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문
30대 후반.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공부라고 여길만한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생각이 많은 나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토익 시험이나 이직을 위한 영어 시험을 위해 공부하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공부라는 것에 발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독서도 하지 않고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만 보며 사는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
그러던 어느 날 영어를 적다가 스펠링이 헷갈려서 당황. 하지만 금세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엔 말하고자 하는 한글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또 당황. 그런 경우가 몇 번 반복되자 조금씩 겁이 나는 거다.
나, 늙고 있구나.
언젠가 센터에서 하는 원어민 영어 회화 수업에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교통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취소했던 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시도’였다. 이젠 차도 생겼겠다. 내년의 미국 출장도 노리고 있겠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시작해보자 싶어서 우리 동네의 영어 회화 교실에 입문하였다.
드디어.
첫 번째 수업이 열렸다.
퇴근하자마자 수업을 들으러 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 날이라 장대 우산을 든 채였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많은 눈들이 나에게 꽂힌다. "뉴 페이스네?" 말을 거신 분은 엄마 나이 또래로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50-60대마저도 젊은 축에 속하는 연령대였다. 동네의 영어 교실이라 그런가 보다. 외모만 봐서는 타인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나지만, 몇몇 분은 70대에 막 들어선 우리 큰 이모보다도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그녀들은 서로서로 이번 학기도 잘 부탁한다는 반가운 영어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던가. ‘나, 늙었구나.’ 라며 점점 퇴화해 가는 뇌를 탓하고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우산을 끌고 오는 길에 몇 번이고 오늘 수업엘 갈까 말까를 고민했었다. 얼마만인지도 모르는 영어를 뱉으며 첫인사를 하는 내 입은 우물쭈물하기 바빴는데 이곳의 50대, 60대 그리고 70대의 학생들은 서툰 단어로 그러나 능숙한 자신감으로 막힘없이 단어를, 또 문장을 뱉어냈다.
큰 이모 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그분은 최근 유럽여행을 다녀왔다는 근황을 전하며 현지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당황스럽고 힘들었다는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첫 수업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라는 어색함이 어느새 사라져 나도 모르게 리액션을 하고 있었다.
나이, 너무나 상대적인 숫자이다. 회사에 나는 지긋한 중년을 향해가는 중간 관리자가 되었는데 이곳의 동네 영어 학원에선 우물쭈물대는 젊은 신입 학생이다.
분명 흐지부지 가다 말다 할 거라는 미래의 내 모습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의 초롱초롱한 눈과 자신감 있는 사투리성 영어 발음을 들으면 그저 대단하고, 또 귀엽다.
장래희망이라는 거, 이 나이엔 쓸모없는 목표이고 미래의 내 모습을 계획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무언가를 배우며 눈을 반짝이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첫 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