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쓰는 이작가 Nov 20. 2018

작업실의 성과

성공일까 실패일까

작업실 계약이 끝났다. 1년이 지났다는 게 새삼 놀랍다. 남들은 먹고 자고 빨래도 널고 하는 작은 다세대 원룸을 유난스럽게 출퇴근하며, 누가 "어디야?" 물으면,


"어, 작업실"


할 때의 기분이 되게 좋았다.


조명과 책은 최고의 인테리어 소품이다..


글이야 노트북만 있으면 아무데서나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들 하지만, 카페의 낭만은 '일하지 않는 곳'일 때 생겨나는 것 같다. 방랑의 프리랜서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기 위해서 최소한의 물건을 두고 이불이나 옷장, 가스렌지 같은 의식주 환경을 싹 빼버리고, 직방 이미지 사진에 나올 법한 원룸 모델하우스 같이 만들었는데, 실제 직방에 올라 간 '내 방'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생각만큼 그닥 예쁘지도 않았다.)


주말에 다녀 간 사람이 계약을 하게 돼서, 다른 사람의 집을 빌어 쓰는 것 같은 심란한 기분이다. 하나 둘  짐까지 빼기 시작하면서 점점 처음 이 곳에서 왔을 때의 모습이 돼 갔다. 썰렁한 네모칸에 지불해야 할 월세를 따져보며 마음 먹었던 처음의 결심을 떠올렸다. 한 달에 한편씩 쓰자며 인터넷으로 사무용 의자를 고르던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야, 그냥 나와!"

 


의자는 삼만원에 팔았다. 중고 거래의 달인으로 최후까지 나를 성장시켜주는 이곳에서의 일년, 나는 무엇을 얻고, 또 잃었는가.  



<얻은 것>


1. 세 편의 작업을 마쳤다.


한 달에 한편이란 최초의 계획에는 한참 못미치지만, 하다 만 것들은 빼고, 결과로 남은 것들을 꼽자면, '시나리오 (각본 같은) 각색', '게임 시나리오', '60분 단막극본' 이렇게 세 개다.


영화 각색 작업은 사실 작업실을 나와서야 끝냈는데, 작업실 얻고 나서 가장 처음 한 계약이다. 게임 시나리오는 시작부터 끝까지 희한하고 힘들고 그래도 재미있었다. 아이러브커피 말고 모바일 게임은 해 본 적이 없던 내가 게임 시나리오라니, 쓰면서 나도 신기했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2. 일본어를 다시 시작했다.


작업실에 혼자 앉아있기 심심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방문 학습지를 신청했다. 여태껏 두어번 학원에 다녀봤지만, 일본에 놀러 가서도 '얼마입니까?' 밖에 할 줄 모르는, 배우나마나한 수준이었는데, 이참에 시험까지 보는 게 목표다. 홀딩했던 전화영어도 털어버렸다.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게 된 건 아니다.



3. 연희동의 짬뽕집을 발굴했다.


발굴했다기 보다는 원래 유명하던 동네맛집을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오기만 하면 짬뽕 먹으러가자고 하는 통에 사람들이 두 번은 안 왔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다행히 맛 없다는 사람은 없었다.



<잃은 것>


돈이다.


재정이 파탄났다. 1년의 계획을 잡았던 예산이 불과 4개월여 만에 바닥났다. 사람이 먹고 숨 쉬는 매 순간이 돈이라는 걸, 새삼 절감하게 됐다. 이 정도면 중간에 누가 내 통장을 해킹해서 같이 쓰나 싶을 정도로 돈 나가는 구멍이 무척이나 컸는데도, 새는 물살이 워낙 세니까 도무지 구멍이 안 보인다고 해야 하나. 중간에 작업해서 돈을 벌었는데도 빠듯했다.


뭔가 되게 열심히 한 것 같지만, 별로 한 게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컵라면은 자주 먹지 않았다.


작업실에 있으면서 카페에서 일했다. 한낮에 햇빛이 들고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 있기 아깝다 생각할 정도로 완벽했던 곳이었다. 눈이 올 때 아름답고, 비가 오면 시인이 됐다. (시를 썼다는 건 아니고) 그러다가 월말이 돼면 손을 떨며 월세를 보냈다.

결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간혹 밤샘 작업을 하거나 시나리오를 보내고 나오는 날이면, 벽을 두드리며 '수고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료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곳에 작별인사를 했다. 문을 닫는데 정말, 영화처럼 슬로우로 닫히더라.



p.s. 이래놓고 며칠 있다가 주문한 닭가슴살이 여기로 가는 바람에 다시 다녀왔다. 현관 비밀번호는 그대로지만 곧 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톱이 다시 자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