들고 외로울 수 있다. 그래서 자아를 적절히 표출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표출의 대표적인 형태가 창작, 예술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