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새벽에 드라마 ‘서른, 아홉’을 정주행하고 나서 물을 마시기 위해 거실로 나갔다.
식탁 옆을 지나던 중 오른쪽 관자놀이에 갑자기 지끈거리는 두통이 느껴져
우두커니 서있다가 안방에서 나오는 콩이와 마주쳤다.
세워진 꼬리가 물속의 해초처럼 흐느적거리며 천천히 흔들렸고
다가가자 콩이는 옆으로 스르륵 누웠다. 나는 곁에 앉아 목과 등을 한참 쓰다듬어주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녀석은 몸을 일으켜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나 또한 물을 마시는 것을 잊어버린 채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와 침대 위에 앉고 등을 벽에 기댄 채 스마트폰을 꺼냈다.
홀린 듯이 인스타그램을 켜고 별안간 계정을 비활성화하고 앱을 삭제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새우잠 자세로 누웠고,
두통으로 인해 아침까지 자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바로 잠에 들었다.
갑자기 왜 그랬을까.
드라마에 나오는 나와 이름이 같은 찬영이가 시한부인 것을 보고
갑자기 시간 낭비로 여겨지곤 하는 소셜미디어가 더욱 불필요한 것으로 느껴진 것일까.
이것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 많아진다.
시간 낭비, 체력 낭비, 돈 낭비, 감정 낭비...
뭐 하나 하려면 그럴싸한 몇 가지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일은 그저 낭비일 뿐이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자가 검열을 하게 된다.
'그냥'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가 더 이상 나 자신에게 먹히지 않는다.
아니면 스마트폰을 만질 시간에 콩이를 조금 더 만져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앱을 지웠을지도 모른다.
항상 집에 같이 있어도 나에게 다가올 때면 자주 꼬리를 흔드는 녀석에게 미안해서.
같이 한지도 벌써 16년이다.
그 세월 동안 최선을 다했는가 하고 묻는다면 찔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존재든 언젠가 떠난다는 것을 녀석을 키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알아버린 어린 시절의 나는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새끼 강아지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끝을 떠올렸고 온전히 정을 줄 수 없었다.
녀석과 대화할 수 있다면 그래서 거리를 두었던 것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네가 잘못한 것은 없다고, 사랑하는 만큼 두려웠을 뿐이라고.
네가 떠난다면 난 그때처럼 울 것이라고.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어쩌면 그저 전자파를 접할 시간을 줄여 두통을 없애려는 생존 본능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