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시선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에게
가까운 사람이 바이크에 입문하겠다고 하면 결사반대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간간이 눈에 띄는 바이크 사고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자기 일이 아닌데도 바이크 타는 사람들을 파렴치하며 이기적인 사람으로 싸잡아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예 대놓고 죽어버려라고 저주를 퍼붓는 것도 예사다. 정말 왜 이렇게 과민반응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개인적인 견해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런 곱지 않은 사회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같이 기어코 바이크에 입문한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 독립한 지 10년이 넘었기에 부모님이 안다면 반기지 않겠지만 꼭 그들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4년이 지난 아직도 말씀드리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하고 나의 바이크 라이프에 대해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이건 내 욕심이니 아직은 마음속에 고이 접어두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몹시 죄책감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내 오래된 마음 습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그러니 바이크를 타겠다고 결심한 것은 부모님이 반대할지도 모르는 것을 나를 위해서 선택한 일종의 반항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학창 시절에 크게 반항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놀고 싶은 것도 꾹 참고 공부만 했다.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과의 갈등을 통해 건강한 이기심을 발달시킬 때 나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나를 부모님과 가까운 어른들에게 동일시하며 살고 있었다. 당연히 부모님의 기대를 건강하게 좌절시키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이 자신의 삶에 윤곽을 그리고 색채를 더할 때 나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모르고 탐색의 시간을 거쳤다. 만약 바이크에 입문하지 않았으면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르는 채로 주변에 휩쓸려 살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에게는 남다른 감각이 있고 그것을 선명하게 표현하는 것에서 의미와 동기를 얻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동안 너무 많은 말을 참아왔고 삼켜왔고 스스로 제한했다는 것을. 내 개성을 무시했고, 지우려 했고 남들이 내 관점을 비하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을. 바이크 타는 것이 무서웠던 것처럼 나는 내가 되는 것이 무서웠다. 첨예한 ‘다름’을 드러내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 바이크를 입문하려는데 예상되는 위험 요소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인 장벽으로 인해 고민을 하고 있다면 한번 돌파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도 나처럼 바이크를 타도 괜찮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었다.
자신의 욕구를 기꺼이 책임져라. 남들이 비하한다고 해서 나조차 나의 마음을 무시하지 말아라. 원래 오랫동안 외면했던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일은 바이크를 타는 일 보다 더 어렵다. 중요한 건 바이크를 타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내가 내 삶을 통제하고 내 욕구를 존중하고 있느냐이다. 이 과제를 무시하면, 삶은 아무리 표면적으로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식상한 말이지만 진정 원하는 것을 얻고 싶으면 safe zone을 벗어나야 한다. 그게 장소적인 것이든, 관계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것이든 말이다.
하지만 함께 사는 배우자가 있거나 책임질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는 경우가 다르긴 하다. 종종 와이프 몰래(드물게 남편 몰래)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도 보았다.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말로 저질러 놓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상대방은 걱정과 함께 그런 감정을 존중받지 못했다는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현상은 관계 속에서 서로의 욕구를 안전하게, 그리고 건전하게 얘기할 수 있는 소통의 부재에 기인한다. 바이크를 몰래 탔다는 것보다, 애초에 바이크를 타고 싶은 마음조차 개방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는 게 핵심이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배우자와의 관계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바이크를 타는 것보다 관계 개선, 혹은 재설정을 우선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 또한 만만찮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