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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May 13. 2018

연희동 오대수씨의 산뽀.

1년의 작업실

작업실은 연희동에 있다.

맛있는 중식집이 많은 이곳에서도 더 맛있는 만둣집을 발견하였다. 작업실에 오는 길, 점심으로 먹을 만두를 사서 매일 만두를 먹고 있다. 한 칸 짜리 작업실에 앉아 만두를 먹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떠올랐다.

그는 기름으로 지져낸 군만두를 통해 '5대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였는데, 나는 다행히 지방을 뺀 찐만두의 담백함을 선호한다. 그러나 알고보니 만두는 일단 칼로리가 높다는 뜻밖의 사실에 충격받은 상태다.   


하여튼 요즘 매일 만두를 먹고 있다. 그리고 오후에는 산책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연희동은 산책하기 좋은 동네다. 토박이 부자들의 옛날식 주택과 신진 힙스터들의 작은 가게들이 조화롭다. 동네의 치안은 전두환씨가 담당하는 것으로 안다. 아직은 그렇다.


요즘 나들이 계절을 맞아, 갈 곳을 찾아 해메는 이들을 위해 한낮의 연희동을 함께 걸어볼까 한다.

(연희동은 폐장이 빠른 동네다. 밤에는 연남동으로)

출발은 늘 사러가마트다.

"뭐 사러가?" / "어, 콩나물” 할 때의 바로 그 '사러가'를 무려 'SARUGA'라고 표기 한, 전대미문의 작명 센스를 보여주는 연희동의 대형마트이다.

이러한 작명이야 말로, 연희동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70년대 경제성장기에 전성기를 일군 옛날부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여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SARUGA 마트 안에는 일종의 그 시절 만물상이라 할 수 있는 수입물품가게들이 여러 개 모여있다. 수입 그릇부터 후쿠오카 공항에서 본 병아리 만주까지 정말 없는 물건이 없다. 그 옛날 저런 곳에서 굳이 한국에는 없는 물건들을 산다는 것은 '나 외국 좀 다녀봤다'는 부자들만의 자기알림 같은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가게가 아직도 존재하고, 실제로 연희동의 골목에는 홍대에서 넘어 온 힙스터들의 카페 옆에 나란히 의상실과 쌀가게들이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다. 정말 희한한 광경이다.

사러가 마트에서 출발 해, 뭘 먹을까 고민한다면 연희동은 또한 중국집의 메카다. 메카라는 말도 가볍다. 본진이다. 왜냐하면 일찍이 화교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던 곳이라 정말로 맛있는 중국집이 거의 다다. 요즘 유명한 이연복 사장님의 목란도 있는데, 동네사람들은 거길 또 안 쳐준다. (그냥 예약 안 하면 못 가니까 하는 소릴 수도 있다) 굳이 목란이 아니더라도, TV에 안 나왔더라도, 우리끼리 쳐 주는 그런 집들이 있는 것이다.


연희동 입성 초반에는 너무 중국집만 다니니까 놀러 온 친구들이 '짬뽕'만 먹는 것에 학을 뗐는데, 알고보니 중국집 말고도 한식부터 이태리까지 요란하지 않은 맛집들이 꽤 많았다. (이래놓고 요즘은 만두와 가끔 핫도그만 먹는 나는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다.)

연희동이 자기들끼리만 사는 조용한 부촌에서 주말 관광객이 늘어난 데는, 홍대 상권에서 발을 뺀 아기자기한 카페와 서점, 소품 가게들도 한 몫 할 것이다. 일찍이 유어마인드가 제2의 '어쩌다 가게' 처럼 한 주택 안에 꾸린 여러 가게들과 함께 이곳에 왔고, 매뉴팩트도 일찍부터 연희동 2층의 저렴하고 맛있는 커피 연구소 같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더 많을텐데, 내가 다니던 곳만 다녀서 잘 모르겠다)


요즘엔 새로운 카페들도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 그렇다고 되게 많은 건 또 아니라서 이곳이 곧 연남동처럼 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워낙 토박이 주민들이 자리잡고 사는 동네이기도 하고, 교통편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잔잔하게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가 이런 걸 예상해서 뭐하겠느냐마는)


지내면 지낼 수록 살고 싶은 동네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서울의 부동산 시세로 볼 때, 살게 될 동네가 될 것 같지는 않고, 작업실이 여기 있는 동안의 거치는 계절 마다 연희동을 걸어 볼 것이다.


지금은 봄이고, 이 동네는 봄과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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