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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May 01. 2021

◯◯씨, 회사 그만둘 거 아니죠?

「인디워커- 이제 나를 위해일합니다」박승오,홍승완 지음 /열린책들

만남에는 타이밍이 참 중요하다.

비단 사람과의 인연뿐 아니라 공간과 경험, 때로는 한 권의 책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만남이 된다.


5개월 간의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귀를 일주일 앞둔 시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의 분류는 ‘실용서’다. 말 그대로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담긴 책>. 뚜렷한 목적이 있는 만큼 필요에 의해 찾아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실용서를 ‘우연히’ 읽기란 매우 드문 일이다. 혹 지나가는 길에 요즘 잘 팔린다는 실용서와 마주하더라도 나의 필요와 맞물려 있지 않다면 ‘흐음~ 이런 책이 있구만!’하고 지나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리액션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 책은 그냥 지나가 주질 않았다.


우선, (미안하지만 1)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2) 독서 모임 식구들의 투표로 뽑혀 어쩔 수 없이 읽게 됐다.

게다가 (미안하지만 3) 표지도 내 취향은 아니라 전자 책임에도 불구하고 영~ 손이 가질 않아 첫 장을 펼치기까지 꽤나 밍기적대었던 책이었다.


그렇게 정 줄 생각도 없었는데 어머어머.


이 책은 내 삶에 찐득하게 달라붙어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주저하고 있던 나를 한 뼘 씩 한 뼘 씩 밀어내더니 기어코 무거운 한 발을 내딛게 했다.


열 페이지 읽었을 땐 열 발자국을.

스무 페이지 즈음엔 스무 발자국을.


296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땐 어느새 저만~치 밀려 나와 사부작사부작 일을 벌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독서 노트의 흐름에 맞게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 편집, 재배치하였습니다.




책이 물었다.


【당신은 직장인인가, 직업인인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직장인이고, 그 안에서 맡은 업무가 있으니 직업인 아닌가. 새삼스럽게.라고 대답하려던 나에게 책은 이렇게 말한다.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자신을 직업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착각이다. 직장은 남이 만들어 놓은 조직이지만, [직업은 시장에 팔 수 있는 특화된 전문성]을 말한다.

‘자립적 직업인’을 뜻하는 인디 워커는 전속력과 경쟁으로 대표되는 패스트 커리어(fast career)가 아닌,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차별적인 자신만의 직업을 찾아가는 슬로 커리어(slow career)를 지향한다.

_「인디워커 -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박승오, 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나만의 특화된 전문성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나에게 그런 게 있나...? 에이~ 그런 건 어딘가 잘 나고 똑 부러진 사람들, 누가 봐도 필살기로 보이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겠지...


밀어내는 내게 책은 다시 성큼! 다가와서 말한다.



【혹시 재능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재능에 대해 갖는 오해는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 오해는 재능을 선택된 소수만이 받는 〈신으로부터의 선물〉로 여기는 것.
두 번째 오해는 〈재능 talent〉과 〈강점 strength〉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것.
세 번째 오해는 재능이 직업과 일대일로 매칭 된다는 착각.
마지막 오해는 〈재능이 있다면 일찍 발견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으니 내겐 재능이 없다〉라고 결론 내린다.

_「인디워커 -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박승오, 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그렇담 혹시 …

나에게도 작디작은 씨앗 같은 재능이 있는 걸까? 있다면 그게 뭘까? 어떻게 찾는 거지?


반쯤 넘어가려던 찰나.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눈 앞에 있는 일들만 소화해 내기도 벅찬데 이제와 재능이니 전문성이니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람.’ 눈을 질끈 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실눈 뜨고 지켜보고 있는 나의 어깨를 툭 치며 책이 하는 말.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 인생을 어떤 순간들로 채우고 싶은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2040년이 되면, 당신이 알고 있는 것들 중 하나만 빼고는 모두 쓸모없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유일하게 쓸모가 있는 지식은 《당신 자신에 대한 앎》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의 몫이 될 것이다.

새로운 삶에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진정 나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답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를 질문해 보라. 릴케가 말했듯이 질문을 사랑하며 품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그 질문의 해답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_「인디워커 -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박승오, 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나의 하루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하루치의 인생이다. 알고는 있지만 잊고 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라며 ‘고갱님 그 하루를 도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나가시겠냐’고 뼈 때리는 문장으로 다그치는데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나를 나답게 하는 일들로 내 인생을 채워간다라...


그래, 뭐.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이나 해보자. 근데 이렇게 실컷 부추겨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여기까지 잘 왔다! 자기 탐색을 시작한 당신에게】

자기 탐색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관점이 필요하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강점) 나는 무엇에 살아있음을 느끼는가?(소망)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가?(가치관) 이 세 가지 질문의 접점이 곧 〈나〉이다.

_「인디워커 -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박승오, 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주머니를 탈탈 털어 주섬주섬 세어보니 그래도 한 두 가지 고개를 내미는 것들이 있었다. ‘일본에 있으니 일본어를 쓸 줄 알고...’ 그러다가도 내 안의 감시관이 얼른 제제를 한다. ‘이미 유튜브며 서적이며 시중에 좋은 게 넘쳐나잖아! 이것만은 빠삭하다 하는 전문적인 영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내에서 필요할 때만 써먹었지 가르쳐본 적도, 통번역을 프로급으로 해 본 경험도 없으면서 함부로 나서지 마!’


평소 같았음 ‘그럼 그렇지...’하고 끝냈을 나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 발자국만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근데 이건 어때? 밖에서 쓰는 일본어는 날고 기는 사람이 많다 치고, 집에서 쓰는 자잘한 표현이라면 주워 담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아이 둘과 일본인 남편, 시부모님과 지지고 볶는 일상이 그리 보편적이진 않잖아. 책에서 배울 순 없지만... 집 밥 같이 푸근하고 정겨운 느낌... 이름은... <가정식 일본어> 어때?’



【씨앗을 뿌리듯 작게 시작하라】

〈작은 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일을 크게 벌이기보단 위험 부담이 적은 소규모 프로젝트를 가볍게 시작한다. 놀라운 혁신은 처음부터 거대한 프로젝트로 시작된 경우는 별로 없고, 다만 여러 차례의 작은 시도를 하여 성공한 사례들이 대다수였다. 작은 실험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작은 실험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모든 씨앗이 좋은 흙에 자리 잡는 것은 아니며, 안착한 모든 씨앗이 싹이 트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씨앗들 가운데에서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세상을 향해 가볍게 씨앗들을 날리는 것이다. 대부분은 아스팔트에 떨어져 죽겠지만 일부는 흙에 떨어져 싹을 틔울 것이다.

_「인디워커 -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박승오, 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시작부터 거창할 필요가 없다. 씨앗을 뿌리듯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인 거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지만 내가 콩인지 팥 인지도 모르는 지금은 일단 뿌려 보고 뭐가 튀어나오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잔소리하듯 닦달하는 책에게, 잠깐만 기다려봐!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한 발을 내딛게 됐다. 클럽하우스에서 클럽을 만들었고, 방을 개설해 보았으며, 내용을 준비하고, 공지문을 만들고, 마이크 앞에 서 보는 용기도 내봤다.



【나를 나답게 하는 활동, 오티움 ótĭum】

라틴어인 오티움은 시 짓기, 악기 연주, 예술 감상 등 여가 활동을 의미하지만 보통의 취미와 그 깊이가 다르며, 마니아로서 그 활동에 푹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대가나 타인의 인정 같은 외적 보상이 아닌 스스로 오티움을 선택하고 배우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기쁨을 얻으며 그 활동을 점점 심화해 나간다.

오티움은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 있는 시간이자 스스로를 충만하게 하는 활동이다. 오티움은 꾸준히 몰두하다 보면 즐거움을 넘어 숙련의 수준에 이르게 되고 이에 맞춰 삶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곤 한다.

_「인디워커 -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박승오, 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사부작사부작 일을 벌이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한 지인이 말했다. ‘일도 하시면서 이렇게 자원봉사로 하시는 게 대단해요’ 한 편, 또 다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정대표님, 비지니스 하실 거예요?’ 상반된 반응에 정신이 아찔. 아니 아니에요. 제가 벌린 일은 자원봉사도, 비지니스도 아닌데요. 열심히 손사래를 쳤지만 나도 궁금해졌다.


돈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의에서 우러나온 자원봉사도 아닌 대체 내가 벌리고 있는 이건 뭘까.


그 대답을 오티움에서 찾았다. 그냥 재밌고 좋으니까. 잠을 줄여가며 푹 빠져보고 싶고, 더 해보고 싶어 지고, 그렇게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니까. 그것에 굳이 이유와 목적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근거리에서 이 오티움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분을 알고 있다. 비록 인스타그램 상에서 만난 인연이긴 하지만 이제는 내 삶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주고 계신 마마몽키님. 아무것도 아닌 나를 ‘센세’라고 불러주시며 몇 번이고 주저하는 나에게 ‘우리 같이 끼 부려봐요!’하는 그녀. 육아와 해외살이로 경력단절의 아픔을 호소할 법도 한데, 웬걸 경력에 더해 범접할 수 없는 실행력과 추진력으로 매일매일 벌크업을 하고 있는 마마몽키님의 행보는 이제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매번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그녀가 앞으로 무슨 일을 또 어떻게 벌일지 이제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더 이상 그녀를 엄마표 영어라는 단어에 가둬둘 수 없다!)


힘들시죠?

바쁘시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내가 묻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녀는 차로 10시간 남짓한 곳으로 비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려 이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꿈을 그리고, 영상을 찍고, 노래를 하고, 공부를 한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 일들을 왜 하는지 물어보면 이유가 따로 없다. ‘해야죠!’. 누가 시킨 것도, 돈이 나오고 떡이 나오는 일도 아니지만 순순하게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동기를 가지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마마몽키님. 이것이야 말로 진정 나를 나답게 하는, 살아있는 오티움이 아닐지.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라는 거요?】

그렇게 일 벌이기 선수로 지내다 짜잔 하고 복귀한 첫날. 회사 동료인 데키스기쿤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데키스기군의 정신이 버~언쩍 드는 한 마디.


“정아 씨, 회사에 마음 떠난 거 아니죠?”


아차차...


마지막으로 당부 하나. 혹시라도 〈나를 찾기 위해 퇴사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다. 커리어 탐색은 일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며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현장을 떠난 사색은 기쁨을 줄 순 있지만 통찰을 줄 수는 없다. 퇴사하여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해도 다시 현장에 돌아오면 전혀 생각지 못한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번아웃으로 단지 쉬고 싶은 것이라면 온전히 쉬는 데 집중하는 게 낫다. 천직을 찾고 싶다면 일과 병행해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작가가 없고 TV를 모니터링하지 않는 방송인이 없듯이 인디 워커는 일을 하면서 잠재력을 실현한다.

슬로 커리어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자립(自立)〉이다. 이것은 조직을 떠나 창업하는 독립과는 구분된다. 인디 워커는 조직 안에서도 자립적으로 일을 주도하며, 문제 해결에 앞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할 줄 안다.

_「인디워커 -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박승오, 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나 또한 늘 고민한다. 한 직장을 11년째 다니면서도 이게 나에게 맞는 일일까?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도 있을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B안에 정신 팔린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안다. 그것이 회사 안과 밖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귀를 하는 이 타이밍에 이 책을 만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지금 내게 꼭 맞는 처방전처럼. 복귀 전 복잡하고 가려웠던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효자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독서모임 북두칠성 사랑해요!!)  


허파에 바람만 넣으며 지금 하고 있는 그거 때려치우고 꿈을 좇아라! 하지만도 않아서 좋았다.


넓은 도화지 위해 마음껏 그림을 그린 뒤, 다 쓴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해 두듯이. 생각을 펼치고 다듬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데키스기군의 질문에 대한 답은 뭐냐고?


“그럼요!!!!
일은 일! 오티움은 오티움!
공과 사를 구분해서 성실히 일하겠슴미다!!!!”




▼사부작사부작 벌리고 있는 나의 오티움, 가정식 일본어

https://brunch.co.kr/@dailytokyo/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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