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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Sep 06. 2019

인간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

읽는 인간에서 쓰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이야기 1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난문쾌답>> / 오마에 겐이치 저




글을 써 볼까 합니다.

지금까지 길지 않은 인생 동안 글을 쓸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지만, 자신이 없어 매번 미뤄왔습니다. 남의 글을 탐닉하는 읽는 인간인 제가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벌거벗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독서 감상문.


가까운 사람들은 '책 읽기를 좋아하니 지금까지 읽은 책들만 정리해도 글을 쓸 수 있지 않겠어'라고 묻지만, 막상 나의 언어로 써 보려고 하면 글을 읽을 때 느낀 감정이나 떠오른 생각이라는 것이 그닥 대단한 것도 아닌, 볼품없는 것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이럴 거면 안 쓰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노트북을 덮고 말았습니다.


내 안에 부유하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내는 순간, 그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될 것만 같아 겁이 났습니다.

때때로, 찍는 인간이 되기도 합니다. (Photo by @rudolf_zz)


몇 해 전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를 읽고 저와 같은 고민과 타협을 김영란 씨가 한 것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반갑기도 했습니다.

*김영란: 우리나라 사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소위 김영란 법으로 알려짐.


책 제목과는 달리, 쓸모를 의해서 독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라든지 (p.18), 여행을 갈 때에는 짐을 싸기도 전에 일정에 맞춰 어떤 책을 들고 갈지 고민한다는 부분이라든지 (p.20), 주부로서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해야 했던 고충이라든지 (p.21), 특히 책을 읽는 그 순간을 즐기는 나머지 정리도 제대로 해 두지 않았다는 점은 맞장구를 치고 싶을 정도로 공감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책이라는 키워드로 나와 김영란 씨가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니, 왠지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도 그렇다는데, 나의 책 읽기 습관은 결단코 나쁜 게 아니야. 그럼, 그렇고 말고. 하나의 스타일일 뿐이지,라고.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자신이 없다는 것을. 나의 생각과 감정의 깊이가 얄팍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확인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방어본능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인스타그램에 책 표지 사진을 찍어 올리고는 소위 [#책 읽는 여자]가 가지고 있음 직한 이미지를 간직한 채로 있는 것이 나의 보잘것없는 생각을 내미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용기란 몰락할 수 있는 용기다.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는 용기...
<<쓰기의 말들>> -은유


그런데 왜,
느닷없이 글을 쓰려고 하는가?


첫째. 글쓰기는 늘 미뤄오던 숙제였다.

독서를 지속해 오면서 내 안의 실체를 만들고 확인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느꼈고, 비록 지금은 자신이 없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며, 계속 읽어가다 보면,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 스스로가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 올 것이고 그것을 구체화할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가 내 안에서 자꾸만 무언가가 삐져나온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까지 내 안으로 들어오기만 했던 내용들이 이제는 나를 비집고 나와 어떤 형태를 갖추기를 원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책을 통해서든, 영화를 통해서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든, 아이를 키우며 회사일을 하며 느끼고 취득한 정보와 생각을 이제는 빚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언젠가 할 일이라면 이제 연습을 시작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그 문장이 나를 등 떠밀었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라면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백 여덟 가지다.... 배고파서, 힘들어서, 졸려서, 바쁘니까, 막혀서, 우울해서, 약속 있어서, 막막해서, 하루 남았으니까...
<<쓰기의 말들>> -은유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 테드 쿠더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글을 쓰는 사람을 동경합니다. 그래서 쓸 생각도 없으면서 글 쓰기 책 코너를 기웃거리다 만나는 책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읽는 것에서 그친다는 것일 뿐.


 <<쓰기의 말들>> <<글쓰기의 최전선>> <<글 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표현의 기술>> <<나는 왜, 쓰는가>> <<대통령의 글쓰기>>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 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다리 타기 하듯 읽어 내려간 지난날의 도서 목록들은 되짚어 보니, 모두 읽는 인간에서 쓰는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써야만 하는 근거를 찾아 어슬렁어슬렁 헤매던 어느 날. 타이밍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습니다. 전자책으로 다음에 읽을 도서 목록을 찾던 중에 필사에 도움이 될까 해서 펼쳐 든 <<따라 쓰기의 기적>> 에서 책 쓰기 코치를 자처하는 저자 송숙희 씨가 발랄한 필체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당신에게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한 자락이 있지 않나요?
 공유하면 참 좋을 생각이나 기술이나 노하우가 하나쯤 있지 않은가요?
그러니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쓰세요.
당신의 책을 쓰세요.


책 한 권 품지 않은 인생은 없다. 누구에게나 책으로 쓸 만한 이야기 하나쯤 있다. 그러니 당신도!라고 등 떠미는 순간, 알게 모르게 차 올랐던 [쓰고 싶다]라는 욕망의 물 잔이 '찰랑'하고 넘쳐흘렀습니다. 그동안 글쓰기를 동경하면서도 도망쳐왔었던, 그러나 한편으론 예열되어왔던 내면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셋째, 내가 여기 존재했음을...

아프리카의 스왈힐리족은 특별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도 누군가 그 사람을 기억한다면 사사(sasa)라고 하고요, 기억해 줄 사람마저 모두 죽어 더 이상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때라야 비로소 자마니(zamani)의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해요.

우리는 지금 살아있어도 이미 죽었을 수도 있고요, 이미 죽었어도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류시화


다시 쓰기를 두려워했던 나를 되돌아봅니다.


운 좋게도 그동안 만나왔던 책들이 좋아서였을까요. 무릇 글이란 거창한 결론 하나쯤은 내야 쓸 수 있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럴 바엔 시작도 안 해야지,라고 쉽게 포기했었던 시간들...


하지만 이제는 설익은 나 그 자체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래 위에 파도가 덮어쓰고 또 더 큰 파도에 덮여 씌어져 없어지더라도, 지금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존재했음을... 작은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내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겨보려 합니다.


이제, 글쓰기를 통해 진정으로 살아가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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