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가 뭐길래> 오카다 다쓰노부 지음 / 김보나 옮김
새로운 생각을 마주할 때면 뒤통수가 근질거리곤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귓 등과 정수리 사이의 비탈길 어디쯤. 모태 문과인 나는 뇌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새롭고 신선한 것들이 들어오며 아마 그 언저리가 자극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머리를 여러 번 긁적였다. (물론 좋은 의미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저자의 말을 들으며 조잘조잘 맞장구치듯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 평소보다 밑줄도, 코멘트도 주렁주렁 열렸다. 무엇보다 책의 내용이 맛깔나게 읽혔던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을 보내주신 분이자 역자이기도 하신 @bona_tsukimom 님 덕분이 아니었을지.
책벌레까진 아닐지라도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쯤 품지 않아 본 어린이가 있을까. 하지만 키가 자라고 무엇보다 머리가 크면서 그림책과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그림책’이라는 단어와 다시 만나게 된 건 첫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의 일. 오랜만에 만난 그림책은 내용도 색깔도 모양도 다양해져 있었다. ‘어머, 이런 책이 다 있네’, ‘아... 이게 일본 작가의 책이었구나’, ‘와! 이건 나도 읽은 적이 있는데!’ 등등 어른이 되어서야 눈에 들어오는 정보들도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했다.
아이를 핑계로 매주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실은 내가 더 들뜬 마음이었다. 아이가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이 되자 엄마인 나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 늘어갔다. 가끔은 내가 읽고 싶은 그림책을 슬쩍 대여 목록에 끼워넣기도 했다.
무엇에 좋은지도 모르고 그렇게 그림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던 중, 올여름 『어른의 그림책』이란 책을 통해 그림책에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아가 그림책을 매개로 한 교육, 연구, 테라피가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런 그림책 삐약이인 내게 그림책 테라피스트로 활동하고 계시는 보나 님께서 직접 번역하신 책 『그림책 테라피가 뭐길래』를 보내주신 것이다. (보내주신 분의 다정함이 묻어나는 감동적인 엽서와 함께^^)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게 쏟아 내리던 어느 오후.
우연인지 필연인지 출산 휴가 첫날에 맞춰 도착한 이 고마운 책을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저자는, 그림책의 특징 두 가지를 이렇게 꼽는다.
하나, 그림책에는 국경을 넘는 힘이 있다. 그림책은 인간 공통의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서는 ‘국경’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른・아이・문화・언어와 같은 모든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둘, 그림책에는 정답이 없다. 그림책의 주인공이 되는 그림과, 어린아이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과 대화로 구성된 글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준다.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나와 다른 해석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도 어른들도 쉽게 친해지고 따뜻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세계 평화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저자의 글에서 그림책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이렇게 말랑하고 몰캉한 그림책이라니. 그래서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면 내 마음의 긴장도 스르륵 풀어졌던 것이구나. 물론 그림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어른들의 책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빽빽한 활자로 말없이 누워있을 뿐. 그림책은 강요하지 않는다. 그림과 글, 행동과 대화로 스며들듯 다가온다. 책장을 넘기며 다음은 어떤 전개가 기다리고 있을지 두근거리게 한다는 것도 그림책이 가진 매력일 거다.
그림책을 놀이처럼 온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의 그림책은 읽는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 사고가 반영된다고 한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각자의 감상이 다른 이유는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경험과 가치관을 투영하여 읽어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그림책을 ‘깊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만큼 풍부한 경험과 감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P.46)
이 부분에서 두 가지 발견이 있었다. 하나는 어른이란 역시 자신이 보고 있는 필터로 세상을, 그림책을 해석한다는 사실과, 아이들은 그림책을 놀이로서 ‘체험’한다는 사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타듯, 아이들이 재미있게 체험한 그림책을 ‘한번 더!’ 읽고 싶어 하는 것은 최고의 칭찬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그간 귀찮게 느껴졌던 아이의 ‘한번 더’ 앵콜을 기쁘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림책을 읽으며 건드려지는 부분과 깊이 마주할 수 있다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작가 자신의 체험을 통해 간증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책을 덮는 순간 증발해버리는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표지 밖으로 걸어 나와 나의 삶을 건드리는 이야기. 그림책에는 그런 힘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림책테라피로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은) 스스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일까?’라고 질문하고, 답을 찾는 노력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뜨게 되었고,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해 정리하기 쉽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의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요.
_p.186『그림책테라피가 뭐길래』 오카다 다쓰노부 지음/김보나 옮김, 나는별 (2018)
저자는 그림책을 가능하다면 혼자보다 그룹으로 읽기를 권한다. 같은 그림책을 읽고도 다양한 관점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때 나와 다른 생각과 만나는 것이 그림책 읽기의 첫걸음이자 목적 그 자체가 된다. 맞고 틀림, 좋고 나쁨이 아닌 그저 ‘다름’에 눈 뜨는 것. 이를 통해 내 안의 무의식이 의식화되어가는 것을 받아들일 때 그림책테라피의 진짜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림책을 통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저자 스스로도 ‘없던 관점’이 새롭게 태어나는 경험을 몇 번이고 했다고 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예상치 못한 질문과 의견을 만나며 본인도 눈치채지 못했던 관점이 새로이 생기기도 하고, 기존의 생각이 더욱 강화되기도 하면서 자신의 사고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그림책, 어떻게 읽어볼까? 저자는 그림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테라피 효과는 있지만, 내면을 투영해 보려는 의도를 실현하려면 다음과 같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첫 번째는 효과적인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림책을 즐기는 동안은 다양한 것을 자유롭게 느낄 뿐, 초점은 어렴풋한 상태입니다. 다 읽은 다음에 적절한 질문을 함으로써 초점이 또렷해지고, 자신의 내면이 심층적으로 이끌려 나오게 됩니다.
두 번째는 여러 권의 그림책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서 하나의 측면만으로는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몇 권의 그림책을 조합하고 마음의 여러 측면을 바라보면 깨달음과 치유가 더욱 깊어집니다.
세 번째는 그룹에서 여러 질문의 답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림책을 혼자 묵독해서는 내면이 투영되는 것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습니다. (책의 스토리를) 이해했더라도 자신의 가치관이 투영되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여기지요. 그런데 그룹으로 모여 같은 질문에 답하다 보면, ‘아, 나의 내면이 이런 식으로 투영되었구나’라고 인식하기 쉬워집니다.
_p.50『그림책테라피가 뭐길래』 오카다 다쓰노부 지음/김보나 옮김, 나는별 (2018)
“그림책테라피의 설명을 글로 읽으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야 할 것은 그림책을 읽고 질문에 답하는 것뿐입니다”
책 속에는 혼자서도 그림책테라피를 경험해 볼 수 있는 4번의 워크숍과, 그림책테라피에 효과적인 37권의 그림책이 소개되어있다. 물론 단순한 책 소개가 아닌, 인생을 뒤흔들 중요한 질문들이 곁들여져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출간 상황에 맞추어 사제지간인 저자와 역자가 고심하여 함께 고른 책이라고 하니 여건이 된다면 모두 찾아서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개 중에는 이미 읽어본 적 있는 반가운 표지도 있어 아쉬운 마음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울러 그림책테라피에도 참여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지는 경험은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만큼 그림책이 가진 매력은 무한하고 깊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림책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합니다. 가장 순수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교류를 하는 가운데 그림책을 매개로 만나기 때문에 따뜻한 만남이 되는 것이지요.
_p.183『그림책테라피가 뭐길래』 오카다 다쓰노부 지음/김보나 옮김, 나는별 (2018)
그림책테라피스트인 저자가 그림책을 통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한편으론 책을 만난 타이밍이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흔들리며 전진하던 나에게 중심축이 되어 주었던 첫 아이의 출산과 육아가 그랬듯, 곧 있으면 다가올 두 번째 출산이 내 인생의 큰 변환점이 될 이 시점에, 말랑하고 몰캉한 그림책과 함께 뚜벅뚜벅 나의 답을 찾아가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지. 그리고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문답의 여정을 이 책과 함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역자의 맺음말처럼 양 손에 선물을 한가득 받아 안은 것 같은 묵직한 기분으로 나의 첫 페이지로 돌아가 그림책 읽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도서정보 <그림책테라피가 뭐길래>
▶︎그림책테라피스트협회 공식 HP
https://ehon-therapy.jp/korean/
▶︎역자이자 한국인 1호 그림책테라피스트 김보나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lynn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