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지 않은 어린이집생활 04] 발도르프어린이집 적응기
34개월, 아이가 발도르프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했다. 2주간 나도 아이와 함께 2시간씩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눈을 뜨면 어린이집에서 부르는 노래가 맴돌았고, 눈을 감으면 숲에서 노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 나는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어린이집의 공간과, 선생님과, 아이들과.
어린이집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 도착하는 순서대로 간식을 먹고, 나무 블록, 천 보자기, 달팽이끈, 너도밤나무 열매 등을 가지고 자유롭게 논다. 선생님이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정리를 시작하면, 아이들도 선생님을 따라 장난감을 정리하고 아침모임 시작. 계절탁자에 초를 붙이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노래를 부른다. 이제 숲으로 갈 시간. 순서대로 옷을 입고 나가, 낙엽 썰매를 타기도 하고 낮은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열매를 줍기도 한다.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다.
발도르프의 특성에 대해 여러 책에서 소개하고 있지만, 발도르프에 처음 아이를 보내며 인상깊었던 것들이 있다.
첫째, 공간이 주는 따뜻함과 안정감이 있다.
어린이집이라면, 더 나아가 애가 있는 모든 공간이라면, 뽀로로 매트와 알록달록 장난감, 벽에 붙여놓은 원색 꾸밈판이 기본 옵션 아니던가. 발도르프 공간은 알록달록과는 거리가 멀었다. 은은한 라주어 페인트로 벽을 칠하고, 원목 가구를 들여놓았다.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교육용 포스터와 꾸밈판 대신,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물로 꾸민 계절탁자,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캐노피를 쳐놓은 소꿉놀이 공간, 엄마 뱃속과 비슷하다는 분홍색 커텐이 있었다.
게다가 발도르프 어린이집에는 스텐 식기가 없다. 식사와 간식은 도자기 그릇에 먹는다. 마치 아이들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을 많이 만나는 것이 영유아기의 중요한 목표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도 점점 그 아름다움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졌다.
둘째, 모임 내용이 놀랍도록 차분하다.
어린이집이라면 무릇 신나는 동요가 흘러나오고, 선생님이 높은 솔 톤으로 말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발도르프의 아침 모임은 정반대였다. 시작은 계절 탁자에 초를 켜는 것. '뭐지 이 경건한 분위기는?' 초를 켠 채로 기름을 바르는 의식을 진행한다. '뭐지 이 종교스러운 의식은?' 기름을 바른 후 부르는 노래에 반주 따윈 없다. 선생님의 노랫소리는 마치 떼제(프랑스에 있는 수도회로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처럼 들린다. '역시 유사종교가 맞았나봐.'
현대 유아교육의 흐름과 완전히 반대되는, 그래서 예배 같은 경건함마저 풍기는 아침 모임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아침 모임 후의 숲놀이에서 아이들은 놀랍도록 차분했다. 숲이라는 공간은 경사가 있는데다 나무나 가시 등의 장애물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고, 경계가 없다. 누구든, 언제든 다칠 수 있는 곳. 아이들은 선생님이 ‘올라가지 마’, ‘거긴 안돼’ 따위의 말을 거의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한계를 지켜 노는 것 같았다. 무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고 낮은 나무만 조심조심 올랐으며 뛰어다닐 때는 속력을 조절했다.
매일 가는 숲이라 스스로 위험을 조절하게 된 면이 크지만, 나로선 아침 모임의 효과를 배제할 수 없어보였다. 촛불 켜고 한껏 고요한 시간을 보내다 가지 않는가. (어른도 촛불 켜면 마음이 노곤노곤해져 마음 속 얘기도 술술 하게 되는 판에!) 발도르프에서는 들숨과 날숨처럼, 정적인 활동과 동적인 활동을 앞뒤로 배치해 리듬감을 준다고 한다. 정적인 활동이 워낙 흔치 않은 시대라, 정적인 활동의 영향력이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셋째, 선생님이 자유놀이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실내 자유놀이 시간에 선생님은 아이와 함께 놀기보다, 아이들 옆에서 바느질이나 다른 일을 하셨다. 아이들이 찾아와 '선생님, 더워요', '선생님, 쟤가 제 장난감 가져갔어요' 등등 말하는 경우에만 개입했다. 아이의 놀이에 개입하는 순간 놀이의 흐름이 끊기고 아이주도 놀이에서 벗어나게 된다나.
아이들은 매일 비슷한 듯 다르게 놀았다. 하루는 보자기를 드레스처럼 두르더니, 다음날은 보자기 드레스에 달팽이끈으로 신발을 만들어 감았고, 그 다음날은 보자기 드레스에 달팽이끈 신발을 신고 결혼식장이라며 '딴딴따단!!'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녔다. 나는 아이들의 놀이가 어떻게 이어지고 끊기고 다시 시작되고 한단계 나아가는지, 매일 경탄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도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있었다. 놀이에 끼지 못하는 아이가 생겼다. 말을 잘하고 빠릿빠릿한 아이들이 놀이를 자기 위주로 몰아갔다. 자꾸 빼앗기던 아이가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풀죽어 앉아있었다. 선생님은 왠만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셨다. 다만 세심하게 관찰하고 적어주셨다. 필요한 시기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넷째, 혼합반의 장점은 예상했지만 역시나 컸다.
발도르프는 거의 혼합반으로 운영하는데, 아이의 어린이집 역시 3-6세 아이들 8명이 한데 모여 생활했다. 나로서는 외동인 아이가 언니 오빠들과 놀면 뭐라도 배우겠지 하는 속내(?)가 있었다. 역시나, 아이가 나무블록을 쌓기만 하고 논다면, 언니오빠들은 나무블록으로 성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그 사이 사이 상황극도 다채롭게 만들어 했다. 아이의 놀이도 점점 더 다채로워졌다.
그러나 혼합반은 동생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언니 오빠들은 동생들에겐 허락되지 않는 활동(습식수채화나 식탁에 수저 놓기 등. 아니 수저 놓는 게 뭐 좋은 거라고!)을 하며 동생들의 선망을 받았고, 동생들을 크고 작게 챙기며 또래보다 의젓해보였다. 같은 연령대끼리만 있는 것보다 혼합반으로 있을 때의 장점이 더 많아보였다.
발도르프 어린이집을 흥미롭게 관찰하며 2주를 보냈다. 새로운 공간과 사람에 적응하는 건 고단하고 피곤한 일. 아이도 나도 9시면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래도 아침이면 어린이집에 간다는 생각에 설렜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건, 매일 숲에 간다는 것. 청명한 11월의 날들이었다. 숲에서 서로에게 낙엽을 뿌리고, 나무에 올라 부릉부릉 오토바이 타는 흉내를 내고, 경사진 길을 뛰어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아이들은 깔깔댔다. 경계심이 많은 편인 아이도 그때만큼은 아이들과 어우러져 깔깔댔다. 아이들을 지켜보는 그 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었다.
나의 어린이집 관찰기는 갑작스런 다리 부상으로 황급히 끝났다. 이제 아이는 할머니 손 잡고 어린이집에 간다.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고 문 안으로 쏙 들어간다, 망설임 없이. 아직 짧지만, 내게도 나에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육아의 2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