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가을편 #13
어제 첫눈이 내렸다.
땅에 쌓일 만큼은 아니고 폴폴 눈발이 흩날리는 정도였지만.
오늘도 눈이 내렸다.
날씨도 엄청 쌀쌀해져서 장바구니를 든 맨손이 시려 아파질 정도가 되었다.
유키무시는 어느새 싹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은 이미 눈이 쌓여 하얗다.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 11월 1일, 삿포로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네 스키장의 스노보드 시즌레슨권을 구입했다.
결혼 전에 스키는 타본 적 있지만 스노보드는 타본 적 없는데 삿포로에 사는 동안 배워보고 싶었다.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저렴한 비용도 매력적이었지만 눈의 도시에서 가장 눈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스노보드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전이긴 하지만 타본 적 있는 스키를 배울까?
일단 경험 삼아 한두 번 타보고 결정할까?
레슨비보다 병원비가 더 나가는 건 아닐까?
한국 돌아가면 하지 못할 텐데 한 철 즐기자고 너무 큰 비용을 들이는 건 아닐까?
이러저러 많은 생각들이 있었지만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내 인생 가장 젊은 나이인데!!
다치지만 말고 내 페이스에 맞춰 살살 놀자구!!!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중고용품샵을 찾아다녔다.
삿포로에는 꽤 규모가 있는 중고용품샵이 많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코타츠와 소파 등도 중고용품샵에서 구매한 것들이다.
일본 경기가 침체되면서 생긴 현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20분 거리에 커다란 중고샵이 세 군데나 있다.
가구와 가전제품, 옷과 신발, 악기와 책 등 없는 게 없다.
아직 내 맘에 드는 스노보드는 사지 못한 대신 코트 한 벌과 겨울용 털부츠를 사 왔다.
두꺼비집을 열고 유카단보 전원을 올렸다.
에어컨 대신 바닥난방이 있다는 게 이 집의 장점이라고 했는데 (덕분에 여름에 개고생 했지만) 유카단보가 잘 들어오는지 확인해 봤다.
바닥이 쩔쩔 끓는다.
어릴 적 연탄아궁이 근처 뜨끈한 아랫목 같다.
나 국민학교 다닐 때 아파트에 살았었는데도 연탄아궁이가 있었다. 어린 나이였어도 엄마 없을 때는 연탄구멍 잘 맞춰서 연탄불도 갈았었지.
6학년 때인가, 연탄아궁이 대신 보일러 있는 집으로 이사했었는데. 추억은 방울방울 ^^
지금 사는 집은 정남향에 남쪽과 서쪽으로 큰 창이 있어 하루종일 해가 들어와 아직 난방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라 일단 잘 작동되는 거 확인했으니까 유카단보는 다시 껐다.
혼자 사는데 한 달 전기요금이 지금 6200엔 정도 나오는데 전기로 작동되는 유카단보까지 켜면 전기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몰라 무서우니 당장은 코타츠로 버텨보련다.
오늘도 동네 중고샵을 돌아보고 오는데 집집마다 정원수에 막대기를 묶어놨더라.
아마 눈이 많이 쌓여 생기는 피해를 막아보려고 그런 것 같다.
나도 겨울 옷도 난방도 다 준비했다.
이제 눈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기대된다, 삿포로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