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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Sep 08. 2019

여행, 그리고 삶

진정한 여행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시작된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 not in seeking in new landscape, but in having new eyes.

- Marcel Proust (1871-1922)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이 있다.

 

1년에 한두 번은 오사카며 히로시마며 고베로 일본 여행을 오고, 계절마다 국내여행도 꼼꼼히 다니는 모습을 SNS를 통해 중계해주고 있다. 몇년 전쯤부터는 독일에 관심이 생겼는지 그렇게 좋아하던 일본 여행도 끊고 독일어 공부에 한창이더니,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 표를 찍은 사진과 함께 #떠나요 #여행스타그램 #독일 #베를린…으로 이어지는 태그가 잔뜩 달린 소식을 보내왔다. 5년 전 남편의 여권이 든 지갑을 도난당한 곳도 베를린이었기에, 조심히 다녀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가끔 한국에서 만날 때면 월급이 쥐꼬리만 하다며 푸념을 늘어놓고, 말도 안 되는 중소기업 사장님의 횡포에 씩씩대면서도, 여행을 가기 위해 못 그만두고 참는다는 그녀가 나는 참 부지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그녀가 내뱉은 한 마디.

 

넌 좋겠다.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 안달 나는 일본에 매일 있어서…


순간, 10년 정도 죽어있던 뇌세포의 어느 부분이 급하게 돋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도 일본이 동경의 대상, 여행의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콤비니 푸딩과 에비스 맥주에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신선함에 행복을 느끼며, 무언가 누리고 있다고 만끽하고 있다고 취해있던 그 시절이 있었지, 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론 지금의 나에게 익숙한 이 풍경이 누군가에겐 떠나고 싶은 낯선 곳이겠구나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가고 싶어 안달 난 교보문고 맘만 먹으면 맨날 갈 수 있잖아] 하고 둘러댔다. 없는 것에 대한 갈망, 새롭고 신선한 것에 대한 배고픔은 현재 있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려니, 생각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2014년 1월 경, 한참 독일 철학자들의 책을 탐닉하던 시기가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니 보고 싶은 대로 보인다고 했던가. 떠나라 낯선 곳으로 … 로 시작하는 CM의 한 구절이 뇌리에 콱 박히더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내 평생 유럽은 한 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2주 정도 휴가를 냈다. 평소 가고 싶었던 철학의 나라 독일도 가고, 사르트르가 구토를 했다던 프랑스도 가고, 사랑의 도시라는 체코의 프라하도 다녀와야지. 꼼꼼하게 스케줄도 짜고, 동선도 그리고, 가이드북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설레는 마음으로 유럽 여행길에 올랐건만.

 

여행은 싱겁게 끝났다.

나 홀로 배낭여행이 아니어서, 남편이 여권과 지갑을 도둑맞는 바람에 마지막 일정인 프라하에 못 가게 되어 그런 것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면, 찌들어 있는 일상에서와는 달리, 인생에서 엄청 소중한 무언가를 찾게 될 거라 생각한 막연한 기대가 가볍게 즐겨도 될 여행에 과다한 의미 부여를 하게 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찾고자 했던 그 무언가는 쾰른에도 파리에도 프라하에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것이 존재하기는 했을까.



모든 곳에 깃들어 있다.

스스로 가치를 부여한다면.


[사진인문학]이라는 책에서, 사진이란 누구나 아름답게 보는 장면을 이미지로 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기의 눈으로 아름답게 (혹은 달리) 인식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전통적으로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Aura)라면 유일무이한 진품만이 가지고 있는 현존성에 근거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나 대영 박물관의 로제타 스톤에서만 그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발터 벤야민은 19세기 이후 복제 시대에 있어 아우라의 정의를 아케이드와 구경꾼의 예시를 통해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다가설 수 없는 느낌’이라고 해석한다. 예술이라는 것이 먼 곳에 두고 특별한 때와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주체에 의해 ‘현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대상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친숙했던 풍경이나 인물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같은 사물을 보아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고, 또 같은 사람이라도 볼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특별한 장소, 특별한 날, 특별한 경험만이 좋은 사진을 만드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매일의 일상을 새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좋은 사진의 필수조건이 충족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여행을 정의 내리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 not in seeking in new landscape, but in having new eyes.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 Marcel Proust (1871-1922)



자신의 평생을 여행과 수필로 채워온 피코 아이어도 [여행하지 않을 자유]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다.
당신이 어디를 여행했는지, 얼마나 멀리 여행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당신이 어떻게 살아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진정한 여행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시작된다.

<<여행하지 않을 자유>> - Pico Iyer


그래. 진정한 여행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긴 여정(voyage)이다. 그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어떤 새로운 눈을 가지고 낯설게 바라볼 것인가. 스스로 어떻게 가치부여를 할 것인가.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그 하루는 어제와 차원이 다른 오늘이 될 것이다.

 

다시 나의 실패담으로 끝난 유럽 여행을 생각해본다. 쾰른에도 파리에도 프라하에도 없었던 그 무엇이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반짝이고 있음을 느낀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여행하지 않을 자유 우리가 잃어버린 고요함을 찾아서, 테드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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