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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Jun 22. 2019

2018년 올해의 장소, 병원 병원 병원

나의 이른둥이 아가야②  잦은 병원행이 알려준 것들

지인은 매년 한 해가 갈 무렵, 올해의 책, 올해의 음악, 올해의 장소, 올해의 사람 등을 선정해 글을 썼다. 크리스마스라는 게 문득 실감이 나, 나의 올해를 더듬어보았는데, 올해의 책이나 올해의 음악은 없지만 올해의 장소는 있다. 병원, 병원, 병원.


나의 2018년은 여성병원 고위험산모 입원실에서 시작해, 대학병원 분만실과 신생아중환자실을 거쳐, 대학병원 외래와 어린이재활병원을 드나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두달 일찍 태어나 두달간의 신생아중환자실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은이에겐, 잦은 외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병원부터 시작해, 심혈관병원, 안과이비인후과병원, 재활병원... 도장깨기하듯 대학병원 건물을 훑었다. 여름이 되면서 대학병원 외래는 많이 줄었지만, 가을 즈음 어린이재활병원의 재활 처방이 내려져, 매주 두번씩 재활을 다녔다. 병원을 이렇게 자주 다닌 해가 내 인생에 있었던가.



신생아중환자실 시절에는 학생이 가방 싸서 등교하듯, 유축모유를 들고 매일 면회를 갔다.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있는 내 아가는 너무 참담한데, 어린이병원으로 가는 길은 바람은 매서워도 볕이 잘 들었고, 어린이병원 로비는 아기를 겉싸개에 싸서 조심조심 든 부부, 아기띠를 하고 뒤뚱뒤뚱 걷는 엄마,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붙잡으러 다니는 어른으로 북적댔다. 아이가 인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옆자리 아가의 엄마들과 통성명을 하게 됐다. 본관이나 암병원 카페에 앉아 뇌출혈, 심장 구멍, 미숙아망막증 같은 병명을 주고 받으며 아가의 상황을 공유하게 됐다. 그곳엔 나보다 훨씬 긴 시간을 면회다닌 엄마들이 있었다. 교정일이 한참 지났지만 거듭된 퇴원 보류로 상심한 한 엄마는 나에게 교정일 전에 집에 오니 아가가 괜찮은가보다고 했다. 거기엔 내가 몰랐던 세상이 있었다.


퇴원 후 교정일이 갓 지난 은이를 데리고 외래 다닐 무렵, 망막센터나 심혈관병원에 가면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이 ‘이렇게 어린 아가가 왜 왔대’라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아이가 호기심의 대상 혹은 섣부른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어 나는 경계태세를 갖추곤 했다. 그랬던 나도,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중증의 환자들을 병원을 오가며 마주쳤다. 재활병원에 처음 가던 날, 정말 부끄럽지만 ‘내 아이는 저 아이들과는 달라’라고 선을 긋고 싶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몰라 부자연스레 고개를 떨군 적도 많았다. 내가 만난 할머니들이 은이를 자연스럽게 바라봐주길 바랐던 것처럼, 그들의 부모 역시 그랬을텐데. 시간이 오래 지나서야 그들을 보는 나도 조금 자연스러워졌다. 신생아중환자실 시절, 기도삽관을 한 채 자신보다 큰 기계들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가던 은이가 안쓰럽기보다 예뻤던 것처럼, 그들의 부모 역시 그런 마음일 거라는 걸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얼마전 발달검사 결과를 들으러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갔다. 어린이병원 1층 로비에서 기업의 사회공헌행사로 마술사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누군가 쉼없이 다니며 아이들에게 기업 이름이 박힌 빨간 풍선, 초록 풍선을 나눠주었고, 제 몸통보다 큰 링겔을 단 아이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 유모차를 끄는 엄마와 엄마의 친정엄마가 도란도란 모여 마술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엄마와 나도 풍선을 받아들고 휴지가 장미로 변하고, 장미가 다시 화분을 변하는 따위의 마술에 환호를 질렀다. 은이는 북적대는 광경이 신기한지 끊임없이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루 뒤,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재활이 끝나고 수납을 기다리며, 로비의 트리에 붙은 소원카드를 하나씩 읽었다. ‘** 올 한해 고생 많았고, 내년에도 잘 부탁해’, ‘내년에는 아프지 말고 세 식구 건강하자’ , ‘&& 걷게 해주세요’ 같은, 엄마들의 간절함이 베어나오는 카드들 사이로,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인 ‘킥보드 사주세요’ 카드에 나는 웃어버렸다.



크리스마스가 오는 것도, 한 해가 가는 것도, 도통 모르다가 병원에 가서야 크리스마스임을 실감하고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병원이 친숙한 사람이 되어버렸나보다. 이 잦은 병원행은 내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사람은 커다란 사건 후에도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생명을, 평범한 삶을 갈구하는 병원이란 세상 앞에서, 인생의 다른 고민들은 빛을 바랜다는 걸 알면서도, 때때로 인생의 다른 고민들을 반복한다. 그러나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갈 때마다 기억할 것이다. 내가 드렸던, 드리는 기도, 병원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이 지금도 드리고 있을 기도, 그 절실함 앞에서 선명해지는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한가지 더 간신히 알게 된 것이 있다. 아픈 아이들이 감춰져 있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아픈 아이의 부모로 사는 일이 참혹해보여도 부모는 아이의 예쁜 모습에 기특해하고 대견해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우리도 그 아이들을 호기심도 연민도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봐주어야 한다는 것. 이 보잘 것 없는 깨달음들이 올 한해 내가 얻은 부끄러운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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