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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Oct 18. 2020

『글의 품격』 VS 『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

품격과 마음, 뭣이 중헌디?

전국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나는 완독 하지 못했다. 인스타그램의 피드에서도 여러 번 봤고, 베스트셀러의 역주행이라는 서사도 매력적인 데다, 독자 리뷰에 발췌된 문장마다 반짝이는 것들이 많아서 한국에 들어가면 꼭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종이책을 손에 넣었는데도, 반쯤 읽고 덮어두었다.

『언어의 온도』 때도 그랬지만, 같은 이유로 『글의 품격』도 읽기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기로 약속했기에 중도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는 것.)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매력적이지 않아서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그래서다.


‘나에게’ 이기주 작가의 글은 마치...

도쿄 니혼바시 미츠코시 백화점의 디저트 코너에 입점한, 프랑스 왕실이 수백 년간 즐겨 찾았다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오급 수제 초콜릿 같은 느낌이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엄선한 재료는 물론이요, 까다로운 공정과 세심한 장인의 손을 거쳐 일정한 냉장 온도를 유지하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쇼케이스 안에 한 알 한 알 진열되어 있는 윤기 나는 초콜릿을 떠올려보자. 발길이 멈추고 입 안엔 절로 달달한 기운이 돈다. 먹어보고 싶다. 하지만 필기체로 휘갈긴 프랑스식 발음을 입에 올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초콜릿 하나치곤 가격도 만만찮다. 포기할까 싶기도 하지만 못 사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 기분이다. 용기를 내어 쇼케이스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어갈듯한 목소리로 ‘저거... 주세요’. 카운터 너머로 깔끔하게 유니폼을 차려입은 점원이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쇼케이스를 열어 전용 집게로 조심스레 한 알을 들어 올려 정사각형 왁스지 위에 살포시 얹어 가볍게 덮은 다음, 결혼반지를 다루듯 반듯한 상자에 담아, 브랜드의 로고가 프린트된 포장지로 싸서, 인주 새긴 빨간 스티커로 봉한 뒤, 코팅이 아주 잘 되어 마치 내 얼굴이 비칠 것만 같은 빤딱빤딱한 쇼핑백에 선물용 여분 쇼핑백과 브랜드를 소개하는 팸플릿, 숍 카드를 넣은 후, 손잡이에 금색 리본을 두르고는 쇼케이스 너머가 아니라 일부러 카운터 옆 쪽문을 끼고 나와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주는 것 같은...

그렇게 한 문장, 한 단락, 한 꼭지, 한 챕터가 포장지에 정성껏 싸여있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소중히 다뤄줘서 고맙고 감사하지만 미안해서라도 매일은 못 사 먹겠는. 맛은 또 어찌나 농후한지, 처음은 눈을 감고 으흠~하며 먹지만 두 개부턴 달아서 못 먹겠고, 세 개 연달아 먹으면 코피 터질 것 같은 느낌. 초콜릿을 좋아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어도 괜찮다.

즉, '가끔 하나씩 꺼내먹어요~'는 괜찮을 수 있어도 짧은 시간에 속도감 있게 읽을 책은 아니고 또 그래지지도 않았다.


내 입맛엔 한 입 넣으면 달달한 기운이 퍼지고, 가끔은 오독오독 씹기도 하고, 모니터 앞에서 한 두 개 집어 먹어도 부담 없는 그런 ‘쪼꼬렛’이 더 맞다. 이왕이면 카카오 70% 이상의 씁쓸한 맛이 나도 좋다. 그러면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두세 개는 더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다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내 생각의 틀을 통째로 흔들어버린 계기가 된 사건인데, 그 경위에 대해선 아래 글에서 자세히 남겨두었으니 간략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어떤 글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이 발 등에 쿵 하고 떨어진 사건]이라고 하겠다.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히는 일, 건배


그런 나에게 ‘이건 어때?’ 하며 다가온 책이 소은성 작가의 『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였다.


『글을 품격』을 읽는 동안 뜻하지 않은 선물처럼 찾아온 이 책을 함께 읽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두 책이 내 마음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되었는지를 비교하는 새로운 방식의 독서노트를 작성하게 되었다.




【첫인상】


이기주 작가의 『글의 품격』은 제목에 걸맞게 품격 있는 분위기와 무드로 시작하고 마무리된다.


글을 쓰고 싶은 당신, 쉘 위 댄스? 하고 매너 있게 손을 내미는 느낌이라면, 소은성 작가의 『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는 처음부터 다짜고짜 귀싸대기를 날리는 느낌이다. 정신이 번쩍 든다.


왜 그런지 두 책의 목차를 비교해 보자.


목차

서문: 삶에서 글이 태어나고 글은 삶을 어루만진다
 제1강 좌우 봉원: 일상의 모든 것이 배움의 원천이다
 1 마음 : 생각과 감정이 싹트는 곳
 2 처음 :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순간
 3 도장 : 깨달음이 솟아나는 장소가 있는가
 4 관찰 : 글감을 찾고 본질을 캐내는 과정
 5 기억 : 누구나 과거를 되씹으며 살아간다
 6 존중 소중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제2강 본립도생 :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1 습관 : 내면의 리듬
 2 개성 : 문장을 날아오르게 하는 날개  
 3 문체 : 비수를 꺼내야 하나 검을 휘둘러야 하나
 4 제목 : 독자가 가장 먼저 읽는 글
 5 주제 : 때론 글을 떠받치는 기둥이 필요하다
 6 결말 : 매듭지어 마무리하다
 7 여백 : 가장 본질적인 재료
 
 제3강 두문 정수 : 밖으로 쏠리지 않고 나를 지킨다
 1 산고 : 글쓰기의 감옥에서 느끼는 고통
 2 능동 : 스스로 문장의 물결을 일으키다
 3 질문 : 간절히 질문을 던지다
 4 오문 : 세상의 더러움에 오염된 문장
 5 성찰 : 내면을 들여다보고 지키는 일
 6 퇴고 : 삶과 글이 그리는 궤적은 곡선이다
 7 지향 : 마음이 향하는 방향

_『글의 품격』 이기주, 황소북스 (목차)


『글의 품격』은 목차만 보아도 정갈하고 빈틈없는, 젠틀한 인상이 느껴진다. 반면 『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의 목차는 길이도 내용도 들쑥날쑥 하지만 스타워즈 속 미사일처럼 가슴을 훅훅 치고 들어온다.


목차

프롤로그 : 파도에 떠밀려서야 얻게 된 확신

 ・당신의 글쓰기 버튼은 무엇인가요? - 무엇에 안달 나고, 무엇과 싸우고 싶고, 무엇이 진짜 같은지

 ・그냥 딱 10분만 달리고 와서 쓰자 - ‘너무너무 잘하고 싶어 죽겠는’ 인간형을 위한 연습용 마인드

 ・이걸 쓰면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 걱정 붙들어 매쇼, 사노 요코는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삽니다

 ・글을 쓰다가 눈물이 흐르면 캐러멜을 먹자 - 아무도 당신의 고백을 비웃지 않는 곳에서

 ・완벽주의와 가면 증후군 환자의 재활기 - 보노보노와 너부리처럼 느긋하게 쓰다 말아도 괜찮아요

 ・예술 앞에서 엄숙하기엔 인생이 너무 분주하다 - 화려한 글감옥에 갇혀 연필로 한 자 한 자 쓰고 싶지만

 ・그냥 단숨에 굴러 떨어지면 된다 - 층계에서 발을 헛디딜까 불안하다면

 ・불안할 때는 일단 휘갈겨 쓰자 - 내가 대화 중에 화장실에 가는 이유

 ・글이 맑아서 뭐해요? 마실 것도 아닌데 - 어리석은, 무례한, 멍청한, 이상한, 과한, 부담스러운, 찌질한 사람으로 보여도 괜찮아요

 ・소심한 사람들이 밤새 만드는 평행 우주 - 글을 쓸 때 우리는 주인공이 된다

 ・그저 바라보고 드로잉 하듯 쓰기 - 오래 바라보아야 예쁘다, 글도 그렇다

 ・나의 역사를 씀으로써 나를 바로 세우기 - 어린 시절의 나를 어른이 된 내가 구하러 간다

 ・우리는 역할이 아니라 감정을 지닌 존재다 - ‘힐링됐다’라는 말로 여러 감정을 뭉뚱그리지 말고, 솔직해지기

 ・수많은 억압에도 사그라들지 않은 당신의 화 - 그것은 차별성 있는 글감이다

 ・콧노래란 완성할 필요가 없어서 즐겁지 - 즐거울 만큼만 쓰자, 고통스러워야만 창장인 건 아니니까

 ・누군가 밉다면 ‘미워 죽겠네’라고 쓴다 -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참 이상한 강박

 ・에세이에 거짓말을 써도 되나요 - 허구와 픽션 사이에서

 _『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 소은성, 웨일북 (목차 일부)


글을 쓰는 데 있어 한 번쯤, 아니 매번 고민하는 마음의 소리를 어떻게 알고 이렇게 속속들이 다루었을까. 혹시 나를 아시는 분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작가의 매력】


첫인상만큼이나 본문 내용에 있어서도 두 작가의 캐릭터는 선명한 차이를 보였다.


깊이 있는 문장은 그윽한 문향(文香)을 풍긴다. 그 향기는 쉬이 흩어지지 않는다. 책을 덮는 순간 눈앞의 활자는 사라지지만, 은은한 문장의 향기는 독자의 머리와 가슴으로 스며들어 그곳에서 나름의 생을 이어간다. 지친 어깨를 토닥이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꽃으로 피어난다.

당신의 손끝에서 돋아난 문장이 소중한 이들의 가슴에 가닿으면 좋겠다. 당신이 일으킨 문장의 물결이 당신의 진심을 실어 나르기를 바란다.

<삶에서 글이 태어나고 글은 삶을 어루만진다 中>

_『글의 품격』 이기주, 황소북스


‘불편해서 미뤄온 소재’ 폴더를 하나 만들었다. 음식물 쓰레기인가 아닌가 헷갈릴 때 추징금이 두려워 검은 봉지에 꽁꽁 묶어 타는 쓰레기봉투 깊이 넣어 버린 적이 있다거나 하는 비밀들이었다.

적당히 포장해서 ‘흐르는 물처럼 행복한 글’만 쓰면 그 모든 혼돈과 혼란은, 그 날것은 영원히 은폐되잖아?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게 되잖아?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깨달은 척, 성숙한 척 결론 내려 말하거나 쓰고 싶지가 않다. 혼돈을 겪은 뒤 정리된 결론을 단정하게 쓰는 작가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게 나는 아니고, 나는 내가 나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글이 맑아서 뭐해요? 마실 것도 아닌데 中> 

_『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 소은성, 웨일북


두 작가 모두 같은 ‘삶에서 경험한 것들이 글이 된다’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담고 있는 내용은 같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두 책을 동시에 읽고 있던 내 눈에는 이 차이가 원하지 않는 상대와의 맞선 자리처럼 느껴졌다.

주선자인 나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두 문장이 ‘문장이란 자고로 문향(文香)이지요. 문장의 물결이 당신의 진심을...’ 하고 젠틀하게 운을 띄우면, 상대의 말을 톡 끊고 들어와 ‘아니, 글이 맑아서 뭐해요? 마실 것도 아니고. 국 끓여 드실 건가요?’ 하며 치고 들어 오는 격이다. 그 모습을 번갈아 보고 있던 나는 참았던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당연히 어느 쪽이 더 좋다 우열을 가릴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닿는 면이 어떤가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옷을 벗는 것으로 치면 『글의 품격』은 플라토닉 연애를 해온 섬세한 연인들의 첫 날밤 같다. 그러니까 왜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았으며, 내가 너에게 다가가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결코 세속적인 그렇고 그런 수작 같은 것이 아니라... 아니이 이 남자, 연애를 책으로 배웠나. 뜸 들이다 답답해진 내가 그냥 벗고 말지. 


한편 『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는 오랜만에 간 한국 대중탕의 탈의실 분위기다. ‘여탕’이라고 적힌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쭈뼛쭈뼛 서 있는 내게 ‘뭐해, 빨리 벗어’ 하는 듯하다. 솔직해라, 내려놔라, 이러니까 저러해라 하는 등의 구구절절한 수식이 필요 없다. 여기는 여탕이고 씻으러 왔으면 당연히 벗어야 되는 거 아닌가? 너, 목욕하러 온 거 아니야? 글 쓴다고 이 책 보고 있는 거 아니냐고!


내 마음이 어느 쪽으로 쏠렸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플라토닉 남(男)은 한 번은 만날 수 있어도 매일은 어렵다. 나는 뇌에 타투를 새긴 게 아닌가 싶은 이 멋찐 언니와 주말마다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고 수다 떨며 맥반석 계란을 까먹는 글을 쓰고 싶다. 지지부진 글이 안 써지는 날에는 한증막 사우나에서 말없이 분홍색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같이 땀흘려 주고, 눈물 나게 억울한 날 애써 아닌 척 샤워기 아래서 닭똥 같은 눈물을 씻어내는 나에게 쿨하게 ‘씻고 나와~’ 하며 먼저 나가 기다려 주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다.

섬세하고 젠틀한 오빠에겐 미안하지만, 나에게 『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은 그런 책이었다.

어쩌다 이 둘을 동시에 만나 가지고...
『글의 품격』, 의문의 1패다.




【글을 대하는 자세】

그렇게 신나게 냉탕 온탕을 오가며 한참을 즐겁게 읽고 있는데, 두 작품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장면이 있었다! (오오!!) 각각의 책에서 같은 작가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서술한 부분이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이렇게 재밌어질 일이야?)


바로 소설가 ‘김훈’에 대한 묘사다.
『글의 품격』에서는 소설가 ‘김훈’에 대한 언급이 무려 11번 나온다. 아마도 이기주 작가는 김훈 작가의 필체와 느낌을 퍽 좋아하는 것 같다. 반면 『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에서도 이름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김훈’ 작가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조금 길지만 두 작품에서 언급된 부분을 발췌해 본다.


먼저, 『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 중에서.

연필로 글을 쓴다는 대작가의 산문을 홍보하는 트윗을 보았다. 칼로 깎은 연필로 원고지에 또각또각 글자를 박아 넣으면 ‘몸이 글을 밀고 나간다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의 육필 원고를 가장 먼저 받아 읽고 워드 파일로 정리하는 기쁨을 표현한 편집자의 후기도 이어졌다. 흑연과 나무 향기, 고유의 문체가 자아내는 우아함이 큰지 고대하던 원고가 도착했다는 기쁨이 큰지는   없었지만. 모든 것이 평범하고 사소해진 시대에   되는 ‘거장 예술가다운 호기와 허세를 지켜나가는 모습이 보기 나쁠 리는 없다.

대작가는 테크놀로지를 몹시 싫어하는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고도했다.  거창한 수사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망치와 노가 편집자의 업무를 늘린다는 것은 알겠다. 그의 필체를   없으되, 다만 악필이 아니길.

거장은 못될 팔자인지, 나는 대작가들의 예술론을 들을 때마다 묻고 싶은 것이 많다. 화려한 글감옥을 논한 A 감옥에 스스로 갇혀 글과 사투를 벌일 동안 누가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혔는지를, 일생의 대작을 쓰기 위해 탈고 전까지 머리를 감지도 몸을 씻지도 않았다는 B 동반자는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를, 언제나 순백의 한복을 입고 작업하는 C 빨래는 누가 해주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이 나의 취미다.

온전히 예술만 추구하고 싶다. 예술 때문에 고독해보고 싶다.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숙연하게    , 몸으로 글을 밀어내고 싶다. 치앙마이든 하와이든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휴양지에 또는 흐리고 으스스하고 인적이 없어  일은 오로지 글쓰기뿐인 베를린 에어비앤비에서 100 정도 홀로 글을 쓰면 나는 얼마나 나은 작가가 될까. , 화려한 글감옥에 갇히고 싶어 안달이 난다.... 이쯤 되면 연필로 쓰든 붓으로 쓰든 나는 모르겠고, 재빨리 글을 쓰고 수정하게 해주는 테크놀로지의 무한한 베풂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  예술가로서 나의 공손한 자세다.

보고서 더미와 장보기 어플 사이에서 흘러가는 하루하루. 어두운 공원에서 작은 들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은 뒷모습을 떠올린다.... 내가 아는 아름다움은 그런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의 가치는 이런 것들이다. 삶과 유리되지 않되 삶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명이 예술가로 살아가게 하는. 비록 그것이 전혀 엄숙하지 않고 몹시 소박할지라도.

 <예술 앞에서 엄숙하기엔 인생이 너무 분주하다 > 

_마음을 썼다 내가 좋아졌다』 소은성, 웨일 북※


이에 반격하는 『글의 품격』


소설가 김훈의 문체는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전범(典範)이다.
몸으로 문장을 새기는 느낌이 좋아서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쓴다는 김훈의 문체는, 소설 속에서 더욱 간결하고 비장하며 때로는 무자비하다. 특히 그는 문장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자제한다. 작품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군살과 기름기를 제거한 날렵한 문장을 꼭 필요한 만큼만, 꼭 필요한 위치에 배치하는 편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어와 동사 등 문장의 주요 뼈대만으로 우직하게 글을 펼쳐나간다.

허식이 없는 김훈의 문장은 간결하지만 독자에게 전해지는 하중(荷重)은 어마어마하다. 어떤 면에서 그의 문체는 중국 춘추 시대 사상가인 노자가 주창한 무위 사상과 포개지는 측면이 있다.

김훈 작가의 책상에는 ‘필일오(必日五)’라고 적힌 종이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날마다 200자 원고지 다섯 장 분량을 쓰고야 말겠다는 작가의 다짐이다.... 난 하루키와 김훈 작가처럼 대외적으로 내세울 만한 ‘작가적 습관’은 없다.

내가 수련하는 도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문장을 수집하는 곳, 그리고 문장을 정제하는 곳이다. 낮에는 ‘맥북에어’, ‘LG 그램’ 같은 가볍고 얇은 노트북을 창처럼 움켜쥔 채 서점과 서점 근처에 있는 카페를 어슬렁거리며 대화를 채집하고 글감을 수렵한다.

내가 노트북에 코를 박을 정도로 몰입하면서 문장을 가다듬는 곳은 우리 집 다락방이다. 제련소에서 용광로에 광석을 녹여 금속을 분리하듯,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락방에 올라가면 머릿속에 맴도는 글귀에서 불순물을 걸러내 중요한 고갱이만을 문장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 다락방에 들어서면 나는 검은색 수성 펜과 적당히 뾰족하게 깎은 ‘블랙 윙’ 연필이 책상 위에 온전히 있는지 확인하고 창문 커튼을 딱 절반만 젖힌다. 그런 다음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아니면 우유를 넣은 부드러운 라테를 마실지 결정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따듯한 커피를 두 모금 정도 마신 다음 무조건 컴퓨터에 손을 얹는다. ... 나는 번잡한 동작을 모두 멈추고 오로지 글을 쓰는 일에 몰입한다.

난 나만의 도장에서 이 묘하고 달콤한 예감을 도복처럼 껴입은 채 글쓰기의 근육을 단련하고 작가의 삶을 이어가는 것 같다.

_『글의 품격』 이기주, 황소북스※


※본문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되, 필자의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재배열/생략/부분 인용하였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수정하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동시에 읽은 두 책의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다. 그들이 놓여있는 상황, 공감하는 주파수, 지향하는 바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물과 기름처럼 다른 층에 속한 것처럼 보였다.


어느 한쪽이 맞다거나, 혹은 잘 섞여야 한다는 말을 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어떠한가, 어떻고 싶은가 묻는다면 마음의 결정은 이미 내렸다.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어’들 기도 하고, 변변한 ‘자기만의 방’이 없어 남편의 책상을 빌려야 하고, 주말엔 밀린 집안일을 끝내고 잠깐이라도 글을 쓸라치면 ‘엄마는 뭐하냐, 2층에서’ 하는 시어머니의 푸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와도 못 들은 척 귀를 막고 문을 걸어 잠그면서까지 쓰고 싶은 글. 그건 결코 화려한 글 감옥에 갇혀 한 땀 한 땀 손으로 새겨 박는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글일 것이다.





책 장을 덮고 난 뒤...


좋았다.
두 책 모두.
두 책을 만나게 된 것도,

그것도 같은 시기에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덕분에 글쓰기의 눈부시게 맑고 고결한 모습과 칙칙하고 탁하지만 진솔한 모습을 앞뒤로 들춰볼 수 있었다. 동시에 고민하고 있던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도 아주아주 선명해졌다.


격이 낮아 세상 앞에 내밀기 볼품없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의미 있고 마음에 드는 글. 쓰면 쓸수록 내가 좋아지고 나를 세워가는 그런 글.

품격을 올리는 것보다 내 마음을 쓰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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