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가을편 #14
JLPT시험이 12월 3일에 있다.
어학교 친구들은 졸업 후 취업이든 진학이든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학교에서는 매일 JLPT 모의고사를 풀고 있다.
덕분에 아직 졸업반이 아니라서 시험신청을 하지 않은 나도 반 친구들과 함께 매일 지겹게 시험문제 풀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중간에 월반을 하는 바람에 우리 반에서 나만 졸업대상자가 아니다.)
지난주 수요일에는 진짜 시험처럼 시간 배분을 해서 실전모의고사를 봤다.
N2 레벨 시험을 봤는데 언어지식(문자ㆍ어휘ㆍ문법) 42점+독해 49점+청해 47점 = 138점을 받았다. 다행히 두루두루 고른 점수를 받았다.
N2는 각과목 60점 만점에 합계 90점 이상 합격이고, 각 과목 19점 미만은 과락이다.
모의고사에서는 여유 있는 합격점이다. 실전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은 문법이다.
N3 반에 있다가 N2반으로 중간에 옮겨지는 바람에 수업 과정 중 대부분의 문법을 배우지 못했다.
놓쳐버린 부분은 스스로 공부하기로 약속을 하고 월반을 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그렇다고 집에서 따로 공부하는 건 없고(나이 먹어도 해야만 할 공부는 왜 그렇게 하기 싫은지…), 그냥 반은 감으로 반은 찍기로 버티는 중이다.
다행히 문자와 어휘에서 점수를 많이 확보하고 있어 그럭저럭 땜빵은 되고 있다.
청해도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안 들리더니 지금은 틀린 것보다 맞은 게 많은 수준까지는 왔다.
아무래도 매일 듣는 게 일본어다 보니 귀는 조금씩 트이는 모양이다.
나의 강점은 독해다.
점수 자체는 다른 과목과 큰 차이가 없지만 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독해에서 과락을 받을 정도인걸 보면 저 점수도 낮은 점수는 아닌 셈이다.
매일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에서도 독해는 대부분 어렵지 않게 맞추고 있다.
나는 내가 나름 한자도 꽤 많이 알고 있고, 한국어와 일본어의 어순이 같아 다른 외국인 친구들에 비해 독해에 유리하다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실전모의고사 볼 때 한국인 학생과 나란히 앉았는데 그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한국인 학생들 대부분이 독해를 가장 어려워하고 과락도 독해에서 제일 많이 나온다고 한다.
내가 독해에 강한 이유는… 아마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늘 책을 읽었었다.
거실, 침대 머리맡, 싱크대 선반, 여기저기에 각각 다른 책들을 놓고 틈만 나면 손에 잡히는 책을 읽었다.
화장실에서는 물론이고 (휴대폰 대신 책 들고 들어갔다. 물론 변비 있다) 밥 할 때도 짬짬이 읽고, 자기 전에는 당연히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추리소설과 인문교양 분야의 책이다.
그렇다고 굳이 좋아하는 분야를 고집하진 않고 유행하거나 화제가 되는 책들은 대부분 찾아 읽었다.
도서관 사서 봉사를 하면서 독서모임도 함께 했다.
닥치는 대로 읽는 잡식성 독서가인 셈이다.
하지만 일본에 와서는 글자는 읽지만 책은 읽지 못하는 중이다.
손만 뻗으면 책이 있는 곳에 살다가 한순간에 읽을거리라고는 일본어 학습지 밖에 없는 세상에 놓이다니…
나의 활자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어린이신문 구독이다.
요미우리 어린이신문을 매주 목요일에 받아 제목부터 끝까지 모두 읽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기까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그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다.
돋보기를 쓰고 어린이 신문을 읽는 약간 이상한 상황이지만 독서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어서 만족한다.
한자의 읽는 법이 달려 있어 따로 사전이나 번역기를 쓰지 않아도 되고 내용도 다양해서 꽤 재밌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계속 구독하고 싶은데 방법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나의 이런 읽는 습관들이 독해를 잘하게 된 힘이 아닐까 싶다.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독해문제는 제시된 지문의 글자를 읽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파악하고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풀 수 있다.
책 대신에 휴대폰이나 TV 같은 매체로 단편적인 내용만 훑거나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다 보면 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힘이 길러질 수가 없다.
평소에 책을 읽으며 쌓인 나의 내공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한국에 돌아갈 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몇 권 사가지고 가야겠다.
원서와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겨우 일년살이 하면서 참 욕심도 거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