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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Jan 06. 2020

왜 가사노동은 엄마를 힘들게 하는가

초보 엄마,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다 ① 월급도 승진도 인센티브도 없는 것

*통계청에서 정의한 가사노동은 ‘성인(20세 이상) 기혼남녀가 1일평균 가정관리와 가족보살피기에 사용한 시간’이다. 이에 따르면 가사노동에는 요리, 세탁, 청소, 물품구입, 가정경영 등의 ‘가정관리’와 가족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보살피는 ‘가족 보살피기’가 포함된다. 통계청의 정의에 따르면 집안일과 육아 모두 가사노동에 포함되나, 이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에 따라, 요리, 세탁, 청소 등의 행위를 ‘가사노동’, 자녀 등의 가족을 보살피는 행위를 ‘돌봄노동’으로 구분한다. 


아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재빨리 아침을 준비한다. 아이의 아침을 먹이며, 남은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넣고,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는다. 아침을 다 먹은 아이의 옷을 털고 손을 닦아주고, 바닥과 아기 의자에 붙은 밥풀과 반찬 잔해를 닦는다. 다 먹은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아이가 잘 놀고 있는지 주시하며, 내게 다가올 때 호들갑스럽게 반응해주며. 


설거지를 끝낸 후 그림책을 읽어주다 바닥의 먼지를 외면하지 못하고 밀대로 바닥을 훔친다(바닥 먼지는 오전 햇빛에 가장 적나라하게 보인다). 아이는 자신도 밀대를 밀겠다며 달려든다. 밀대를 밀게 하고 박수를 쳐주고, 그 틈에 다시 걸레질을 시작한다. 전업주부의 오전은 이렇게 흘러간다.      


@Unsplash

아직 기관에 다니지 않는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의 하루는, 24시간 아이를 돌보며, 그 틈 사이에 정교하게 가사노동을 쌓는 기술로 이루어져있다. 작은 집 안을 종종거리며 빨래를 하고 널고 개고, 요리를 하고 먹고 치우고, 아이가 어지른 장난감을 정리해야, 간신히 집은 현상유지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거나 아이가 아프면 금새 집은 장난감과 빨래감 등으로 발디딜 틈이 없어진다. 


눈을 돌릴 때마다 끊임없이 할 일이 솟아나는,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집안에서 종종거리다, 어느날은 질문을 던졌다. 집안일은 왜 엄마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가사노동은 우리에게 친근하지 않다


3040세대는 성장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사노동을 배운 세대가 아니다학교는 기술과 가정을 남녀 구분 없이 가르쳤고, 대학입학과 자아실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주입했다. 가정에서는 공부 시간 확보를 최우선으로 여겨 딸이라고 특별히 요리, 빨래 등을 시키지 않았다. 이는 성장과정에서 가사노동 시간의 차별을 겪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일상생활의 자립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면에서 부정적이다. 


<팬티 바르게 개는 법>을 쓴 미나미노 다다하루는 가정 교사로서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기, 도시락 싸기, 빨래하기, 온가족에게 식사 대접하기 등 청소년들이 일상생활을 이루는 것들을 자기 힘으로 해보는 것이 얼마나 다른 태도로 삶에 임하게 되는지 알려준다. 자립을 경험하지 못한 일본 청소년의 문제는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끄럽게도 나는 사회인이 된 후에도 엄마의 가사노동에 기생해 살았다. 퇴근해 집에 오면 엄마가 저녁식사를 차려주었고, 입은 옷을 벗어두면 엄마가 세탁해 옷장에 가져다 주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입었던 옷이 다시 내 옷장에 걸리기까지, 색깔별로 옷을 분류해 세탁기에 넣고, 세탁 시간이 다 되면 꺼내어 널고 걷고 개고, 때론 옷감에 따라 세탁소에 보내어 드라이를 맡기고 세탁소에서 옷을 찾아 비닐을 벗겨 옷장에 넣는, 노동의 절차가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지를. 


가사노동을 일상적으로 수행해본 경험이 없는 남녀가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고 나니, 전쟁이 펼쳐졌다(아이를 낳은 후 집안일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Unsplash



결혼 후 가사노동이 여성에게 과중되어 있다


가사노동시간에 관한 국가승인통계는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4년에 기혼 남성은 하루 평균 34분의 가사노동(요리, 세탁, 청소, 물품구입, 가정경영 등의 ‘가정관리’ 시간을 집계한 결과)을 한 반면, 기혼 여성은 이의 6배인 199분의 가사노동을 했다.  


전업 주부가 가사노동을 좀더 부담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맞벌이의 경우에 한정해도 가사노동시간의 차이는 여전했다. 2014년 통계청 조사에서 맞벌이 기혼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26분, 맞벌이 기혼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이의 6배인 155분이었다.      


가사노동시간 관련한 계량적 연구가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있다. <부모로 산다는 것>의 저자 제니퍼 시니어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뒤섞이는 장면을 포착한다.      


제이를 달래려고 애쓰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러자 앤지는 제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자기 옆에 두고, 다시 빨래를 개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제이와 까꿍 놀이를 한다. 

“제이가 어디 있을까?”

빨래를 개서 던진다. 

“제이가 어디 있을까?”

빨래를 개서 던진다... (<부모로 산다는 것>, 98, 99쪽)     


제니퍼 시니어의 <부모로 산다는 것>

대부분의 여성에게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회사 업무는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은데, 가사노동시간 관련 통계는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2000년에 아이가 있는 남자의 42%만 ‘거의 대부분 시간 동안’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한다고 응답했는데, 여자의 경우에는 무려 67%가 그렇게 한다고 응답했다. 2001년에 사회과학자 두명이 한층 더 정밀한 분석 작업을 했는데, 그 결과 엄마들은 아빠들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한 주에 열 시간이나 더 다중작업을 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 추가적인 노동 시간은 주로 집안일이나 아이 돌보는 일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부모로 산다는 것>, 99쪽)       



가사노동은 사회적 인정을 거의 받지 못한다


가사노동이 흔히 ‘잘하면 티가 안나고, 못하면 티가 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가사노동의 지루함 사이에도 성취감은 있다. 잘 마른 수건을 개어서 화장실 수납장에 차곡차곡 넣어놨을 때의 뿌듯함, 청소 후 반질반질해진 거실 바닥을 바라볼 때의 상쾌함, 그뿐 아니다. 육아의 한복판에 가사노동을 적절히 끼워넣는 스킬이 성장하는 걸 느낄 때면, 가사노동 역시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고난이도의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사노동에는 월급이 없고, 승진도 인센티브도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가장 가깝고, 우리의 엄마들이 말없이 수행해왔다. 그래서 가사노동에 투여되는 시간, 가사노동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할 때가 많다.      

@Unsplash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 카트리네 마르살은 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는 식탁이 차려지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시장경제를 설명하며,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자기 이익 추구 욕구로 돌아가는 사회를 생각하는 동안, 상인들이 일하러 갈 수 있도록 그들과 아이들을 돌본 사람들의 노고, 저녁밥상을 차려주는 어머니의 노고는 잊었다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어왔다. 통계청은 2018년 국가통계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해 공식 통계를 내놓았다. 2014년 기준으로 가사노동은 시간당 1만569원의 가치를 가지며, 노동시간을 고려해 연봉으로 따진 액수는 1인당 710만8천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4.3%에 해당하는 361조원 규모다.


연구자마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다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가사노동이 가정의 복리후생과 임금경제에 기여하는 바를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사노동은 왜 엄마를 힘들게 하는가. 내가 던진 질문은 가사노동을 경험하지 못한 나의 성장 배경에서 시작해 가사노동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못하는 현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생각까지 정처없이 뻗어나갔다. 


누군가는 말한다.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3종 세트를 들여!” 

또 누군가는 말한다. 

“가사도우미를 써. 가정에 평화가 와!” 


그러나 기계의 힘을 빌리거나 가사도우미를 고용해도, 건조기에 넣을 수 있는 옷과 아닌 옷을 구분하고, 건조기의 먼지 청소를 하며, 가사도우미에게 맡겨야 하는 일과 맡길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맡겨야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협상해야 한다. 결국 집이라는 물리적 기반을 가지고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기에 필요한 절대적 노동의 양이 있는 것이다. 그 노동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폄하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함께 지속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개인적, 사회적 대안까지 언급하는 것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이 글의 취지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내일의 육아 출근을 위해서는 어서 잠을 자야 한다(지금은 새벽 2시반이다!). 우리의 가사노동이 가족 구성원 모두(남편은 물론, 아이와도)와 함께 하는 것이기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당당한 것이기를, 꿈꾼다.


<참고문헌>     

통계청, <가사노동가치는 어떻게 변화하였나>, 2019

e-나라지표, <혼인상태별 및 맞벌이상태별 가사노동시간>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3027

미나미노 다다하루, <팬티 바르게 개는 법>, 공명, 2014

제니퍼 시니어, <부모로 산다는 것>, 알에이치코리아, 2014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부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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