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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도르 Mar 29. 2022

소공녀


이틀 전 새벽, 아니 5시니까 아침인가... 하여튼, 잠도 안 오고 해서 영화 <소공녀>를 보았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변 사람의 호평을 자주 들었고,

나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추천해 주는 사람이 꽤 있었다.

하지만 개봉 시점부터 지금까지 도통 손이 가지 않는 영화였다.

평소 개봉하는 영화를 보지는 않아도 사람들의 반응과 내용을 꽤 자세히 찾아보는 편이라

<소공녀>도 어떤 영화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봐야 하나 싶었던 것도 감상을 미룬 이유 중 일부를 차지했다.


하지만 대부분을 차지한 이유는 의심과 자기혐오였다.

나는 OTT를 이용할 때도 맞춤형 추천이라고 뜨는 영화들에 눈길도 주지 않고 커서를 내린다.

서점에서도 큐레이션 해놓은 코너를 그냥 지나가면서 눈으로 쓱 훑기만 할 뿐 발길이 머물지 않는다.

그저 거대한 책장 앞에 서서 한 권 한 권 따라가며 마음에 드는 제목의 책을 꺼내 조금씩 읽어보면서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화나 책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잘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어떤 것을 추천하거나 권유하지도 않는다,

'네 취향인 것 같다.'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섣불리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좋았던 것들에 대한 감상을 그저 이야기할 뿐이다. 서점에서 책장 앞에 상대를 세우는 것과 같다.

상대의 취향을 알아맞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취향 중에 상대가 알아서 골라가도록. 이러면 둘 다 부담이 적다.

알고리즘이 이끌어서 선택되었든,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선택되었든

나의 드문 추천받은 경험 속에서 그것이 틀린 선택이었던 적이 훨씬 많았다.

단순히 재밌다 와 취향이 맞는다는 천지 차이이다.



감상은 정말 미세한 차이에서 달라진다.

책의 다른 모든 것이 다 취향에 맞더라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 한 명, 딱딱한 문체 하나, 인쇄된 글씨 크기 하나

사소한 것 여러 개가 쌓이다 보면 책의 마지막 장을 보는 것이 어려워진다.

영화도 마찬가지. 배우가 발연기를 해서, 생각보다 너무 잔잔해서 등등등...

사소하고 다양한 이유로 취향 예측은 빗나가기 십상이다.

좋은 감상은 단순히 비슷함에서 오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때때로 재미없을 것 같던 영화에, 생소한 음악에 푹 빠지는 경험도 한 번씩 한다.

취향이라는 것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옷을 주문할 때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알고 있다고 해서 집에 도착한 옷이 항상 나의 몸에 착 맞지 않는다.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르고 또 같은 옷이라도 개체별로 사이즈가 조금씩 다를 때도 있다.

나는 저체중에 허리 사이즈가 평균적인 사이즈에서 멀리 벗어나 있기에 옷을 고르는 일이 더욱 어렵다.

신체 사이즈를 알고 있는 자신도 옷을 고르기 어려운데,

하물며 사이즈도 모르는 이가 추천해 주는 옷이 쉽게 맞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상대방의 몸의 모양을 대강 안다고 해서

가슴에 흉터가 있어 브이넥을 입지 못하는지,

아무 이유 없이 하늘색을 싫어하는지,

어릴 적 자전거를 탈 때 롱 스커트를 입었다가 바퀴에 말려 들어가서 사고가 난 경험으로 인해 그것을 입지 못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검은색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검은 브이넥을 선물해도,

여름 쿨톤이라 하늘색을 선물해도,

편안한 룩을 좋아하는 것 같아 롱 스커트를 선물해도

입지 못한다는 경우가 생긴다.


모든 취향이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취향이든 상대방의 취향이든 거기에 맞는 것을 찾는 것은 자신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먼저 해주는 추천은 고맙게 듣더라도 내가 먼저 부탁하지는 않는다.

물론 정말 가까운 사람들에게 추천받은 것은 추천 상자 속에 들어간다. 오랜 시간 묵혀져 있는 것이 문제지만...

그러다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의심을 살짝 내려놓고 그것을 꺼낸다.

그렇게 아침에 가까운 새벽, 불면증으로 인해 꺼내진 것은 <소공녀>였다.


<소공녀> 미룬 것은 의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심의 영역에 존재하여 관람을 미루는 다른 것들과 다르게 <소공녀>는 '자기혐오'라는 다른 영역과의 교집합 안에 있었다.

주인공 미소에 대한 것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위스키, 담배, 연인.

이 세 가지 안식처를 위해 집도 포기하는,

어쩌면 이것들이 의, 식, 주인 미소.

누군가는 염치없다고, 별 볼 일 없다고 비난할지라도

일반적인 원칙과 틀과 관계없이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미소. (일반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였다.

물론 영화가 이러한 삶을 권유하는 것도 아니고, 응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취향 하나 지키며 살기 어려운 현실을, 집 하나 구하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며

관객들이 미소와는 다르겠지만 각자의 현실 속에서 비슷한 지점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하지만 좀처럼 감상하기 어려웠다.


추천받았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주인공이 너랑 비슷하더라' '네 가치관과 닮은 영화더라'였다.

물론 나도 개봉 전부터도 찾아봤기에 보기도 전에 알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감상을 막았다.

그들이 말하는, 내가 알았던 닮은 점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빼면 아무 욕심 없는 것,

오로지 그것들을 할 정도의 수입만 있으면 되는 삶을 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영화 볼 수 있는 노트북, 음악 들을 수 있는 스마트폰, 빌려서라도 볼 수 있는 책, 많고 많은 전시.

이것들만 있으면 별 욕심이 없다.

바꿔 말하면 넷플릭스와 왓챠 구독료, 멜론 이용권, 가끔 유료인 전시의 만 원, 이만 원.

이 정도만 있으면 딱히 돈이 더 필요 없는 것이다.

물론 미소처럼 극단적으로 집도 버리고 텐트에서 살고, 거의 먹지 않고 살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월세 원룸과 그만한 생활비와 다 합쳐서 몇 만 원이면 가능한 나의 취향, 끝이다.

뭐 가끔씩 조금 욕심부려서 여행도 가고 이럴 테지만

국내 말고는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어서 돈을 그리 많이 모아야 하지도 않을 것이다.

미소가 소주가 아닌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유일한 사치라면 나도 가끔 그런 사치들을 부릴 뿐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런 삶이 바라고 이런 삶을 원하는 내가 좋다.


하지만 장남이라는 역할은 미소와 같은 삶을 실행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게 한다.

언젠가 책임질 사람이 사라지면, 더 이상 책임지지 않아도 될 때가 온다면 그때 원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으로.

그전에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나만을 사랑하는 일이 된다.

또한 무책임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된다. 어릴 적부터 항상 누구보다 되기 싫었던 모습의 사람으로.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결국 나는 자기 살을 파먹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이제껏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유보했다.

대학생활 내내 주어진 것만 하며 눈앞의 것들을 해치우는 데 집중하며 살았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듯 <소공녀>를 보게 되면 잠시나마 다시 한번 원하는 삶을 갈구하고, 스스로를 변명할 것 같았고,

자신을 비하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굳이 자기혐오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


어제 새벽, 그렇게 회피하고 싶은 두 가지 이유를 안고 <소공녀>를 보게 되었다.

내가 알던 대로 미소는 취향을 지키고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모습이 있었다.

미소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집이 있을 때, 작지만 자신의 방이 필요한 이들에게 항상 방을 내어주었고,

대학 시절, 빚이 생긴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집을 잃었을 때, 비록 잠시나마 잠을 자기 위해 친구들의 집을 전전했지만

그 짧은 사이에도 음식을 하고, 청소를 하고, 위로를 하고, 그들을 위한 것들을 했다.


극 중에서 미소의 남자 친구 한솔은 결국 웹툰 작가의 꿈을 접고

미소와의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돈을 벌러 외국 공장으로 2년간 파견을 나간다.

파견을 가기로 결정을 내렸을 때 미소는 그에게 배신자라고 말하지만,

후에 그가 출국하기 전 인사를 하기 위해 만났을 때

일하는 것을 웹툰으로 그려보면 재밌을 것 같다며 노트를 선물한다.

그리고 삭제된 장면 중에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 미소의 텐트에

한솔이 보낸 그림엽서가 걸려 있는 장면도 있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책임을 다하고자 웹툰 작가를 포기했던 그가

어찌 되었든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면서 자신의 삶을 지키는 한솔과

자신의 삶은 지키면서 책임을 다하는 미소.

그들 사이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는 것 같다.

한솔의 선택이 달라졌어도 미소는 그와 계속 만나며 그를 기다린다.

그들의 다른 선택을 잇는 것은 그들의 진심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마음이다.

지금껏 내가 중간값의 선택을 죽도 밥도 아닌 것이라 여긴 것은

그 선택이 정말로 애매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애매하게 생각한 탓이다.

사실은 그저 또 다른 선택이었을 뿐이다.

어떤 선택이 되었든 진심을 다하는 것.

선택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대한 진심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선 진심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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