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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Nov 01. 2020

『어디서 살 것인가』 =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 집의 앞 집과 뒷 집은 각각 공사를 하고 있었다.


언덕배기에 있는 뒷 집은 오랫동안 주인이 살고 있지 않은 빈 집이었다. 어느 날 대형 트럭 몇 대가 와서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꽝꽝! 하는 소리와 함께 철거 공사가 시작되었고, 덕분에 창문 너머로 집 한 채가 무너지고 땅 한 뙈기로 변하는 과정을 매일 지켜볼 수 있었다. 반쯤 헐려 앙상한 뼈대를 보인 집을 보고 아이는 ‘집이 불쌍해...’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한편 집 앞 도로변에는 좌우 양옆으로 새 집 짓기가 한창이다. 지난봄, 동네 땅부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들리는 소문으론 그 집 아들 딸 세 명이 각각 유산을 상속받아 임대 맨션이며 코인 주차장 등을 짓고 있다고 했다. 출산 휴가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앞 뒤로 공사 차량 지나가는 소리, 레미콘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아저씨들의 씩씩한 작업 소리 등이 창문 너머로 종종 흘러 들려온다.






【マイホームは人生で一番大きい買い物】

: 내 집 마련은 인생에서 가장 큰 쇼핑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 역시 내 집 마련은 인생에서 가장 큰 금액을 지출하는 이벤트 중 하나다. 집을 짓고 허무는 공사는 뚝딱뚝딱 될지 몰라도, 자금을 마련하고, 아이들이 다닐 학교와 주변 환경을 살펴보고, 집 안 내부의 동선을 그려보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어떤 삶을 채워 나갈지를 결정하는 일이기에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헌데 최근 일본은 빈집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이미 7집 중 1집이 빈집이고 10년 이내에 4집 중 1집이 빈집이 될 거라는 예상이다. 물론 빈집 현상은 도시보다 지방이 먼저, 단독 주택보다는 공동 거주지인 아파트나 맨션, 단지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라 지역에 따라서는 이미 반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텅텅 빈 도시, 고령화된 노인들이 떠나고 헐지 않은 빈집(空き家)이 듬성듬성 있는 유령 마을(ゴーストタウン、ghost town)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는 집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를 제치고 ‘부동산’이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동산 대책으로 떨어진 민심을 잡기 위해 행정도시를 이전한다는 둥, 비어있는 국유지에 대규모 단지를 세워 공급을 늘리겠다는 등의 소식을 들었다. 평생을 맞벌이로 성실히 일해도 내 집 마련이 어려운 부부가 있는가 하면, 생후 4개월 된 아이의 이름으로 강남에 10억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고 하니 한국에서의 집은 주거공간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잃은 것 같은 생각에 씁쓸했다.


여기는 집이 남아돌아 난리.
저기는 집이 부족해서 난리.


집은 사람이, 삶으로 채워 나가야 하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일본엔 사람 대신 유령이 살고,

한국엔 사람 대신 돈이 들어가 앉아 있는 격이라 할까.




【좀 더 화목한 세상을 위하여】

저자는 그런 생각으로 건축을 하고 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의 제목은 『어디서 살 것인가』 지만 정작 저자가 독자들을 향해 던진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건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우리의 삶과 일상을 지배하는 넓은 의미의 ‘공간’ 개념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하고, 아울러 우리가 생활하는 건축, 공간,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지향해 나갈 것인가라는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교도소와 다를 바 없는 학교 건축의 문제점을 꼬집고, 아무리 몸집을 늘린다 해도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대형 쇼핑몰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대신할 수 없으며, 도시의 카페가 이토록 성행하는 이유는 발 디딜 틈 없는 1인 거주자의 주거 공간 부족을 메꾸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해석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늘과 자연을 더 가까이 들이는 설계, 공동의 삶을 위한 공유 경제, 그리고 평수와 높이가 아닌 그곳의 환경을 담아내는 건축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건축과 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여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고 말이다.


건축은 건축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될 수 있다. 세상을 더 화목하게 하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건축을 조금씩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 이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다. 서술형 답을 써야 하는 문제다. 그리고 정해진 정답도 없다. 우리가 써 나가는 것이 곧 답이다. 아무도 채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이 공간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자문해 보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 곳을 만들어 가야 한다. 당연히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여러분 모두가 건축주이자 건축가다.

_『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을유문화사


건축은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도 가장 큰돈(에너지)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하나의 건물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가치, 이해 수준과 같은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좋은 도시에 살고 싶다면 나부터, 우리부터 좋은 가치관을 갖는데서 출발해 보자고 저자는 말한다.


좁게는 내가 사는 공간(집)의 기준, 넓게는 우리가 사는 공간(마을)의 기준, 더 나아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공간(사회)에 대한 기준을 함께 생각해 보며 갈등보다는 공생의 삶을 살아 보자고. 그러기 위해선 건축과 도시를 만들 때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질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건축물을 만들 때 우리는 건축물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그 건축물이 담아내는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건축과 도시를 만들 때 건축물 자체보다는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질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아파트가 재개발될 때 대형 상가가 들어오는 게 좋은지, 아니면 연도형 가게가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게 좋은지 생각해 보고 주민 회의에서 의견을 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이 살 곳을 더 화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를 화목하게 만드는 도시를 함께 만들어 보자.

_『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을유문화사




【즐거운 독서를 위한 소소한 꿀팁 공유】

이 책을 더 쉽고 재밌게 읽고 싶으신 분들은 반드시 맺음말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시간이 없어 훑어보기만 해야 한다면 아래 순서대로 읽는 것도 책에 담긴 저자의 메시지를 흡수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 맺음말에서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한 후

둘. 도시에 대한 고찰이 담긴 9, 10, 11장을 읽고 난 다음

셋. 1장으로 돌아가 세부 사항을 정독해 본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한 나에게 돌아가서 해주고 싶은 말이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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