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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Apr 09. 2018

나의 작업실

어디서 일해요? - 3.


"저 할아버지가 중간에 집을 팔거나 하진 않겠죠?"



작업실을 구하러 서울의 곳곳을 오래 돌아다녔다. 강북 안에는 더 강북이 있었다. 아직 hip하지 않아서 hip한 동네들이 많았다. 발견되지 않은 동네, 몰래 다녀갈 수 있는 곳들이 서울에 아직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제주도까지도 다녀왔다. 당일치기로 아침에 비행기를 타서 집을 보고,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는 전국구 부동산 계발자 같은 하루도 보냈다. 작업실이라고 부르던 뭐던 집을 본다는 것은, '인스타그램의 킨포적 삶'이란, 허구요, 연출이요, 있어도 남의 얘기일지니......

팔짱 낀 부동산 중개인 옆에서 괜히 창문 한번 열고는 불쾌한 기분을 삭히려 스타벅스에 갔다가, 아- 이 커피가 지금 내 처지에 맞는 건가 제대로 쓴 맛만 보고 다니다가-


창문 밖 풍경에 이끌려 오래 멈췄다.

엉성하게 지은 단층집에 기와 지붕을 얹은 옛날집이 마주보이는 게, 봄이 되면 환상적일 것 같았다. 주위에 빌라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딱- 그 집 하나만 그러고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고 했다. (그래도 집값 오른 건 알고 계시죠?)



"저 할아버지가요? 허-!'



마지막 "허- 하는 콧바람에 확신하게 되었다. 저 집, 저 지붕은 나 있는 동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풍경에 이끌려, 지난 겨울, 작업실을 얻었다.



노래를 듣는다.

(막)춤을 춘다.

커피를 내린다.  

택배를 기다린다.

쓸데 없는 통화를 한다.

햇빛 드는 자리를 따라 뒹굴며,

이 생각, 저 생각 한다.


하루 종일 물 속에 있는 것 같은 때도 있다.

매달 말일이 되면, 한숨이 난다. '에휴...이 돈 먹는 하마야....'


공과금을 내고 오는 길, 동네를 걷는다.

걷다가 핫도그를 사먹는다.

빵을 고른다.

노래를 듣는다.

커피를 내린다.

이 생각, 저 생각 한다......


오로지 나와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만 두고 아무 간섭 없이 보낼 수 있는 날들,

이런 궁극의 사치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안다.

돈이 많아져도 그렇다.

부족하고 한가롭기 때문에 배짱 한 번 부릴 수 있었다.

 

봄이 오면 예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겨울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을 오랜만에 해 본다.

이곳에 와서, 다시 눈이 오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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