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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Mar 26. 2018

외국에서 글쓰기의 로망

어디서 일해요? - 2.


프롤로그. 출국.


그때의 치앙마이는 '문문'의 노래 같았다.

아는 사람에게는 이미 질리게 들은 히트곡이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오늘만 몇번째 다시 듣고 있는 색다른 감성의 노래 같은 곳. 디지털 노마드와 한달살기 열풍의 한참에서, 치앙마이를 아는 사람은 또 다른 자신들만의 '스페셜 썸띵'을 찾아 나섰고, 밤길에 다다른 집앞에서 굳이 '문문'의 노래를 끝까지 듣고나서 빌라 계단을 오르던 나는, 이제서 치앙마이로 떠나기로 했다.


타국의 호텔방에 처박혀 오로지 원고에만 매달렸다는 숱한 작가들의 소회를 읽으며, 아...작가라면 이렇게 굳이 거기까지 가서 그래야 하나.....하는, 책임방기의 한편으로 작가적 로망도 품어왔던 것이다. 긴 원고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한 달여 만에 호텔을 나선 투숙객(직업:작가)이 이국의 햇빛에 눈도 뜨지 못하고 한참만에야 어기적거리며 겨우 노천의 상인에게 열대과일주스 하나를 받아들어 첫 모금을 하는, 그런 작가적 그림.....그래, 그곳으로 가서 글을 쓰자.



1주차.


한 달의 첫 도시로 정한, 호치민. 천지사방에 오토바이가 과연 완벽한 이국의 느낌을 준다. 누구는 박물관을, 한국TV에 소개된 유명한 맛집들을 찾아나설 테지만, 나는 슬슬 동네 산책을 한다. 여행자가 아니니까 걸음은 느리고, 맛없는 점심에도 화가 나지 않는다. 시간이 많으니까......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프랑스식 주택을 호텔로 운영하고 있다. 작은 정원과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면 유럽식 창문이 달린 작은 내 방이 나온다. 글은 쓰지 않았다.



2주차.


한 주 동안 한 것은 없지만, 적응의 기간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처음 비행기에 오를 때의 생각처럼, 근처의 카페나 글 쓸 곳을 찾아 나선다. 낮에는 작업을 하다가, 저녁에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게 원래 계획인데, 어쩐지 카페에서 죽치다가 밥만 먹고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매일 든다. 그래도 나름 작가적 로망에 가장 가까운 시간. 어느덧 2주차,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다.



바닷가 옆에 자리잡은 가족이 꾸려가는 작은 변두리 호텔. 흙 묻은 내 운동화만 집 안에 고이 들여놔주던 다정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글은 안 써도 사진은 그럴싸.



3주차.


불안과 초조. 이러다 빈 손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본격적인 이국에서의 칩거생활에 들어가기로 한다. 숙소 근처의 한 곳에 머무르며(새로 옮긴 숙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똑같은 길만 반복하고 있자니.....이게 돈 쓰고 남의 나라와서 뭐하는 건가, 회의감이 일기 시작한다. 어쩌면 글을 쓰는 것 보다,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이야 말로 작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국의 거리를 걷고 햇빛을 느끼고 시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체험이야 말로 진정한 영감이 아닌가 말이다......


치앙마이에서 일본인 가족들이 운영하던 오가닉 카페. 메뉴를 설명하던 꼬마의 앙증맞은 일본어를 들으며, 카페에 앉아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한창 불안하던 3주차.


4주차.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작가적 체험'을 하기로 생각을 바꿔먹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못 가본 관광지들을 한꺼번에 가느라고 하루하루가 바쁘다. 쓴 건 없지만, 이런 매일의 기분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가면 새로운 기분으로 더 잘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 같....저기!! 망고밥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무릇- 생생한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며, 관광책자에 나오는 온갖 식당과 시장들을 돌기 시작한 어느 정신승리자의 하루하루.


에필로그. 귀국.


이국에서의 영감을 한달 동안이나 받아 온 나는,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만 하면 될 것 같다. 새로운 시작....시작.....기껏 한달이나 지나 또다시 '시작'이라니.....기분도 별론데, 겨울이라 춥기까지 하다. 그러게....쓸거면 진작 썼지. 여기서 안 되던게 거기간다고 되지 않는다. 뭐, 사진은 잘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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