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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Jun 29. 2024

마지막 수업

쉰 살의 유학일기 - 다시 여름 #4

2024년 6월 28일 금요일, 삿포로랭귀지센터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했다.

금요일 수업 담당인 矢島(야지마)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끝나기 5분 전에 담임인 三宮(상구) 선생님이 잠시 들어와 내게 인사할 시간을 줬다.

지난 3개월간 함께 공부한 중국인 친구들에게 내가 만든 5엔짜리 키링을 선물로 줬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일본에서 매일 만나 공부하는 것이 평범한 인연을 아닐 테니 말이다.

(일본동전 5엔은 인연이라는 일본어 御縁(고엔)과 발음이 같아 좋은 인연을 바라는 기념품이나 부적 같은 데에 잘 사용된다. 지니고 있으면 좋은 인연을 만난다나…)


지난 4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담임선생님에게 이번 학기까지만 학교를 다니고 귀국하겠다 말해 두었었다.

5월 중순쯤엔가… 하교하려는데 복도에서 교장선생님이 부르더니 왜 학교를 그만두는지 물었다.

이제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 돌아가려 한다는 내 대답을 듣더니 갑자기 화를 냈다.

처음에 인터뷰할 때와의 약속과 다르다며 내가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화가 난다고 했다. 너는 아직 일본어가 너무 서투르기 때문에 여기에 머물며 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다.

듣다 보니 나도 화가 났다.

나는 이미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과정은 끝냈다, 이미 최상급인 JLPT N1 반인 데다가 7월에 JLPT 시험 봐서 붙으면 끝인데 취업도 진학도 안 할 내가 더 있어 뭐 하나? (절대 떨어질 거는 생각 안 하는 똥배짱)

게다가 이 학교에는 회화반이 없어서 말이 서툴러 더 공부를 해야 한다면 더욱더 이 학교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입학 전 인터뷰에서 나는 분명히 1년만 있기로 했다, 확인해 봐라!!

하 씨… 저 할망구는 가끔가다 지나가는 사람 불러 세워서 북북 긁는데 저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일본인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단정적인 말을 안 한다는데 저 할망구는 왜 저러는 걸까?

내가 너무 세게 말했는지 교장선생님은 갑자기 말투가 확 바뀌더니 남편과 잘 상의해서 내년 3월에 졸업까지 하도록 해보라며 달랬다.

이미 빈정상했거든!!!

열받아서 속이 확 뒤집어지니 안 나오던 일본어도 술술 나오드라. 내 의도대로 말이 잘 전달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정식으로 시간을 잡아 6월 10일에 퇴학상담을 했다.

저번에는 화가 난다고 하더니 정작 상담 때는 말랑한 소리만 해댔다.

다음 학기부터 마스크 착용을 해제할 건데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봤으면 좋겠는데 아쉽다느니 - 학교 내에서 마스크를 강제로 착용하게 하는 건 당신이 정한 규칙이거든요!! - 생각보다 일본어를 잘해서 깜짝 놀랐다느니, 돌아가서도 계속 공부하라느니…

뉘예 뉘예~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6월 19일, 퇴학허가통지서를 받았다.

톼학당한게 아니라 다행인가… 허가받고 퇴학함 ㅎ


학교를 그만두기 전 이런 일들이 있어서인지 마지막 수업이라는 섭섭함이나 아쉬움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졸업하는 애들 보면 학생들도 울고 선생님도 울고 기념사진 찍고 선물 주고받고 난리던데 난 중간에 그만두는 거라 그런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냥 슬그머니 나만 빠져나오면 끝나는 거다. 오히려 그게 너무 좋았다.

작년 7월 10일 입학식을 하고 딱 1년 네 학기를 지내면서 매 학기 월반을 하는 바람에 반이 네 번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깊은 정이 든 친구도 없다. 같은 반에 한국인 친구도 없다.

같이 입학해서 정규기간인 2년 동안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알바하고 생활하는 다른 젊은 친구들과 나는 상황이 아주 다르긴 하다.

학생보다는 학교선생님들과 비슷한 연배라 학교에 재미도 못 붙이고 매일매일 징징거리며 억지로 다녔던 학교다.

그렇게 지겨워하면서도 꾸역꾸역 나갔던 건 학교가 혼자 사는 일상이 너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자물쇠였기 때문이다. 그 역할은 참 잘해줬다.


학교 가는 마지막 날, 날씨는 환상이었고, 기분도 짱 좋았다.

나 이제 완전 백수다!!

학교가는 길
사요나라~~ 삿포로랭귀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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