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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Jun 22. 2019

하루 두번, 12시와 6시에 그곳의 문이 열렸다

나의 이른둥이 아가야①  신생아중환자실(NICU)의 풍경

하루 두 번, 12시와 6시에 그곳의 문이 열렸다. 면회 신청서를 쓰고, 소독제로 손을 닦고, 가운을 걸치고, 신발을 갈아신었다. 조용하게, 경건하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먼저 기다리고 있는 이들 뒤에 줄을 섰다. 무거운 공기, 긴장한 얼굴들. 신생아중환자실 앞의 풍경.


문이 열릴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닥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을까, 의사 선생님께 오늘은 무슨 이야길 들을까, 몸무게는 얼마나 늘었을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걱정이 피어났다 흩어졌다. 그곳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몇십개의 인큐베이터가 자리해 있었다. 1kg이 채 되지 않는 아기새 같은 아가와 이제는 젖병을 빨만큼 자란 아가를 지나면, ‘29w6d 1.63kg’ 알림판이 인큐베이터에 붙어 있는, 나의 아가가 있었다.


이르게 태어난 생명은 생명과 연약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1.6키로의 작은 아가를 지탱하기 위해 여러 위압적인 기계들이 필요했다. 작은 몸엔 수많은 선이 꼽혀 있었고 얼굴은 호흡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늘 기계에서 발생하는 경고음이 삑삑거렸고 간호사님들은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호흡기에 의지해 배를 할딱이는 작고 빨간 아가와, 아가가 덮은 속싸개의 알록달록 동물 그림, 그건 지독히 짖궂은 아이러니였다.


제왕절개 다음날, 배를 움켜쥐고 아가를 보러 갔다. 주치의 선생님과 간호사님들께 연신 고개를 숙이는 발 밑으로 빨간 오로가 뚝뚝 떨어졌다. 남편은 죄송하다 말하며 바닥을 물티슈로 훔쳤다. 아가를 볼 때면, 할딱이며 숨을 쉬는 아가가 눈물나게 고마웠으나,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면, 두려움과 불안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주치의 선생님은 ‘미숙아는 괜찮았다가도 언제 나빠질지 몰라요’라고 했고, 이른둥이방에는 처음 듣는 무서운 병명이 가득했다. 미숙아망막증, 괴사성장염, 동맥관개존증, 백질연화증, 뇌출혈, 난청... 아가 앞에 펼쳐진 수많은 위험을 생각할 때면 나는 ‘살려만 주세요’라는 기도를 할 수 없었다.


모두가 잠든 밤, 드릉드릉 유축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모유 유축을 마치고 모유저장팩에 날짜와 시간을 쓸 때면, 하루가 가고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안도로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시간이 이기고 있었다. 언제나 시간이 이긴다.'(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123쪽) 느릿느릿 시간이 흐를 때마다, 기도삽관에서 양압기로 갈아타고, 캥거루케어를 시작하고, 호흡이 좋아져 양압기를 벗고, A셀에서 B셀로 옮겨가며, 위관을 빼고 젖병수유를 시작했다. 그 사이 옆 인큐베이터 아가의 엄마들과 통성명을 하게 되었고, 가끔 면회 후 병원 내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함께 했다. 면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출산을 기다리는 엄마처럼 육아용품을 하나하나 샀다. 집앞에 쌓인 택배 상자를 정리하고 방 청소를 했다. 그렇게 63일의 신생아중환자실 생활을 끝내고 아가는 집으로 왔다.



아직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신생아중환자실 옆, 신생아실에 있는 아가를 창 밖으로 가리키며 좋아하던 한 아가 엄마와 아빠, 뿌듯함과 흐뭇함이 넘쳐흐르던 얼굴, 나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았던 풍경. 저 풍경을 가질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텐데, 무엇으로도 그 풍경을 살 수 없어서 까닭 모를 분노와 원망이 마음을 뒤덮었다. 그날은 3월의 볕이 참 좋은 날이었다.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를 나의 서러움으로 마치고 싶지 않다. 이 서러운 이야기가 서러움으로만 끝난다면, 그건 너무 슬프니까. 첫 자가호흡, 첫 젖병수유가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조금씩 하루하루 커가는 나의 아가가 얼마나 큰 안도이며 자랑이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자주 울컥했는지. 그 울컥이 어떻게 함께 니큐에 있던 아가들에게 자연스레 향하게 되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세상 모든 아가들이 아프지 않기를, 죄없는 몸으로 고통받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그래서 나의 이야기가, 스스로 숨을 쉬지도, 젖을 빨지도 못하는 작은 몸으로 태어나 하나하나 성취를 이뤄낸 아가들의 위대한 승리에, 여전히 분투하고 있는 아가들에 대한 애타는 응원에, 방점이 찍혔으면 좋겠다.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살아가기 위해, 폭력이나 무감각으로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는 것을 정당화하고 삶의 실패를 변명하기 위해, 그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는 이야기이자 무너뜨리는 이야기, 익사시킨 이야기, 정당화하는 이야기, 고발하는 이야기, 행운의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이야기 혹은 냉소로 뒤덮인 이야기이다. 이때 냉소는 꽤나 우아해 보이기도 한다. 가끔씩 이야기는 무너지고, 우리가 패배했음을, 끔찍한 상황에 처했거나, 우습게 되어버렸거나, 길을 잃었음을 인정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또 가끔은 구급차나 하늘에서 떨어진 보급품처럼 변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적지 않은 이야기가 침몰하는 배를 닮았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 주위에 온통 구명보트가 떠 있는 상황에서도.


(...)셰에라자드가 풀어 놓은 이야기는 기대로 가득한 고치처럼 술탄을 감싸고, 결국 그 안에서 그는 조금은 덜 잔혹한 사람이 되어 나온다. 그 모든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아들 셋을 낳고,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의 미로를 펼쳐 놓는다. 그 안에는 욕망에 대한, 속임수와 마법에 대한, 변신과 시험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다른 이야기꾼이 입을 떼면서 이전 이야기 속의 행동이 멈춘다. 그것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야기이자 죽음을 유예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이야기가 우리를 올라탄다. 그렇게 올라타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채찍질을 하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알려주면,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따른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술탄에게 죽임당한 숫처녀들은 술탄의 이야기 안에 있었다. 셰에라자드는 노동자들의 영웅처럼, 생산수단의 통제권을 쟁취한 다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열었다.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10-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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