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지 않은 어린이집생활 03] 아이는 매일 울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은 한달을 채우지 못하고 끝났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광화문 집회와 맞물리며 폭발적으로 증가한) 코로나 사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어린이집에 원했던 것은 두 가지. 첫째, ‘인지교육이나 프로그램화된 놀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유아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신체, 사회성, 정서 등의 조화로운 발달을 이루는 전인교육의 시기. 지식을 목적으로 한 교육은 뇌 발달 단계에 맞지 않고 효과가 없을 뿐더러, 부작용이 더 크다 믿었다.
영어나 한글, 수학을 가르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교사 계획 하에 목적을 가지고 이뤄지는 활동들 역시 놀이를 가장한 학습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누리과정도 교사가 계획한 활동을 중심으로 놀이를 운영하지 않도록, 유아주도적 놀이가 중심이 되는 교육과정으로 개정된 터. 보기에만 그럴 듯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도적, 자발적으로 놀이하는 시간이 더 확보되길 바랐다.
둘째, ‘(자연 속에서) 바깥 놀이를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기존 누리과정은 유아의 놀이를 실내놀이와 실외놀이로 구분하고, 바깥 놀이인 실외놀이를 매일 1시간 이상 할 것을 권유한다. 더 나아가서 2019 개정 누리과정은 바깥 놀이를 포함해 놀이 시간을 하루 일과 중 가장 길게, 우선적으로 갖도록, 구체적으로는 하루 2시간 이상 확보하도록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아이들에겐 좁은 실내에서 생기는 불필요한 긴장 없이, 신선한 공기와 햇빛 속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정보육을 하는 내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앞 공원이나 숲으로 매일 산책을 갔다. 공원과 숲은 아이에게 대근육 발달, 감각 통합, 자연 관찰의 훌륭한 장이었다. 아이는 '이게 뭐야?'를 외치며 동동 뛰고, 열매와 나뭇잎을 모아 전시하고, 모래 구덩이를 만들거나 성을 쌓고, 놀이기구에 매달렸다. 비슷한 듯 다른 듯 놀이를 이어가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해갔다. 아이의 눈이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반짝일 때, 나는 그런 반짝임이 어린이집에서도 지속되기를 바랐다.
유아교육의 기본이라 믿었던 이 원칙들은, 그러나 현실에서 찾기 힘들었다.
오감놀이, 영어, 창의과학 따위의 이름을 붙인 특별활동을 하지 않는 어린이집은 없었다. '그래,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 1시간도 안되는데 뭘.'
하루 한 시간의 바깥 놀이는커녕 '근처 놀이터 바닥이 모래라, 산책은 매일 나가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곳도 있었다. 하루 20분 정도 겨우 아파트 한 바퀴를 돌고 돌아가는 곳도 있었다. '그래, 하루 잠깐이라도 나갔다오면 땡큐지.' 현실에 나를 맞추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입소한 어린이집은 코로나로 재원생이 줄어들며 아이의 반은 만0세와 혼합반이 되었다. 선생님은 연령대가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을 버거워하셨다. 바깥 놀이는 거의 지켜지지 못했다. 어린이집 내에 대근육 활동이 가능한 다른 공간은 없었고, 아이는 좁은 교실에서만 지냈다.
아이의 어린이집은 한 교재 교구 업체와 계약해 매주 커리큘럼에 따라 교재 교구를 받았다. 책을 읽고 내용에 맞는 스티커를 붙이거나 같은 것 끼리 줄을 긋고, 관련 교구를 가지고 활동을 했다. 10월 어느 주의 주제는 단풍이었다. 아이는 밖으로 나가는 대신, 떡갈나무 단풍나무 너도밤나무 사진에 각각의 열매 스티커를 붙인 교재와, 각종 나무의 그림과 이름이 새겨진 포스터를 받아왔다. 이 목적 지향적, 분절적 활동에 아이가 흥미를 느낄지, 3살 아이가 떡갈나무 단풍나무 너도밤나무의 사진을 보며 나무의 이름을 익히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매일 아침 울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적응하게 되어있다지만, 아이가 울면서도 어린이집에 가야할 이유에 대해 나 역시 확신하기 힘들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발도르프 어린이집이 개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탈진 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넓지는 않지만, 라주어 페인트로 칠한 파스텔빛 벽, 원목 가구와 자연물로 이루어진 장난감들, 도자기로 만든 식기... 따뜻하고 차분하고 아름다웠다. 정원이 적은 편이었고, 1분 거리에 숲이 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숲에 갔다.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 원비. 근처에 있는 역사가 깊은 발도르프 어린이집에 문의했다가 기함했던, 그리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던(쳐다볼 수 없었던) 원비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다음달에 입소할게요!' 그 자리에서 원서를 쓰고 돌아왔다.
발도르프에 대해 잘 모른다. 인터넷 검색과 발도르프 육아서 한권을 읽은 게 전부. 발도르프의 창시자 슈타이너가 어떤 사람인지, 인지학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아이가 주도적, 자발적으로 놀이하며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매일 바깥 놀이를 할 수 있기를 원했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발도르프 외에는 그런 곳을 찾기 어려웠을 뿐이다.
'너무 어렵게 가지 않겠다'며 발도르프를 포기했던 엄마는, 그렇게 돌고 돌아 발도르프에 왔다. 처음으로 아이를 혼자 들여보낸 날. '깨톡!' 선생님이 숲에서 노는 아이의 사진을 보내왔다. '저건 찐 웃음이잖아?' 입가에 미소가 실실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