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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Oct 11. 2020

엄마, 내 일기 훔쳐봤지?

엄마가 내 브런치에 자꾸 라이킷을 눌러요...

6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 엄마는 신세대까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평균 수준 이상의 디지털 습득력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40대엔 문자와 공인인증서를, 50대엔 스마트폰과 페북을 자식들 손 빌리지 않고 어렵지 않게 구사하였으니 이만하면 잘했음 잘했지 뒤쳐지진 않는다 생각한다. 게다가 엄마 특유의 모성애까지 발휘되면, 만년 대학생인 남동생의 수강신청까지 멋지게 끝내버리는 호연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그 이상은 버거웠는지 인스타그램까지 진출하진 못했다. 덕분에 엄마와 페북 친구였던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조용히 이사를 온 뒤로 유유히 인스타그램 활동을 즐겼다. 브런치에 조금 긴 글들을 쓰게 되면서 엄마가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사자가 볼 일은 없었기에 모녀간에 털어놓기 부끄러운 이야기, 이제와 쑥스러운 이야기, 사실은 속상했던 이야기를 맘 편히 풀어낼 수도 있었다.




문제는 몇 주 전. 다음 메인에 내 글이 올라오면서부터였다. 잘못은 내가 했다. 방정맞게. 가족 단톡 방에 실은 내가 글을 좀 써보고 있다는 것과, 그런 내 글이 다음 메인에 걸려있으니 한 번 가서 보시라고 귀띔을 해 드린 것. 그 날 이후, 엄마의 브런치 정주행이 시작됐다. 누가 봐도 우리 엄마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를 관심작가로 등록하더니, 지금까지 썼던 모든 글에 라이킷(브런치에서의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다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조금 뒤엔 아빠한테도 방법을 알려줬는지 같은 수법으로 아빠 이름이 도배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하아... 그렇게 라이킷 폭탄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우리 딸이 그런 생각을 했어~ 어머~ 엄마는 몰랐네! 진작 말하지’ 같은. ‘장하다 우리 딸. 작가의 길을 걷는 너를 응원한다’ 식의. 물론 엄마 아빠의 애정 어린 마음이 담긴 훈훈한 댓글이지만, 당하는 나는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마른오징어처럼 온몸이 뒤틀려 어찌할 바 모르겠고 곤혹스러운 댓글들이... 자꾸만... 자꾸만 달렸다.


참다못해 보이스톡을 걸었다.


다짜고짜

“엄마 쫌!!!!” 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엄마는 세상 달달한 목소리로

“어머 따~알, 이렇게 글을 많이 썼는데 왜 인제 알려줘~ 진작 알려주지~이”


(후우... 깊은 한 숨을 내쉰 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 쪼~옴! 창피해 죽겄어! 보는 건 말릴 수 없으니 이제 눈팅만 해주면 안 될까? 감상은 카톡으로, 응?”


“왜~애. 엄마는 우리 딸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너~어무 기쁘고 좋은데, 티 내면 안돼? 너무 야박하다 야~ 나는 그냥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쓰는 건데~”


... 하이고 두야...

입이 방정인 내 탓이오, 내 탓. 누굴 탓하랴.  


“알았어... 그럼, 적어도 엄마고 아빤거는 티 내지 말고 ‘독자’로서의 감상만을 남기도록!”


그렇게 합의를 보고 난 뒤 엄마는 소위 ‘티 안 나는’ 닉네임으로 바꿨고, 며칠 뒤 엄마의 세 자매 이모들까지도 실명으로 아이디를 파서는 줄줄이 나를 관심작가로 등록해주셨다. (카톡 아이디만 있으면 쉽게 브런치 가입이 가능한 이 편리한 시스템이 이리도 원망스러울 줄이야). 이모들과 엄마는 마치 새 아침 드라마가 시작된 것처럼 신나게 내 글을 읽고는 특히나 ‘친정엄마의 유산’이라는 글에서 다들 눈물바다가 되었다면서 카톡으로 감상평을 보내주셨다. 덕분에 구독자는 가족과 이모들을 포함해 5명이 늘었지만 기쁘기는커녕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끊었던 수전증과 다리 떨림, 손톱 깨물기 같은 온갖 불안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래... 이때까지는 아직 참을만했다고... 봐 말도 이쁘게 하잖아


그 후로도 나는 몇 개의 글을 더 발행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어김없이 라이킷과 댓글을 남기고 있다. (닉네임을 바꾼다고 바꿨지만 프로필 사진은 무려 손녀딸의 사진이니 빼도 박도 못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글은 읽혀질 것이 분명하다.


엄마의 댓글이 무서운 것도 그렇다고 더러운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피할 바에야 정면으로 부딪혀보자 싶어 공개적으로 이 글을 적어보기로 했다.




엄마, 내 일기 훔쳐봤지?


엄마에겐 조금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엄마의 존재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의식하지 않은 눈을 의식한다는 것은 같은 글을 써도 아무래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달리는 손가락을 멈칫멈칫하게 하니까. 게다가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라 더 그런 것 같다.


엄마는 내 일기를 자주 훔쳐봤다. 표현이 좀 거칠지만 나는 보여준 적이 없으니 봤다면 ‘훔쳐’ 본 것이고, 한 번은 아니니 ‘자주’라고 하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첩 위에 뭔가를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버릇은 일기 쓰기가 숙제가 아니게 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어진 습관이다. 매 년 한 권씩 적어 온 노트 속엔 나도 마주 보기 힘든 간질거리는 흑역사가 잔뜩 들어있다. 세상과 어른들을 향한 반항과 볼멘 목소리,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작당했던 크고 작은 비밀 약속,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남자 친구들의 이름과 풋내 나는 연애 스토리 같은 것도 물론 담겨있다.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쏟아내지 못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다이어리 속에 보관하며 찐한 감수성에 벅차오르던 그때 그 시절. 그렇게 한 자 한 자 적은 다이어리는 서랍 속 깊은 곳, 가방 속 깊은 곳에 잘 보관 해 두었는데...


어느 날 엄마와 언성을 높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다이어리에 적은 내용이 화두로 올라왔다. “너 그때 엄마한테 이렇게 말하고 아무개랑 어디 갔다 왔지!”라는 둥, “너 요새 누구 오빠 만나고 다니지”라는 둥, 나아가선 “나는 우리 딸이 남자들한테 그렇게 저자세로 안 그랬으면 좋겠어”라는 식의 비교적 자세한 얘기까지. 내 입으로는 절대 발설 할리 없고, 그렇다고 누가 우리 엄마한테 와서 꼬지를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지구 별에 유일무이 나 밖에 모르는 비밀을 엄마가 어떻게 알고 저리 말하는 것일까.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뿐. 나의 다이어리다.


차라리 모른 척이라도 하지. 엄마는 성격상 안 본 척 못 본 척은 못해서 꼭 티를 낸다. 완전범죄도 못할 거면서 왜 보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대로 트릭을 써서 밤 사이 잠든 동안 다이어리가 무사한지 아닌지를 점쳤다. 교과서와 노트 사이 몇 번째에 다이어리를 넣어 두었는지 기억하고 있다가, 다음 날 순서가 뒤틀려져 있으면 엄마의 범행을 의심했다. 그야말로 야밤에 펼쳐지는 엄마와 딸의 눈치 게임.


솔직히 말해 징글징글하게 싫었다. 볼게 따로 있지 일기를 왜 봐? 하면, 엄마가 그럼 그런 것도 못 봐? 하는 게. 나중에 알고 보니 일기는 절대 보는 거 아니란다. 거봐 내 말 맞잖아. 나도 애 키워보니까 보고 싶은 마음 이해는 되지만 보면 진짜 안 되는 거야. 설령 책상 위에 ‘나 보시오~’하고 펼쳐져 있어도, 조용히 덮어주지는 못할 망정 티 팍팍 내면서 비밀스러운 부분을 까발리면 안 되는 거였다고!


이제 다 지난 일이지만...




엄마!

사랑하는 나의 전여사님 보시오.


그 때 내 다이어리에 적혀있던 내용 때문에 엄마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겠지만, 그래서 하나뿐인 딸 걱정 때문에 좌불안석했던 거겠지만, 그래도 딸, 이렇게 어디 안 가고 잘 컸잖아. 그냥 지켜봐 줘도 괜찮은 거였잖아, 안 그려?


이제 내 나이 서른다섯.

다른 의미로 엄마는 내 글을 읽고 싶고 좋아해 주는 거지?

나도 그래. 그때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토 해냈던 마음이랑 지금은 결도 많이 다르고 조금은 성숙해졌어.


말을 걸러 할 수도 있고, 말이 어려우면 글로 꺼내서 다듬어 보려고 노력도 해. 


그러니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냥 좀 지켜봐 주면 안 될까? 나이가 들어도 우리 딸 걱정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야 너무너무 잘 알지만 한 발 뒤에서 멀찍이 바라봐주었으면 참 좋겠다. 옆에 꼭 붙어있지 않아도 그 맘 다 아니까. 알잖아. 엄마도. 내 마음.


나도 이제 보지 말란 소리, 댓글 좀 달지 말란 소리, 그런 섭섭한 소리 안 할게. 알았지?


약속!




【덧】

일주일  엄마는 드디어 인스타그램에 입성했다. 얼마 전 올린 글에 ‘커버 사진으로 올린 손 그림 일러스트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어요’라고 선전했던 문구가 화근이었다.  누굴 탓하리. 그때도 지금도 원인제공은 나다. 내가 했다. 엄마는 누가 봐도 엄마라는 티가 나는 아이디로 나를 팔로우했다.


세상에, 전화번호로 아이디를 만드는 사람이 어딨어!!!


인스타는 안들어 간다면서 오늘도 좋아요 누르고 간 사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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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illust by. @ishigak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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