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159호 기고
*교육 계간지 민들레 2026년 봄호(159호)에 실은 글입니다.
한 태권도 관장이 대형 스텐 팬에 떡볶이를 볶고 짜파게티를 끓이고 붕어빵을 굽는 사진이 “요즘 태권도장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이 글의 댓글들이 말해주듯, 한국 사회에서 태권도장은 “체력 길러주고 친구 만들어주고 예절교육 해주고 덤으로 태권도도 가르쳐주는”, “종합육아센터”이자 “맞벌이 부부의 은인”이다. 그렇다면 태권도장이 ‘K-돌봄기관’으로 기능하게 된 것에는 어떤 맥락이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 글은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아이가 다니고 있는 태권도장을 6개월간 관찰한 기록이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1930226
요즘 태권도장의 근황
내가 사는 서울시 강서구 00동에는 총 학생수 700명 규모의 초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앞에서 육교를 건너면 소아과, 정형외과 등의 병원과 중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헬스클럽, 필라테스, 편의점, 무인 아이스크림점 등이 자리한 중심 상가가 있다. 근처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선 이후, 중심상가에는 공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권리금 없이 양도합니다’라고 써 붙여놓은 지 두 달째고, 김밥집이 폐업한 자리에는 참기름 냄새 대신 ‘임대 문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반면, 이 상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업종이 있으니 바로 태권도장이다. 이른 오후부터 어스름한 저녁까지 노란 버스가 쉴새 없이 오가며 아이들을 실어나르고, 노란 버스에서 쏟아져나오는 아이들의 인사 소리가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린다. 이 상가에 태권도장은 총 4곳이다. 4곳의 태권도장이 한 초등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각 태권도장의 블로그를 방문해보니 확실한 차이가 느껴졌다. A태권도장의 블로그에는 태권도와 상관 없는 행사 사진으로 가득했다. 봄에는 벚꽃 구경과 딸기농장 견학을, 여름에는 워터파크와 동물원 견학을 다녀오고, 초복에는 치킨 파티를 열고, 겨울방학에는 에어바운스를 대여해 키즈카페처럼 놀기도 했다. B태권도장의 블로그에는 수련생들의 절도 있는 품새를 역동적인 음악과 함께 편집한 동영상이 많았다. C태권도장은 ‘00태권도 줄넘기클럽’이라는 상호명처럼 줄넘기 수업이, D태권도장은 도구를 사용한 품새교육이 주력인 듯했다. 강조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유아와 초등학생이 주요 대상이며 차량 운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학교에 비해 양육자의 필요에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점, 태권도와 무관한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태권도장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학원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체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학부모들에게 호응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태권도장 간의 경쟁이 심화된 데에는 2000년대 초반 태권도장 거리제한제가 폐지된 것의 영향이 컸다. 기존 도장과 300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했던 태권도장 거리제한제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적으로 폐지되면서 태권도장의 설립이 더욱 빈번해진 것이다. 태권도장 운영자들은 경쟁에 대응해 태권도와 무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차량 운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대학 동문 태권도장 커뮤니티는 태권도장 운영 커리큘럼과 노하우를 활발히 공유하였고, 이는 현재와 같은 태권도장 시스템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의 태권도장 시스템이 자리잡은 배경을 이해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어떻게 미술, 피아노 등의 사교육 기관을 제치고 태권도장이 돌봄 기관으로 대중화될 수 있었을까?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 수업과 주말/방학 프로그램, 차량 운행 등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그렇다, 돌봄은 체력에서 나온다…), 합숙이나 영화 관람 등을 진행하기 용이한 공간(태권도장은 수업을 위해 대부분 넓은 면적의 공간을 사용한다) 등의 조건을 추측해볼 뿐이다.
아동은 즐거워야 한다는 명령
지난여름, 한 태권도장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한 학기가 지났지만 좀처럼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었다.
“저… 00초 1학년 아이 엄마인데요. 체험 수업을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요.”
“아 네, 어머님 00초 1학년 몇 반인가요? 아, 4반이라고요? 4반이면 00이랑 00가 3시부에 있고요, 00이와 00이는 4시부에 있고요, 00이와 00는 5시부에 있어요.”
나는 태권도장에 보내려는 목적이 ‘친구 사귀기’임을 간파당한 느낌에 1차로 놀랐고, 관장님이 태권도장 재원생의 반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에 2차로 놀랐으며, 20명 남짓한 반 아이들 중 한 태권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3차로 놀랐다.
상담 후 관장님이 태권도장 온라인 커뮤니티 링크를 보냈다. 이 커뮤니티는 태권도장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신청을 받으며, 사진을 올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1박2일 합숙, 바자회, 뮤지컬 관람, 비즈공예 특강, 뜨개질 특강, 떡볶이 파티, 콜팝 파티 등의 행사 사진이 끝없이 이어졌다. 사진 속 아이들은 한껏 격양된 표정으로 V를 그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멋진 이벤트와 음식을 준비했으며 그 결과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과시하는 사진들이다. 사진 속에서 아이들은 즐겁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을 통해 현대의 아동기를 이해하게 하는 핵심 단어가 행복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아이들이 행복의 실체여야 하고, 이를 위해 아이들을 사회로부터 엄격하게 분리,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파이어스톤은 이러한 믿음이 어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며, 아동기 행복의 신화가 가진 허위성을 비판했다. 파이어스톤이 이 책을 쓴지 반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 아동이 즐거워야 한다는 명령은 더 거세지고, 돌봄은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해졌다.
태권도장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은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양육자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주말에 진행되는 견학 프로그램이나 1박2일 합숙 프로그램, 방학 평일 오전에 진행되는 방학 특강은 양육자가 육아에서 잠시 해방될 기회다. 태권도장은 양육자의 필요에 맞춰 늦게 퇴근하는 날 아이가 태권도장에서 기다릴 수 있게 하거나 현관 앞까지 아이를 인계해주고, 다른 학원을 오가는 차량 운행을 해주기도 한다.
태권도장이 “맞벌이 부부의 은인”으로 불리는 것은 이러한 유연한 서비스 덕분이지만, 이 유연함 뒤에 누군가의 과중한 노동이 있다는 찜찜함은 어쩔 수 없다. 재원생의 학년과 반, 학원 스케줄을 숙지한 채, 노란 버스를 운전해 곳곳을 누비며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양육자의 연락에 즉시 이모티콘이 가득한 답문을 보내는 관장님과 사범님을 볼 때면 더더욱. 아이를 함께 키울 마을이 사라진 시대, 태권도장은 ‘소비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돌봄의 틈새를 구석구석 메우고 있다.
‘효’라는 또다른 규범
수강 첫날, 어색해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태권도장에 갔다. 태권도장 벽면에는 “승자는 품격을 지켜야 하고 패자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글귀가 크게 붙어있다. “품격이 뭐야?” 묻는 아이에게 답을 망설이는 사이, 등원한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입구가 혼잡했다. 첫 수업이라 상담실 유리창을 통해 수업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관장님이 5분간의 명상에 앞서 ‘인성교육’ 노트를 펼치더니 ‘그날의 문장’을 읽었다. <효경>에 나오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몸, 머리카락,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같은 문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얀 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눈을 감고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는 동안, 팝송 ‘유 라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이 색소폰 버전으로 흘러나왔다. 이 엄숙함, 뭐지?
태권도장은 아동의 즐거움과 양육자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돌봄의 틈새를 메우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지만, ‘태권도 정신’은 태권도장을 지탱하는 또다른 규범이다. 규칙 준수, 노력과 투지, 승패 인정 등의 스포츠 정신을 공유하면서도 일정 부분 차별화되는, 태권도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국기원에 따르면 태권도 정신은 나를 이기고(극기) 세상을 이롭게 하라(홍익)는 것이고, 다섯 가지 태권도 띠 색깔이 유교의 기본 덕목인 오상(인, 의, 예, 지, 신)을 상징한다고도 하지만, 흔히 체감할 수 있는 건 효(孝)다. 부모님 공경하기, 어른에게 인사하기를 강조하는 도장이 많고, 아예 상호에 ‘효’를 붙이기도 한다.
이러한 효 정신이 깊은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아동의 즐거움을 우선시하면서도 효를 강조하는 기묘한 공존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전통적 규범(효)에서 현대적 규범(아동의 즐거움)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태권도장에서 효를 중시하는 것이 양육자를 향한 마케팅 요소로서 부상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효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해석할 때, 태권도장에서 강조하는 효가 상업화된 방식의 아동중심주의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효를 구시대적 상명하복의 문화로 해석할 때, 아동중심주의 역시 이 상명하복의 문화를 억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효와 예를 중시하는 태권도장의 문화가 많은 아동을 통솔하기에 유리하게 작용해,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아동의 즐거움을 목표로 하는 행사들을 진행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태권도장은 오늘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외치고, 내일 콜팝 치킨을 튀기고 탄산음료를 제공하며 아이들을 환호시킨다. 주중에는 절도있는 구령에 맞춰 태권도 품새를 가르치고 주말에는 태권도와 무관한 영화 관람 행사를 연다. 태권도장은 아동의 즐거움과 양육자의 필요를 우선시하면서도 동시에 태권도 정신을 익히는 곳이고, 이것들이 뒤죽박죽 얽혀있는 장이다. 어쩌면 이질적 규범들이 얽힌 혼종적 공간이라는 것이 ‘K-돌봄기관’으로서 태권도장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돌보는 남성의 출현
“안녕하세요. 00어머님. 다름이 아니라 방금 00가 태권도를 하다가 울음을 터뜨려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태권도 관장님의 전화다. 몇 개월째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자초지종을 확인해보니 아이가 운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관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젊은 남성인 그는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데다 이를 양육자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조율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공감을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민주적인 관계의 의사소통 능력에 있어서 남성들이 “지각생”이라는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진단은 그의 의사소통 앞에서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2024년 유튜브 채널 ‘씨리얼’은 “젊은 남자들이 모여서 애들 돌보는 곳”이라는 제목으로 태권도장에서의 돌봄 노동을 조명했다. 이 영상 속에서 태권도 관장과 사범은 품새를 가르치고 픽업 차량을 운전하며 아이들의 다음 스케줄을 챙기고 감기 걸린 아이의 코를 풀어주며 유아의 화장실 뒤처리를 도와주었다. 이들은 “태권도장은 돌봄기관일까요?”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반반?”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씨리얼이 주목했듯, 이 ‘K-돌봄기관’을 꾸려가는 주체는 주로 남성이다. 이들은 2급 생활스포츠지도사 이상의 자격과 3급 국제태권도사범 자격(관장), 혹은 태권도 4단 이상 자격을 갖춘(사범) 태권도인이지만, 유아-초등 저학년 시기의 아동을 돌보며 양육자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돌봄에 있어서 완고하게 자리한 젠더 구분이 태권도장의 ‘K-돌봄기관’화 현상 앞에서 흐릿해지는 현상은 흥미롭다. 그간 가정 내의 돌봄노동은 물론 어린이집/유치원 교사, 간호사, 요양보호사 등의 돌봄 관련 직종은 ‘여성의 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다. 최근에 학계에서 주목받는 ‘돌보는 남성성’ (caring masculinity) 개념은 돌봄노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남성성을 가시화하고 상상하는 작업을 통해, 젠더간 노동분업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강인함, 지배, 통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 대신 지배를 거부하고 돌봄의 가치를 수용하는 남성성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태권도장은 ‘근육질의 남성’이 방과 후의 아동을 돌보는, 기존의 남성성에 대한 고정된 틀을 깨뜨리는 장이다. 물론 이는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이 만들어낸 풍경이기도 하지만, ‘돌보는 남성성’의 출현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SZ1Hqy1B2M
흰 띠에서 주황 띠가 되는 사이
아이가 태권도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도 반년이 지났다. 흰 띠에서 주황 띠가 되는 사이, 아이는 다리 찢기를 제법 잘하게 되었고, 아는 동네 언니 오빠들이 많아졌으며, “태! 권! 감사합니다!” 인사할 때의 부끄러움이 줄었다.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태권도장이라는 세계를 만나고 있고, 나는 그 세계를 바깥에서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태권도장은 많은 어린이가 한 번쯤 거쳐 가는 공간이며, 태권도장에서 먹은 떡볶이를 추억하는 이의 나이만큼이나 오랜 돌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공간이다. 아동은 즐거워야 한다는 명령과 양육자의 돌봄 수요, 효로 대표되는 태권도 정신이 경합해 독특한 규범을 형성하는 공간이며, 돌보는 남성들이 있는 공간이다. K-접두사가 붙은 단어들이 그러하듯 한국식 시스템의 명암을 간직한 채로, 오늘도 초등학교 앞 상가에는 태권도장의 구령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구령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노동도, 어린 시절의 한 조각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