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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Nov 21. 2020

당신의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우리 모두, 가슴에 이런 문장 하나쯤 품고 살 수 있다면...

국민학교를 들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기억하는 국어 시간의 추억 한 토막 중에 ‘기름종이’라는 것이 있다. 교과서를 물려주기 위해서였는지, 몇 번이고 같은 부분을 반복하기 위함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교과서 위에 뒤가 비치는 얇은 트레싱지를 얹혀 놓고 (당시는 기름종이, 혹은 미농지美濃紙라고도 불렀다) 또박또박 반듯하고 예쁜 교과서체를 따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미끄러우면서도 까끌한 느낌의 기름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껏 써 내려가다 보면, 삐뚤 했던 내 글씨도 조금은 교과서 폰트와 닮아가는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올가을 만난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는 그런 나른한 오후 시간의 교정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이 필요할 정도로, 내 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것 같은 공감 가는 문장들이 넘쳐났다. 눈으로만 읽기는 아쉬워 기름종이를 덧대어 한 자 한 자 따라 써 보고 싶어 지는, 그런 글이었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은 독서 노트를 작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소설이라면 줄거리를, 실용서라면 요점을 정리해서 ‘아 이런 내용이었지’하고 상기시키는데 유용할 텐데, 감상이라는 건 그저 음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어디가 좋다, 어떻게 좋다’고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순간, 감동은 사라지고 의미는 반감되어 휘발되어버릴 것 같다. 그보다는 잠이 오지 않는 어느 새벽, 누런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여기 왼쪽 귀퉁이 언저리에 그런 내용이 있었는데...’ 하고 감각을 더듬어 가며 들춰보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건 서로 비슷하고 연결되어 있어서>

나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가다 보면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그런 일은 인간 마음에 대한 어떤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했던 것도 아니고, 어떤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를 위해 쓴 것도 아닌데, 위로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데 놀라곤 한다. 아마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라는 건 서로 비슷하고 연결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보듬는 과정을 접하고 있노라면, 마치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처럼 느끼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자신을 깊이 이해한 사람은 타인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자기 마음을 파내려 가서 만나는 광맥은 자기 폐쇄적인 우물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에 연결되는 지하수와 같다. 타인은 우리 바깥에 돌아다니는 것 같지만,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들에 연결되어 있다. 그 광맥에 이르고자 하는 일이 곧 글쓰기이고, 진실과 마음에 대한 탐구이자, 진정한 타자를 만나러 가는 길인 것이다.

_『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정지우, 웨일북 (2019)


이 공감이라는 게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쩜 이리도 내 마음을 읽은 듯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까. 책장을 넘기며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탐나도록 섬세한 묘사와 표현,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연령대의 또래 작가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삶을 바라보고 그려나가는 자세 그 자체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저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썼던 몇 권의 책들보다 여기에 담긴 글들이 자신과 가장 가까이 접속해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담긴 글들은 그렇게 씻고 먹고 자듯이 이어온 글쓰기가 남긴 흔적과 같다. 이전에도 나는 몇 권의 책을 썼다. ...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나는 처음으로 나의 숨결과 같은, 나의 저녁과 같은, 나의 잠과 같은 글들을 여기 담아내게 되었다.

내가 지금껏 내놓은 어떠한 글들보다 나 자신과 가까이 접속해 있다. 내 삶의 어느 하루하루들이, 그 하루 속에서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내고자 했던 기억들이 삶을 비집고 나오듯 새겨진 기록들이기도 하다.

_저자의 말 中,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정지우, 웨일북 (2019)


책을 읽으며 부러움을 느낀 지점도 여기에 있다.

누구나 일상의 단면에서 느끼고 있는 간지러운, 그러나 긁지 않고 지나쳤던 감정을 작가는 하나씩 하나씩 정성껏 들추어낸다. 그 감정의 시작이 어디인지. 어떻게 흘러 들어왔으며 어디로 떠나보낼 것인지를 깊고 오랫동안 매만지며 써 내려간 글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 모두, 가슴속에 이런 문장 하나쯤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굽이치는 인생에는 늘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고, 과거와 지금의 생각이 다르듯 밑줄 긋고 귀퉁이 접었던 문장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점도 분명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생각도 변할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불변의 법칙은 처음부터 아니었을 테니. 어느 시절, 어느 순간 생각의 결이 닿는 책을 만났고, 또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독자와 저자가 이별하는 순간이 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터. 마모되고 깎이며 다시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이 시간이자 계절이자 인생이니까.


그보다 이 만남을 통해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것은 ‘나의 이야기를 갖는 것’이다.


나는 어떤 때 기쁘고 어떨 때 슬픈 사람인지. 그 순간을 빠져나오는 방법은 무엇이며, 힘이 되는 말은 있는지. 사람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나의 전부이자 지금인 일상과 하루에 대하여, 우리 모두 자신만의 기준과 이야기를 가져야 한다. 때때로 파도에 휩쓸리더라도 다시 자신으로 회귀할 수 있도록. 언제든 들춰 볼 수 있는 자신만의 행복론 노트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언제까지 기름종이를 덧대어 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공감은 많이 하되 내 삶에 인용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것은 작가의 것이기에. 대신 그 감각을 가져와서 나의 언어로 만들어 보는 연습을 하고 싶다.


<오늘 하고 있는 것이 내가 된다>

인간은 주어가 아니라 동사다. 오늘 글을 쓴 사람은 글 쓰는 사람이 된다. 혹은 오늘 사랑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꿈을 좇는 사람은 몽상가가 되고, 웃고 즐긴 자는 춤추는 자가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무엇을 ‘하느냐’로 이어진다.

등단을 하거나, 책을 내거나, 그 밖의 수상을 하여 ‘작가’라는 이름이 사회적으로 부여되었다고 하더라도, 오늘 쓰지 않았다면 그는 쓰는 자가 아니다. 반면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늘 썼다면 그는 쓰는 자이다. 우리의 존재란 바로 그러한 지점에 늘 붙들려 있는 것이다.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든, 고백하여 연인이 되었든, 오늘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저 공허한 명칭에 불과할 뿐, 사랑하는 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명칭과 행위의 분열 혹은 간극이 심해질수록 사람은 왜소해지고, 초라해지며, 피폐해진다. 오늘 무엇을 하는가의 성실함은 곧 자기 자신의 존재에 충실하다는 것을 뜻한다.

존재의 충실함은 오직 깨어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자인지를 늘 인식하는 사람만이 깨어 있는 것이다.

_『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정지우, 웨일북 (2019)




2020년 11월 모일(某日)

나는 이런 문장에 반응했고 이런 고민을 털어냈으며, 축축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좋은 책을 곁에 두고 마신 한 잔의 카모마일 티 덕분이었음을 기록해두는 일은 나를 더 아끼고 나를 더 세우고 나에게 더 다가가는 일이다.


가족과 함께 한 주말 오후, 해지는 공원의 노을빛이 충만한 하루와 살아갈 용기를 주었으며, 이맘 즈음 새 생명을 기다리는 두근거림이 더 빨라졌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도 모른다 하더라도 나만은 기억해주고 돌아봐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나의 하루를 적어나가도록 하자.

볼륨은 낮추고, 비트는 조금 느슨하게. 억지스러운 에코는 빼고 베이스는 조금 더 묵직하게 키우고 싶다. 특별히 내가 무엇이라고, 여기가 어디라고 내세우며 ‘날 좀 보소’ 하지 않아도 내가 쓰면 쓰는 인간이 되고 내가 읽으면 읽는 인간이 되는 것이니. 그렇게 내가 원하는 꼴을 갖추어 나가며 ‘지금, 여기, 나의 행복’을 써 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누군가는 매일같이 글 쓰는 일에서 무엇을 얻는지 묻는다. 인세나 강연료는 괜찮은지, 그렇게 얻는 명예나 영향력은 얼마나 되는지, 글 쓰는 삶이 성공이나 경력에 도움이 되는지를 궁금해한다. 아마 그 모든 현실적인 질문 또한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물음은 뭐랄까, 이십여 년간 매일 조깅을 하는 사람에게 달리기가 주는 것에 관해 묻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아마 체력이나 몸매 따위를 얻고, 그를 통해 더 성공적인 연애를 하거나 직장생활을 해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저 달라는 일이 당연한 것이라고, 달리는 일이 좋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얻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이 있다면, 달리는 시간이라고. 강변에 부는 바람, 저녁의 냄새, 몸에서 울리는 느낌 속에 파묻히는 그 시간 말이다.

내게 글쓰기 또한 다르지 않다. 그 많은 시간이 내게 준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시간 자체였다. 스탠드만 켜 둔 방에서 울리던 한밤의 타자기 소리와,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새벽의 몰입,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을 떠나 다른 세계에 입장하는 듯했던 어떤 환상과, 글을 쓰다 문득 내다본 창밖의 달빛, 늘 놓여 있던 커피 한 잔 따위가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은 것들이다.

소망이 있다면, 남은 삶의 시간에도 그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_저자의 말 中,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정지우, 웨일북 (2019)


우리 모두, 가슴에 이런 문장 하나쯤 품고 살 수 있다면...


당신의 행복도 거기 있을 것이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서평을 잘 모르지만,

마음으로 쓴 독서 노트 【읽는 인간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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