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돌봄에 침투한 ‘잔인한 낙관’

계간 민들레 158호 기고

by 쓸쓸

*교육 계간지 민들레 2025년 겨울호에 실은 글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민우, 사랑이, 유진이의 시간표


민우의 시간표 : 민우(가명)는 정규 수업이 끝난 후 월, 수, 목은 방과후학교에 화, 금은 늘봄교실에 간다. 방과후학교에서 창의미술, 생명과학, 음악줄넘기를 수강한다. 학기 초, 방과후학교 안내문이 나오자 부모님이 민우에게 수강하고 싶은 과목을 물어보았고 민우가 해당 과목을 골랐다. 방과후학교는 1시 30분에 시작하기 때문에, 수업이 12시 30분에 끝나는 월요일과 수요일은 학교 도서관에 들렀다가 시간이 되면 교실로 이동한다.


화요일, 금요일에는 늘봄교실에 간다. 화요일에는 ‘리듬히어로’와 ‘작은미술관’, 금요일에는 ‘수학마법사’와 ‘세계문화여행’ 프로그램이 40분씩 두 번 진행된다. 프로그램 제목은 다 다르지만 약간의 지식 학습으로 시작해 놀이, 체험, 게임으로 끝나는 흐름이 민우에게는 엇비슷하게 느껴진다. 민우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2시 반에서 3시 반 사이다. 민우는 집에서 간식을 먹고 조금 쉬다가 3시 45분이 되면 일주일에 세 번은 어린이 수영장에, 두 번은 미술학원에 간다.


사랑이의 시간표 : 민우 친구 사랑이(가명)는 정규 수업이 끝난 후 월, 수, 금은 방과후학교에서 원어민영어를 수강하고, 나머지 시간은 돌봄교실에서 보낸다. 사랑이의 학교는 학생 수가 많지 않아서 부모의 재직 증명서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돌봄교실에 들어갈 수 있다. 사랑이는 월, 수, 금은 원어민영어를 마치고 2시 30분에, 화, 목은 정규 수업을 마치고 1시 20분에 돌봄교실로 간다. 돌봄교실에 가면 곧 체육관으로 이동해 40분 동안 놀이체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놀이체육이 끝난 후 돌봄교실로 돌아와 간식을 먹고 수학 연산 문제집을 한 장 푼다. 그 후에는 영상을 보면서 종이접기를 하거나 안전교육을 받는다.


이 활동들이 끝나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대부분은 조용히 시간을 보내야 해서 책을 읽을 때가 많다. 돌봄교실은 오후 7시까지 운영되지만, 3~4시 사이면 돌봄교실 친구들 대부분 학원 가방을 메고 학교를 빠져나간다. 사랑이는 3시 50분에 돌봄교실이 끝나면 공부방에 갔다가 집으로 간다.


유진이의 시간표 : 사랑이 친구 유진이(가명)는 돌봄교실 대신 우리동네키움센터에 다닌다. 우리동네키움센터는 정원이 20명밖에 되지 않아 경쟁률이 치열했지만, 유진이 부모가 맞벌이에 다자녀 가산점을 얻어 운 좋게 입소할 수 있었다. 키움센터에서는 숙제 지도를 받은 후 간식을 먹고 요일별로 1시간씩 블록, 보드게임, 독서, 산책, 종이접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4시 이후에는 댄스, 비즈공예, 문화체험 등 매일 다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유진이는 키움센터에서 4시 50분에 나와 학원 승합차를 타고 태권도장에 간다. 사실 태권도에 다니게 된 건, 태권도 차량이 학교에서 키움센터까지 차량을 운행해주기 때문이다. 유진이 부모는 키움센터가 유진이의 학교와 거리가 있어 고민하다가, 태권도 차량이 하교 후 키움센터에 태워다 준다는 소식을 듣고 태권도장 등록을 했다. 유진이가 다니는 태권도장은 키움센터뿐 아니라 여러 학원과 학원 사이를 ‘라이딩’하는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하고 주말이면 영화 관람, 떡볶이 파티 등 여러 행사를 열기도 한다. 유진이는 이번 주말에 태권도장에서 하는 ‘팝콘 데이’에 참가하기로 했다.


프로그램으로 가득찬 초등학생의 방과후


위의 사례들은 내가 아는 초등학교 1학년들의 사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저렇게 아무것도 안한다고?’ 혹은 ‘저렇게나 많이 한다고?’ 싶은 사례는 제외하고,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례들이다.


초등 아이들의 방과후 일정표는 백이면 백 다르다. 양육자의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돌봄교실‧키움센터‧지역아동센터 등 돌봄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 여럿 있는 데다, 학습의 목적을 (일부라도) 가지는 기관으로 각종 학원과 방과후학교‧늘봄교실까지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는 기관의 목적이 학습이든 돌봄이든, 그곳에 오래 있든 짧게 있든, 아이들이 보내는 일과가 목적성을 가지고 매우 촘촘하게 꾸려져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놀이가 무목적성과 자발성, 아동 주도성을 가진 것이라면, 이들의 일과는 목적이 뚜렷하고 성인에 의해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으며 아동은 수동적 학습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정확히 그 반대편에 있다. 문제는 이렇게 촘촘한 초등학생의 스케줄이 맞벌이 양육자의 어쩔 수 없는 돌봄 공백이나 과열된 학습 경쟁으로 인한 ‘학원 뺑뺑이’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육자가 맞벌이를 하지 않더라도 요즘 초등학생들은 바쁘다. 오후 6~7시까지 보육 공백 없이 자녀의 일정을 짜야 하는 맞벌이 양육자의 절박함을 전업 양육자의 경우와 비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자녀 돌봄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와 관계없이, 요즘 양육자들은 자녀의 방과 후의 시간을 ‘유익하게’ 채우고 싶어한다. 정규 수업이 끝난 후 아이의 일정표가 텅 비어있는 집은 양육자가 전업인 경우에도 흔치 않다. 등교할 때 학원 가방을 다 짊어지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집에 돌아와 학교 가방 벗어놓고 간식 먹고 학원 가방 바꿔 멜 시간은 있다는 것, 학원 가기 전후 자투리 시간에 놀이터를 갈 수 있다는 것, 그 정도가 차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학습 경쟁으로 인한 ‘학원 뺑뺑이’가 아니어도 초등학생의 일과는 바쁘게 돌아간다. 초등 저학년일수록 영어‧수학‧국어 등 학습 사교육보다는 예체능 사교육의 비중이 높으며, 학교 안에도 ‘사교육비 절감’을 목표로 만들어진 ‘학교 안의 학원’, 방과후학교가 있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음악(우쿨렐레, 바이울린, 통기타…), 미술(종이접기, 미술, 도자기…), 체육(댄스, 음악 줄넘기, 농구, 배드민턴, 야구, 축구…), 교과(수학, 로봇코딩, 생명과학, 요리과학, 역사, 바둑체스, 한자, 큐브, 영어…) 등 다양하며, 최대 매일 두 타임씩 총 10개의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가 야심차게 도입한 늘봄학교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늘봄교실도 있다. 늘봄교실은 초등 1~2학년을 대상으로 정규 수업 후 2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40분씩 두 번의 수업을 한다. 돌봄교실이나 키움센터에서도 숙제 지도와 종이접기‧보드게임‧비즈공예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지니, 많은 초등학생의 방과후 일상이 각종 프로그램으로 채워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 돌봄 속에 침투한 잔인한 낙관


오늘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아실현’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Andreas Reckwitz)는 『과잉 히스테리 사회, 단독성들의 사회』(새물결, 2023)를 통해 후기 근대사회의 자아실현은 ‘세계를 지향하는’ 자기실현, 즉 내면으로 후퇴하거나 세계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를 통해 실현되는 것으로 변모했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하고, 이러한 실천을 독특하게 조합함으로써 주체는 독창적이고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양육자들은 모든 아이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아이가 나름의 독특한 잠재력의 조합을 발현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한다. 양육자들이 예체능 교육과 각종 체험에 열을 올리는 이유에는 어떻게든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 남들이 시키니까 나도 시켜야 한다는 불안보다는 자녀가 다른 이와 차별화된 존재가 되도록 돕는 일이 ‘단독성들의 사회’에 필수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 결과, 각종 사설‧국공립 기관마다 드로잉 수업, 쿠킹 클래스, 숲 체험 등 각종 예술‧체험 프로그램이 경쟁적으로 개설되고, 이는 초등 돌봄 현장에도 예외가 아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한 한 우리동네키움센터의 시간표에는 2024년까지만 해도 ‘자유놀이’가 있었으나, 2025년부터는 ‘자유놀이’가 사라진 대신 보드게임, 종이접기 등의 프로그램이 생겼다. 돌봄 기관의 일과가 점점 더 다양한 체험과 예체능 교육으로 가득 차는 게 이 센터만의 사례는 아닐 것이다. 「서울시 초등 돌봄 통합체계 구축 방안 연구」에 따르면 양육자들은 돌봄 기관에서 중요하게 제공해야 할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예체능, 문화적 체험’(37.8%)을 중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육자들의 요구에 대해, 연구자는 돌봄 기관의 문화예술, 체육활동이 아동에게는 놀이가 아니라 또 다른 학습으로 인식된다고 비판한다. (김송이. (2025.3). ‘늘봄학교, 초등돌봄의 해법인가 또 다른 미봉책인가’, 월간 복지동향, (317), 5-10)


‘심미적 감성과 창의적 사고를 길러준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 세계 시민이 되게 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기주도능력을 기른다, 스스로의 강점과 흥미를 발견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한다…’. 초등학교를 포함해 초등생이 돌봄과 교육을 위해 머무는 공간들이 약속하는 것은 모호할 뿐 아니라 한계가 없다.


이러한 약속들은 학교가 ‘잔인한 낙관’의 장소임을 드러낸다. 미국의 정동이론가 로런 벌렌트(Lauren Berlant)는 『잔인한 낙관』(후마니타스, 2024)에서 ‘애착의 대상 자체가 더 이상 좋은 삶을 보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됨에도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정동의 상태’를 잔인한 낙관(Cruel Optimism)으로 규정한다.


교육은 미래 세대를 기른다는 점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과 붙어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의 주체를 소진하고 피로와 우울, 불안 속에 머물게 할 때 이 낙관은 잔인해진다. 오늘날 교육은 획일적 지식교육에서 벗어나 각자의 적성, 잠재력, 꿈과 끼를 활짝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이 약속이 모호하고 한계가 없을수록 교육의 주체는 자기착취에 시달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교육 담론, 역량중심 교육과정, 창의적 인재양성, 맞춤형 학습과 진로교육’ 등 아동중심주의에서 비롯된 각종 교육 담론이 가장 활발한 초등학교(와 초등학생 연령대의 아동)는 잔인한 낙관에 가장 취약할 수 있다. (박지원, 김회용. (2020). ‘과도한 교육열과 신자유주의적 불안의 관계’ 교육사상연구, 34(1), 113-135 참고)


이 약속이 모두에게 지켜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약속을 향해 질주하는 건 왜일까? 벌렌트는 사람들이 모순적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급변하는 위기의 일상 속에서 일정한 삶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안정감이라는 일종의 환상에 기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내 생각에 교육에 있어서 잔인한 낙관을 버리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낙관, 즉 아이들의 미래를 긍정하고 희망하는 일이 윤리적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이 낙관 속에 들어있는 잔인함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장밋빛 낙관의 결과가 바로, 각종 프로그램으로 가득 찬 초등학생의 방과 후 일정표다. 자주 붙어있는 친구와 어쩌다 멀어진 친구, 더없이 즐거웠던 한때와 ‘그 말은 하지 말 걸’ 하는 후회, 놀이터 뒤 공터에 무성하게 자란 토끼풀, 술래잡기에서 계속 술래가 될 때의 조마조마함, 오후 햇살에 비치는 먼지와 해가 저물 때의 공기…. 이런 것들 대신, 한계가 없고 모호한 미래의 약속과 뭐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긍정성의 명령이 초등학생의 방과후 일상의 중심이 되었다. 초등학생의 시간표는 온갖 좋은 것들에 대한 약속으로 가득 차고, 이 약속 뒤에 있는 잔인함은 이들의 일상과 놀이, 여가, 관계, 모든 것을 통째로 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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