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로 맞고도 참는 게 사회생활일까?

by 나지요

회사 넘버 투는 유명한 식탐꾼이다.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먹을 것 타령을 하고, 누군가의 책상 위나 서랍 속에 간식이 보이면 자기 것인 것 마냥 들고 가서 먹고

남들에겐 ‘혼자 먹는 치사한 놈’, ‘그렇게 살아라’, ‘배 터져라’ 하는 사람.


내가 산 것도 아닌 사무실 내의 초코파이를 발견하곤

회의실에 있는 나에게 굳이 굳이 와서 초코파이로 툭툭 나를 치며

자기는 초코파이 안 주고 니들끼리만 먹는 치사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사람.


누군가는 말한다.

넘버 투니까 떡 하나라도 더 주는 건 어때? 먼저 챙겨 드리는 건 어때? 그냥 한 개 더 주는 건? 아예 따로 챙겨주는 건?

답변은 “모두 다 해봤다.”이다.


제일 먼저 먹을 것을 갖다 받쳐도 보고, 한 개 더 주기도 해보고, 더 큰걸 줘도 소용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타인의 간식을 발견하면 무조건 “혼자 먹는 치사한 인간”이라 대놓고 꼽을 줘야 하고,

나도 타인에게 받아서 갖고 있기만 해도 “혼자 먹는 치사한 인간”이 된다.

내가 2개를 챙겨 와 그 사람에게 하나를 줘도, 내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한 개를 탐하고

하나도 안 남기고 내 것을 몽땅 다 주면 그때는 아무 말 없긴 하다.

말 그대로 조공을 해야만 해결이 된다.

일하다가 너무 배고파 가방 속에 있던 초콜릿이나 간식을 먹고 싶은 어느 때엔 화장실 가서 먹을 때도 있었다.


사무실에 있는 누군가 사온 초코파이 박스를 발견하곤

회의실에 있던 나에게 와서 초코파이로 툭툭 때린 뒤

또다시 “혼자서 먹는 치사한 인간아.” 라고 말하는 걸 듣는다.

그 초코파이? 내 것도 아니고, 나는 먹지도 않았다.

가만히 있다가 그냥 ‘사무실에 초코파이가 있는데 본인은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두대 맞았다.


이 풍경이 사회생활인가?

이것을 꾹 참는 게 사회생활 대처인가?

그동안 많은 고비들을 참고 견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껏 견디며 키우건 나의 비굴함이었나 보다.


짜증을 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아 왜 때리세요- 두대 때리셨으니까 두 개 내려놓고 가세요.” 하며 장난 섞은 진심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나는

비굴한 을, 그 자체.


집에 와서 이 이야기를 하니 가족들이 속상해하며 그거 ‘직장 내 괴롭힘’ 아니냐고 한다.

그 단어를 타인에게서 듣고 나니 더욱 명확해지는 기분.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참다 보니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어디가 어떻게

언제부터 누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내 안에서 찰랑이던 감정들이 한계선을 넘을 듯 말 듯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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