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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도르 Mar 23. 2022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항상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부러운 상황이다..

어찌 됐든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있다는 것 아닌가.

나에겐 둘 중 어느 한 가지 명확하게 찾는 것도 어렵다.

잘하는 것은 예전부터 스스로 무엇을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 그냥 적당히 잘하는 그런 아이였다.

왜 반마다 그런 친구 있지 않은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뭐든 다 잘하는 것 같이 보이는 아이.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나의 생각은 달랐다.

그 무엇 하나 특출한 것 없었다.

그냥 달리기가 빨라서 운동을 적당히 잘했던 것이고

학창 시절 공부야 벼락치기로 과목마다 문제집 몇 권씩 풀면 가능한 것이었다.

또래보다 조금씩 잘하지만   정도, 그것이 한계인 것을  스스로는 너무  알았다.

난 지금까지 어느것도 그것을 업으로 삼을 만큼 잘한 적 없다.

그냥 나는 습득력이 남들보다 조금  좋아 초반에 배우는  빠른 사람일 뿐이었다.

이제는 그런 능력조차 사라진 듯하다.​



이와 반대로 학창 시절 좋아하는 것은 뚜렷했다.

한 가지에 빠지면 그것에만 심취해 몇 년이고 맹목적인 사랑을 했었다.

중학교 때는 3년 내내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

매일같이 하루에 서너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노래만 부르곤 했다.

몇 년 뒤엔 야자 끝나고 집에 와서

새벽에 영화 두세 편을 보면서 밤을 새우고 다시 등교하는 고등학교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음악이 좋지만 오디션을 본 적 없고, 앨범을 내자는 친구의 말도 실력미달이라며 거절했다.

영화가 좋지만 찍어본 적 없고, 비평을 투고해본 적 없다

문학이 좋고, 글 쓰는 것이 좋지만 공모전에 투고한 적도 없다.

전부 거리를 두고 좋아하다보니

시간이 지나자 다 고만고만하게 적당히 좋아졌다.

어느 것 하나 목숨 바쳐 사랑하지 않는다.

이제 무엇 하나 자신 있게 좋아한다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까지 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내가 인간관계에서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어쩌면 여기에도 적용된 것일지 모른다.

거리를 두는 것. 정을 두지 않는 것.

적당한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는 나쁠 것 없다.

하지만 거리를 두는 습관, 나의 생존 전략은

매우 친밀해야 할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심지어 가족마저, 반려견마저, 연인마저, 십년지기 친구들마저.

 그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지 않는다.

항상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그들 곁을 공전할 뿐이다.

가끔씩 어머니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 그래서 사람들이랑 밖에서는 잘 지내니?'

하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럼 나는 '그냥 뭐 이런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고 답하고 넘기지만

나도 의문이긴 하다.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태도가 사람을 대할 때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좋아했던 것들에도 어김없이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처럼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더 가까워지지 못했다.

난 지금껏 자기 부상 열차가 되어 철로 위를 떠돌며 한없이 부유할 뿐이었다.​


뭐 그럴싸한 이유를 대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변명일 뿐이다.

그냥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애초에 이러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은 말했듯이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그 무엇이 무엇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모두와 적당히 두루두루 친해지다 보면

진짜 친한 사람은 없는 그런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각각의 이유로 더 이상 내게 남아있지 않다.

'좋아하는 것이냐, 잘하는 것이냐'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부럽다.

질투가 나의 힘이라면

언젠가 둘 중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기형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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