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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Apr 13. 2018

낮의 구둣방, 밤의 지하철

제가 오늘 좀 센치해서요-

낮.


'구두 잘 고치는 집'이 있다. 가게 이름이다.

나는 신고 간 구두를 맡기고 앉아 있었다.

한낮의 가게는 조용했고,

TV는 재미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할아버지는 처리해야 할 신발더미 가운데 앉아

계속 신발을 고쳤다.

가끔 신발을 찾으러 사람들이 다녀갔다.


주의 깊게 볼 필요 없는 채널을 골라 틀어두고

나의 일을 하다 가는 하루.

어릴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독 짓는 늙은이라던가, 방아 깎는 노인이라던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기준에 맞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의 이야기 였을텐데,

그때는 이렇게 오래 돌려 깎았으면 얼마나 둥글고 부드러울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래도 누가 좀 알아줬으면 했다.


큰 맘 먹고 "싸게주세요" 라고 말했다.

허허-사람 좋은 웃음을 하시며 네고 없이 받으셨다.

구두는 잘 신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 창밖을 보십시오....." 밤의 기관사가 말했다.


밤.


2호선을 탔다.

지하철이 밖으로 나와 다리를 지나는데,

난데없이 기사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 창밖을 보십시오."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어, 사람들은 창문 밖을 봤다.

한강이 있었다. 흔하게 환한 밤이었다.


"저희 열차는 지금 한강을 지나고 있습니다. 야경이 멋지지 않습니까? 야경을 보시면서 편안한 기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셔서 편히 쉬십시오."



잡담없이 처리해야 할 신발들을 고치는 것.

하루종일 터널을 돌면서도 풍경에 반응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기분을 건네는 것.  

직업적 소명의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해야 하는 일 너머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 내는 것.



작가가 되고 싶은 거니, 글이 쓰고 싶은거니?



나야 말로 "what do you do?" 에 대답하기 위해,

공항출입심사서의 직업란에 ‘writer’라고 적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p.s.

그나저나 구두는 세일로 이만원에 샀는데 수선할 때마다 만원씩 깨지니, 각별히 아껴신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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