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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Sep 06. 2019

기무치의 나라에서  김장 김치를 떠올리다

우리 집 김치가 제일 맛있지

한국에 다녀온 회사 동료가 집에서 담가온 김장 김치와 김치소를 나누어 주었다.


일본에서 지낸 지 몇 년이 되어가니 잊고 지내는 제철 단어들이 몇 가지 있는데 [김장]이라는 단어도 그중 하나에 속한다.


신혼집을 차리고, 첫 해 겨울인가에 한국에서 김장 김치를 보내준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포장을 어떻게 했는지 뚜껑이며 용기며 랩이며가 김치 색으로 도배가 되었고, 줄줄 흐른 김치 국물이 상자까지 적시는 바람에 배달하는 우체국 아저씨가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었다. 이후, 엄마 김치는 한국에 가면 맛있게 먹기로 하고 절대 보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다.


이 곳에서 주로 먹는 김치라고 하면 슈퍼에서 파는 색은 빨갛고 맛은 달달한 기. 무. 치. 김치의 유통기한을 철저히 지키려는 시어머니(동거 중) 덕분에 쉰 김치 특유의 알싸한 맛은 느껴본 지 오래되었고, 집에서 담근 김치가 풍기는 독특한 젓갈 냄새, 생강 냄새도 맡아본 게 언제였나 싶다.


화제성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그나마 [김장]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는 경우는 대충 이런 거다.


‘한국에서 김치 전용 냉장고가 집집마다 있다고 한다’
‘한국의 기업에는 김장철이 되면 김치 보너스, 김치 휴가가 있다고 한다’

‘헤에에에에~~~~’ ‘스고~~~~ 이’


내가 어렸을 적을 떠올려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 집씩 돌아가면서 김치를 담아주러 가기도 했고, 엄마는 가스레인지에 큰 냄비를 올려 정체 모를 희고 맑은 죽을 쑤기도 하고, 손가락 넣어 쪽! 빨아먹고 싶은 짭조름한 새우젓도 비닐봉지에 담겨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괜히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입만’ 하면, 엄마는 하얗게 소금에 절여진 야들한 배춧잎을 하나 뜯어서, 빨강 고무장갑은 낀 채로 쓱쓱 김치소를 묻혀서는, 동글동글 말아서 입에 쏙 넣어주었다. 나는 속으로 ‘굴도 하나 껴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좀 있다 먹을 겉절이와 보쌈을 상상하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랜만에 손으로 담근 김치를 마주하니, 기억 저편에 있었던 김장 김치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김이 모락 나는 새하얀 밥 위에, 새빨간 김치소를 올리고, 절인 배추를 주-욱 찢어서 젓가락으로 밥까지 한 덩어리 감싸 입안에 넣으면 … 으으으음~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알겠지. 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없는 그 맛. 따뜻하고 시원하면서 매콤하고 담백한, 딱딱한 것 같으면서도 물컹거리는 입 안의 필하모니… 으으으음~


그렇게 음미하며 먹고 있자니 사장님이 ‘어유~ 정아 씨, 거 참 맛있게 먹네’ 하시며 나도 그렇게 먹어야겠다며 똑같이 절인 배추를 주-욱 찢으시는 것이었다.


이 칭찬,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 옛날, 나보다 여섯 살 어린 동생은 아직 못 먹는 김치를 자랑하듯 밥 위에 얹어 크게 한 입 먹으면 어른들은 ‘어유~ 매운데 잘~먹네’ 하고 한 마디씩 해 주셨다. 그러면 보란 듯이 더 맛있게, 더 열심히 김치를 보쌈 고기에 말아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을 보고 2탄으로 ‘애가 못 먹는 게 없네~’하시며 덕담을 추가해주시는 것이었다. (엄마는 허벅지를 찌르며 고기 좀 그만 먹으라 했다.) 그러고 나선 맵고 짜서 나중에 물을 벌컥벌컥 세 컵은 들이켰더랬지. 이런 덕담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김치 맛을 안 한국인들의 1인당 채소 소비량, 마늘 소비량이 부동의 1등인 것은 아닌지.


그런 김장의 추억.

지금 한국은 어떤 풍경일지.


아마 시대도 변하고 풍토도 많이 변했겠지. 당장 우리 집만 해도 배추 포기 수가 눈에 띄게 줄었으니 말이다. 배추 말고 무 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부추김치, 동치미 하던 것들도 종류가 많이 간소해졌다. 그래도 다른 집 보다 손 맛에 자신이 있는 엄마는 아직도 김치를 담가 먹는다.


올 해는 흐르는 김칫국물을 감수하고 엄마 김치 한 번 공수받아 볼까.


아니야, 오기가 있지.

엄마 김치는 내년에 한국 가서 제대로 먹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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