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유성호, 북이십일 21세기 북스
오늘도 지금 내 가방 안에는 두 사람의 죽음 기록이 들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록을 통해 그 사람이 지나온 삶을 더듬어 본다. 혹자는 이를 두고 죽음 기록이 어떻게 한 사람의 온전한 인생을 드러낼 수 있겠느냐고 말하겠지만, 얇은 죽음 기록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내게는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무게로 느껴진다. 그 사람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떻게 종결되었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_「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유성호, 북이십일 21세기 북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지금껏 읽어 본 책들 중에서도 마땅히 분류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도서 정보에는 분명 ‘인문’ 분야에 해당한다고 적혀있지만 책의 내용은 과학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철학이었고, 과거인가 하면 미래이기도 하였으며, 어떤 것들은 새로웠지만 또 어떤 것들은 변함없이 여전해 보였다. 무엇보다 죽음이지만 결국은 삶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법의학자로서 시신을 검시하는 저자의 가방 속에는 늘 누군가의 죽음의 기록이 들어있다고 한다. 매주 시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죽음을 사뭇 담담하고 과학적으로 보는 시선을 갖게 되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늘 다르게 가슴속을 울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고.
던져진 아이, 매 맞은 부인, 사랑한 남자의 아이를 밴 채 그 남자의 손에 의해 욕조 위에서 숨을 거둬야 했던 임산부의 죽음... 시체 한 구 한 구에는 그 주인이 살아온 인생 만큼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 했다.
법의학자로서 여러 기관으로부터 자문을 의뢰받는데, 그중 나에게 가장 많이 자문을 구하는 곳이 법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검찰, 세 번째는 경찰 순이다. 그런데 이곳들 말고도 나를 애타게 찾는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바로 보험회사다. 보험 회사에서야말로 사망 종류를 매우 중요시 여기는데, 짐작하듯이 보험금 지급 때문이다.
_「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유성호, 북이십일 21세기 북스
책의 1부에서는 여러 가지 죽음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말 없는 망자의 몸에 담긴 마지막 메시지를 해독해 내는 법의학자로서의 경험을 풀어내고 있다. 2부는 죽음을 알기 위해 먼저 삶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죽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고, 마지막 3부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마친다.
정면으로 마주 보기 어려워 늘 피해왔던 단어.
먼 미래의 일이라 늘 미뤄왔던 단어.
나에게 죽음은 그런 것이었다.
그런 죽음을 너무 신성시 하지도 경외하지도 말며 다만 직시해 보자고 저자는 말한다.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죽음이란 생명체가 그 수명을 다한 상태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생명의 존속이 다한 시점이 언제인지, 생명의 존속이 허물어져가는 상태가 어떠한지 그 삶과 죽음의 접경에 어떠한 심리적 풍경을 품게 되는지 등 전반적인 죽음의 경과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아는 바가 없다. 심지어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죽음은 매우 다른 의미의 결을 갖게 된다.
_「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유성호, 북이십일 21세기 북스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죽음의 의미도 성질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삶의 완성인가.
회피인가.
자살인가.
타살인가.
범죄인가.
사고인가.
질병인가.
수명인가.
하지만 어떤 경우에서든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내 삶이 주인이 나 인 것처럼 죽음 또한 나의 것 이어야 한다.
미국 통계를 보면 전체 보건 의료 예산의 10~12퍼센트가 삶의 마지막 기간 1년 동안에 쓰인다. 마지막 한 달 동안 쓰는 비용이 거의 5퍼센트가 넘는다. 삶의 마지막을 간신히 유지하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지출되는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 마지막 비용이 바로 중환자실 비용이다. 몸의 모든 혈관과 모든 구멍에 줄을 달고 생명을 연장하는 데 드는 비용은 사실 굉장히 비싸다.
(중략)
여러 인생행로를 내가 만들어 여기까지 왔는데 왜 삶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스토리를 내가 못 쓰고 다른 사람이 쓰게 하는 것일까? 내 인생의 마지막은 반드시 내가 종결지어야 한다.
_「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유성호, 북이십일 21세기 북스
작년 한 해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찾아온 해였다. 가까운 가족의 사망 소식이 연달아 세 번 있었고, 마지막 죽음을 애도하고 한 달이 지나 오래 품고 있던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울고 웃으며 떠나는 영혼의 안녕과, 새로운 영혼의 축복을 함께 기렸다.
지금의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꼭 하나를 믿으라면 언젠가 우리가 한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말을 믿고 싶다.
실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생각이 쉬이 정리되지 않은 채 시일이 많이 흘렀다. 아마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억지로 마침표를 찍기보다는 여기까지의 생각을 쉼표로 남겨둘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