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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도르 Apr 13. 2022

그리움은 미래에서 출발해 과거를 돌아 현재에 도착한다


화랑유원지에서 벚꽃을 구경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적어서 좋았다.

안산에 10년을 살면서 화랑유원지에 간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벌써부터 반팔 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라디오에서 곽진언이 좋아하는 시간이라 말한

네시에서 여섯시 사이에 도착하니 벚꽃 사이로 낮달도 피어있었다.

나도 그 시간대를 애정한다.

해가 조금씩 떨어지면서 그림자가 늘어지는 시간.

온 세상이 그리움으로 물드는 것만 같은 시간.

난 항상 뭐가 그렇게 그리울까.

곁에 없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곁에 있는 것들도 그립다.

영원한 것은 없다.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리 그리워하고 있는 듯하다.


화랑유원지 근처 경기도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도 보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기약하고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집으로 후다닥 돌아왔다.

바로 벚꽃이 핀 집 근처 공원에 가기 위해.

얼마 전 어릴 때 이후로 어머니와 꽃구경을 간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올해는 함꼐 사진 한 장 남겨야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꽃구경 하고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한 적이 없어 말을 꺼내기 어색했다.

그래서 꽃 보러 출사 갔다가 돌아올 때 나온 김에

가게 근처에서 사진을 찍자 하면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화랑유원지 가기 전 가게에 들렸을 때는

많이 팔아서 지금 집에 들어가도 되겠다고 농담을 하시길래

제안에 쉽게 응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외출의 주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게에 도착해서 사진 찍으러 가자 하니

저녁 시간이라 손님  것이라며  간다는 것이 아닌가... 고민도  하고 거절하셨다.

아마 오랜 시간 여가 시간이라 할만한 것을 함께 보낸 적 없던 것 또한 쉬운 거절에 있어 한몫했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는 가만히 집에서 쉬는 것보다 가게 나가서 일하는 게 몸과 마음 둘 다 편한 분이다.

단골들과는 통화까지 하며 그들의 반려동물들을 신경 써줄 정도로

본인을 찾으면 거절하지 못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시는,

손님 이상으로 인간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래 비우는 것도 아니고 삼십분,

그 잠깐의 여유도 없게 만든 것이 나인 것 같아 괜히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애교를 부리면서 끌고 나올 성격도 안될뿐더러

마침 말씀대로 손님도 들어와서 별수없이 혼자 공원으로 향했다.

사진 예쁘게 찍어서 보여주면 다음번에는 가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공원을 혼자 둘러보는데 공원으로 오신다는 전화가 왔다.

도착해서도 곧 다시 들어가려 하실 것이 뻔하기에

바로 찍을 수 있도록 사진이 잘 나올만한 곳들을 빨빨거리면서 찾아다녔다.


역시 어머니는 집 앞에도 벚꽃이 있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찍냐고 투덜거리셨지만

별 신경 쓰지 않고 찾아 놓은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어머니와 꽃을 사진에 담았다

정말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27년을 살면서 알고 있었다.

투덜거리시면서도 포즈 잡으시는 것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공원에서의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어머니의 전화는 계속 울렸다.

찾아온 손님들이 가게 문에 적힌 번호로 전화한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고 한번 찾아오고 말 손님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장사에서 신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도 이해하고 있어서 어머니를 계속 붙잡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십분 남짓 사진을 찍고 어머니는 다시 가게로 향했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었어도 좋으셨던 것 같다.

퇴근하시고 나서  벚꽃이 지기 전, 바쁘지 않은 아침 출근시간에 한 번 더 나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카톡으로 보낸 사진을 확인 못하시고 퇴근하시자마자 사진울 보여달라 하시는 것 보면.

그리고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닮는 것 같다.

'뭘 또 가'라고 답하면서 내일 비 오고 나서 안 지려나 생각하는 나를 보면.


공원에서 어머니와 헤어지고 혼자 걷는데 아뿔싸 했다.

급하게 사진을 찍다 보니 함께 찍을 생각도 못 하고 독사진만 찍어드린 것이다.

같이 찍으려고 몇 년 만에 챙겨 나온 삼각대가 무색해졌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 허당이다.

삼각대를 들고 나온 것이 아쉬워 사람들 없는 곳에서 내 사진이라도 찍고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집 대문부터 메고만 있었던 삼각대를 꺼내 해지는 동산 위의 벚꽃나무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해가 어느덧 지평선에 붙어있었다.

그리워질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당장 그리워졌다.

그리움은 과거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미래에서 출발해 과거를 돌아 현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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