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가장자리를 달리며 일깨운 것들
바이크 타는 사람들을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기마족이라고 칭하는 어느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저공비행:정충익). 난 그 말이 참 와닿았고 마음에 들었다. 전생이란 게 있다면 나는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도대체 두바퀴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그 감각에 내가 왜 그렇게 몰두하는 것인지 나도 모른다. 오랜 시간 수렵 활동을 통해 생존을 유지했던 선조의 삶의 방식이 유전 정보로 전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이전 시대와 비교해 본다면 정말 안전한 곳이다. 바이크를 타기 전에는 이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 ‘안전’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면 안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내가 바이크를 탄 것은 안전하게 울타리 쳐진 세상의 가장자리(위험이 시작되는 곳)에 가 닿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한 세상에 적응해 냈던 내 안의 DNA가 스스로를 일깨우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을지.
바이크를 타게 된 후로 바뀐 게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가장자리’ 내지는 ‘경계’에 서게 되는 게 무섭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가 제시하는 표준, 도덕, 바람직한 바운더리, 이상적인 가족, 성공 모델 등등…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의 여유와 운신의 폭을 넓혀 주었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서울공화국에서 수도권 바깥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경계 너머에도 삶은 있고 자연이 있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좁은 생활환경과 관념 속에 나를 가둬두고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새 나는 복잡한 서울에서 한 걸음 빠져나와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높은 하늘과 논밭이 펼쳐진 풍경을 마주하며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바이크를 타면서 일어난 변화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바이크를 탈 것 같다. 미래에 내연 기관이 점점 사라진다 해도, 화석 바이크를 털털거리며 낭만을 즐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두바퀴를 계속 타겠다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위험 요소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의식의 날을 지속적으로 가다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를 가두고 있는 모든 유·무형의 경계 안팎을 넘나들기 위해,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탐색하고 발견한 것들을 글로 남길 것이다. 이름 없는 경험에 이름을 붙이고, 존재하지만 존재한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내 안의 연료가 다 소진될 때까지, 나는 그렇게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