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느닷없이 바이크가 타고 싶어졌다.

정체된 삶을 흔든 예기치 못한 충동에 관하여

by 라이더 성음

33살이 된 새 해 벽두에 나는 혼자 잠수교를 산책하고 있었다. 춥지만 사람들로 활기를 띠는 저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득 차량들 사이로 바이크를 타는 라이더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두 번 본 풍경은 아니었기에 평소에는 가볍게 지나쳤을 그들이지만, 그날은 그러지 못했다.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분은 무엇인가. 생경한 느낌이어서 한참 동안 서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알아내려고 했던 게 기억난다. 뭐라고 딱 정의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이 한데 뒤섞여서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향수의 향기에 탑, 미들, 베이스 노트가 있듯이 그 감정적인 반응에도 그런 층위가 있었음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구분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인식한 감정은 ‘짜증’이었다. ‘저들은 저렇게 멋있게 달리는 데 나는 왜 못하고 있지?’ 뭉근하고 둔중하게 신경계를 긁는 느낌이 짜증이라는 걸 인식하고 나서 나는 꽤 놀랐다. ‘나도 저렇게 바이크가 타고 싶은 건가?’ 스스로 질문해 보았다. 쉽사리 ‘예’라는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슬금슬금 짜증이 난다는 것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정말 바이크를 타고 싶은 건가? 되묻다 보니 한 두어 시간 짜증이 나다가 휘발되면서 곧 이상한 흥분에 휩싸였다. 어쩌면 내 삶에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장면이 추가될지 모른다는 기대에 의한 흥분이었다. 이미 머릿속에선 멋진 라이더가 되어 사방팔방을 누비는 내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실제로 막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 자체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내가 바이크를 탄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바이크를 몰 수 있을지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짜릿한 상상 이후에 한참 동안 베이스가 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당시 나에게 바이크는 발톱을 숨기고 있는 야수처럼 위험한 것, 통제할 수 없고 치명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바이크에 의해 내 삶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쳐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는 불의의 사고로 다치거나 금전적 손실을 겪는 것, 이상한 사람과 골치 아픈 일에 엮이는 류의 일이 해당되었다. 모두 기존의 내 세계에는 들어 올 일 없는 일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꽤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주변에 바이크 타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입문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스쿠터가 아닌 레저용 바이크는 수동으로 기어를 조작하다는 것을 빼고는 아는 게 없었다.

설령 어찌 저지 해서 바이크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자. 안전하게 잘 탈 수 있을까. 제일 중대한 물음이었다. 당시 나는 바이크를 타면 언젠가는 사고가 나서 중상을 입거나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가까운 주변에서 바이크 사고로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대학 시절 잘 모르는 선배가 스쿠터를 타고 등교를 하다가 버스에 받혀서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고, 그의 수술비 모금으로 학과가 떠들썩했던 일이 기억났다. 그런 일을 내가 겪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런 안전상의 딜레마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래서 바이크 사고라는 게 어떤 것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영상으로 남아 있는 국내외 끔찍한 사고들을 접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영상들이 쏟아졌다. 라이더는 날아가고 바이크는 반파되었으며 잔해들이 흩뿌려졌다. 영화가 아닌 실제 사고 영상이어서 더 무시무시했다. 사실 너무 고어하다는 댓글의 경고에 따라 끝내 보지 않기로 한 영상도 몇 개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 사고들, 예방할 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만히 있는데 뒤에서 들이받는 불상사가 아닌 이상, 해당 영상의 주인공들은 내 눈에는 너무 무모하며 무리한 주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한 과속을 한다거나, 예측 출발을 한다거나, 무리한 칼치기를 한다거나 했다. 그러니 저렇게 타지 않고 얌전하게(?) 타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륜차 사고율도 찾아보았다. 당시 보았던 자료가 기억나지 않아 다시금 찾아보았는데 2023년 통계청 자료 기준으로 차량 등록 대수 대비 사고율은 1만 대당 이륜차 59.9건, 사륜차 61.7건으로 오히려 승용차의 비율이 더 높다. 그러나 치사율은 이륜차 2.3%, 사륜차 1.3%으로 이륜차가 1.8배 더 높다.

다만 이륜차 통계에는 배달 오토바이와 레저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두 집단을 나누면, 사고율 차이는 무려 15배다. 즉, 레저용 이륜차의 사고율은 극히 낮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통계치들이 누군가에겐 바이크를 영영 타지 않을 이유로도 작용할 것이다.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사고에 이르는 변수는 너무나 다양하고,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생각이라면 아예 타지 않는 게 맞다. 그러면 현재의 안온한 삶은 계속 이어질 테지만,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기회도 잃을 것이었다.


나는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가슴 뛰는 무언가를 늘 기다려 왔다. 33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잘 모르겠으며, 무언가에 억눌린 채로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무언가’의 정체를 밝히려고 몇 년간 여유 시간에 자그마한 골방에 양반다리로 앉아 명상에 매진했다. 깜깜한 마음속을 탐험하며 밝히는 일은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즈음 아무리 명상을 열심히 해도 삶이 나아가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느닷없이 바이크가 타고 싶어 졌던 것이다. 비록 취미에 불과하지만 바이크가 돌파구처럼 느껴진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마땅히 도전해야 했다. 지진처럼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바이크를 못 본 척하며 지나칠 수 없었다. 내 앞에 어떤 일이 놓여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바이크에 도전하는 경험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나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 거라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