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 이파리

by Isen

나무로 지어진 처마 아래 그늘에서 등받이 없는 길다란 나무 벤치에 앉아있다. 앞에는 새파란 숲, 그 속에는 매미 네 마리가 서로의 울음소리를 따라하듯 왱왱 울고 있다. 그 작은 몸집에서 이렇게 요란하게 주변을 가득 채우는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나뭇잎들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그 움직임이 모두 같은 박자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 제각각인 것 같기도 하다. 가까이 있는 이파리는 크게 흔들리고 멀리 있는 이파리는 자세히 보아야 그 흔들림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비슷한 진폭이리라. 간혹 머리 위로 윙윙 무언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벌일까. 벌인 것 같다.

여름에 이 정도 날씨와 그늘이라면 몇 시간은 이곳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책이 없다. 고개를 들어보면 햇빛을 처음으로 받는 이파리들이 숲의 머리에 머리띠처럼 둘러져 있다. 햇빛을 처음으로 받는 이파리들은 시간과 장소에 무관하게 그 투명하고 쨍한 연두빛깔이 똑같다. 지금 저 이파리의 색은 내가 몇 년 전 서울숲에서 본 이파리의 색과 똑같다. 그때는 여름의 끝자락이었고 지금은 한여름이지만 말이다. 왼쪽에는 컨테이너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 있다. 건물이라고 하기에도 머쓱한, 그렇다고 건물이 아니라면 딱히 부를 명칭도 없는 그런…건물. 간이 건물이다. 뻔하게 생긴 지붕에서 쭉 내려오다가 툭 끊어져서 끝이 둥글게 말려있는 영문모를 전선도, 이파리가 흔들리는 모양새로 진자운동을 하고 있다. 택시 장식품처럼 햇빛을 받으면서 왔다간다.

전선의 진자운동을 구경하다가 그보다 조금 뒤에 있는 한 이파리에 시선을 뺏긴다. 꽤 큼직하지만, 그렇다고 주변 이파리보다 눈에 띄게 크지도 않은 한 이파리가 유독 크고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듣고서 깜짝 놀라 좌우로 고개를 내젓는 것처럼, 쉴새없이. 그 운동은 마치 줄기로부터 떨어지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듯 했다. 그 이파리 외의 주변 이파리들은 여름 매미의 리듬과 햇살을 기분좋게 즐기며 가볍게 몸을 튕기듯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은데, 딱 저 이파리만 처절하게 온몸을 휘젓고 있다. 바로 옆의 이파리는 신기할 정도로 잔잔히 흔들거리는데도 말이다. 바람이 그렇게 얇게 불지는 않을텐데, 이파리가 마침 바람을 맞기 좋은 자세로 자란건지 아무튼 신기한 광경은 계속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참 그 이파리의 몸부림을 보고 있었다. 저 정도의 움직임이라면 언제든 떨어질 듯 싶다가도 여름의 생기를 가득 머금어서 두툼하고 튼튼해보이는 줄기를 보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저 이파리는 떨어지고 나면 어떨게 될까? 그야 당연히 죽을 것이다. 죽는다라는 표현에 어색함이 들지만 일단 그렇다고 해본다. 아무리 저렇게 큰 이파리라고 해도 줄기로부터 떨어지면 아직 썩지 않고 남아있는 가을과 겨울의 바삭한 낙엽들 위로,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그 차가운 바닥에 내려 앉아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무언가 그것을 짓누를 것이다. 무겁든 가볍든, 신발이든 또 다른 이파리든. 시간이 지나 그 초록빛이 흐릿하고 건조한 색으로 바뀌어가면 지금처럼 누군가의 시선을 차지할 이유도 없어진다. 그럼에도 저렇게 거세게 흔들리고 있다. 죽기 위해 사는 것처럼, 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마지막 잎새”가 떠오르면서, “그런데 잎은 떨어지면 죽는 게 아니라 죽으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냥 놓아버린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떨어지고 싶나?”라고 혼잣말한 다음 그렇게 말한 것을 알아차리고 쩝하며 침을 삼켰다.

천천히 일어섰다. 일어서보니 또 다른 풍경이다. 앞으로 깊이 놓아진 숲의 분위기도, 기온도, 향기도 달라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파리들과는 다르게 구름은 풍성히 멈추어 있기만 하다.

돌아가기 전에 나는 유난히 거세게 흔들리던 그 이파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조심스레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 이파리는 조금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이 좁은 난간 비슷한 구조물 위로 따라 걸어야 했다. 그 구조물은 분명 인간이 지은 것이긴 하지만 도대체 언제 지어진 지 감도 안 올 정도로 이 숲과 동화되어 있는 오래된, 모래같은 난간이었다. 나는 은연 중에 내가 조심스럽게 걸어갈 거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아주 평온하게 난간 위를 밟으며 이파리에 다달았다. 가까이서 보니 그 큰 이파리는 보통 크기의 이파리 세 개가 붙어서 하나의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덩굴 식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구조였다. 나는 서슴없이 이파리 옆으로 왼손을 살짝 갖다 대어 그 움직임을 멈추어보았다. 왼손에는 뚜렷한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떼었다. 마치 어리광부리던 아기에게 장난감을 쥐어주어서 조용해졌다가 장난감을 빼앗으면 즉시 광광 떼를 쓰는 것처럼 이파리는 손을 뗀 즉시 왕왕 흔들렸다. 내 왼손이 당황스러워질만큼. 어쨌든 가까이서 보니 그 독립적인 움직임이 더 신기했다. 바로 위에, 바로 아래에 붙어있는 녀석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살랑살랑 제 할 일을 하는 듯 했다.

슬 가려고 하니 아쉬움이 걸음을 무겁게 했다. 내가 무언가 남겨두고 가는 건 아닌가. 외면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이파리는 간이 건물에 가려지기 전까지 참 요란하고 한결같을 것처럼 흔들렸다. 나는 가슴을 열고 고요한 걸음을 옮겼다. 지금도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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