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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Jun 22. 2019

더 근본적인 꿈을 꾸는 이가 덜 험난하길

서준식, 『서준식 옥중서한』

어쩔 수 없이 거쳐가야 할 각박한 싸움터 한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나는 원한을 간직하지 않는 사람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사람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경직된 개념과 결정론과 그리고 모든 종류의 배타적 소속의식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도피도 아닌 참된 정신의 자유를 지켜 나가기란 그 얼마나 어려운 노릇인가? 자신이 지금 노예가 아님을 환희에 넘쳐 확인하는 짧은 순간순간에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그 ‘노예가 아님’의 무시무시한 외로움을 나는 어떻게 이겨 나아갸 하는 것일까?
그것을 경과함이 없이는 크고 진정한 긍정에는 이르지 못할 것만 같은 어둡고 고난에 찬 부정 속에서 나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마음이 뒤틀리는 슬픔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일그러진 얼굴, 뒤틀린 마음만이 남은 채 끝끝내 크고 진정한 긍정에는 이르지 못하고 말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을 나는 어떻게 뚫고 가야 하는 것일까? (
서준식, 『서준식 옥중서한』,  589쪽)
  
각박한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 따위는 관념적인 영역에서 ‘이념화’되어 버리고-그것은 절박한 각박함이 어느 정도 해소된 조건에서도 ‘타성적으로’ 관념적으로 ‘이념화’된 채다.-나날이 현실적인 삶과는 무관한 저 높은 곳에 걸려 있으면서 ‘궁극적인’ 정당성과 정의로움을 담보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인식하는 사람들 속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의 일상적 실천의 아픈 구도를 거쳐서만 정당성과 정의를 확인해 가고 싶은 나는 고독하다. 
“정치의 위기적 상황은 때때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열광적 인물들을 필요로 하는데, 그런 인물들이 사려 없고 예의 바르지 못한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말은 일본 메이지유신의 큰 추진세력이었던 ‘지사’에 대하여 누군가가 언급한 대목이다. 지성보다도 억지와 고집이사랑이나 자비보다 냉혹과 난폭이고상한 영혼을 고통스럽게 다듬어 키워 나가는 인격자보다 야비한 시정잡배가정직보다도 교활과 위선이 상황에 따라서는 더 활개를 칠 뿐 아니라 실제로 역사의 발전에 더 기여할 수도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에 나는 이토록 괴로워해야 한다.
많은 외로움과 괴로움에 무겁게 억눌리면서 너무도 답답하게 숨이 막혀 올 때면 나는 ‘세상의 모든 어리석음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아 함께 끌어안고 신음한다’는 나의 신조를 때때로 까맣게 잊고,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려고 앞뒤 헤아리지도 않고 광폭하게 몸부림을 치곤 한다. 그리하여 몸부림치면 칠수록 나는 더욱 고립되어, 바닥 없는 고독의 늪으로 점점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 나는 이렇게도 깊이 병들어 버렸다. ((서준식, 『서준식 옥중서한』,  387-388쪽)

  




서준식은 23살이던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7년형을 살았다. 원래 형은 7년이지만 전향을 거부하여 다시 10년간 보안감호처분을 받았다. 출소 후 인권운동에 투신해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등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은둔하며 살고 있다는 것 외에 소식을 찾을 수 없다. 
  
17년간의 옥중 편지는 800쪽이 넘는 두꺼운 양으로, '민족', '자생', '전향', '종교' 등에 대한 젊은 날의 사색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의 편지는 두꺼운 양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선택에 대한 회한과 번민, 타협하지 않고 본질을 지키려는 자세, 거기서 빚어지는 고립감과 외로움, 인간 군상의 허위를 예리하게 꿰뚫어보는 날카로움과 그런 자신에 대한 자괴감, 가까운 가족 친지들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길 바라는 소망의 끝없는 실패... 그런 것들의 무거움 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나는 특히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절망의 양가감정 속에서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는' 어려운 길을 고뇌하는 심정에 자꾸만 마음이 갔다.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관찰하지 않으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깊은 사색 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 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이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지 않고 포용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면서 그에게 애정을 보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외롭지 않은 자가 온화하기는 쉽다. 그러나 속절없는 고립 속에서 괴팍해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적개심과 원한을 가슴에 가득 품고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란 쉽다. 그러나 적개심과 원한 없이 사랑하면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모두'가 아니면 '없음'을, 빛나는 영광이 아니면 파멸을 원했던 나의 오만한 마음은, 이리하여 지금 '없음'과 파멸의 심연을 바로 눈앞에 보며 쓰러져 있다. 악과 부정과 비열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악과 부정과 비열에 대한 증오에 대한 증오까지도 나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하고 나의 목소리를 쉬게 했다. 나의 마음을 비틀어 놓았다. ((서준식, 『서준식 옥중서한』, 569쪽)


그의 고독과 외로움이, 이를 만든 시대의 비극이 아프게 다가오면서도, 고립 가운데 철저한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길이 개인에게 너무 험난한 짐을 지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출소 후에도 때마다 현실을 넘어서려는 더 근본적인 길을 선택했고, 현재의 삶은 <서준식 옥중서한> 2008년 발행본의 서문에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독일로 ‘피난’ 온 지 2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한국 지인들과 소통을 끊고 과거와 거의 완벽하게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 나에게는 다만 사춘기 딸들을 위해 몸을 바친다는 목표 말고는 아무런 전망도 없었다. 전망이 없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 때로 외로움이 살을 저미는 듯 아프지만 이런 타향의 외로움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떠나오기 전 한국은 나에게 고통의 바다 그 자체였다. 4년 전 나의 삶의 두 기둥, 즉 ‘운동’과 ‘가정’은 한꺼번에 무너졌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무너진 폐허에 선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깊은 상처는 아물 줄 모른다. (인터넷 발췌) 



더 근본적인 꿈을 꾸는 이들이 덜 험난하게 사는 세상이길 바란다. 나는 기질적으로 어느 정도 선 안에서의 개혁을 꿈꾸는 미지근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세상과 불화할 가능성이 많은 어려운 길에 서있게 될수록, 믿을 만한 사람들을 쉽게 노선 등의 이유로 저버리지 말 것, 일상에서 유머와 낙천을 잊지 않을 것 등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서준식이 감옥에서 천착했던 인간 예수가 하나의 빛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한다. 서준식은 예수가 보여준 '가장 큰 것에도 굴복하지 아니하는 분노'를 '작은 것에 대한 기쁨'의 강렬함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보았다. (274쪽) 그에게 예수와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공동체는 악에 대한 분노와 가장 작은 것에 대한 사랑이 가장 완벽하게 융합된 형태였던 것 같다. 
  
지난 한 해는 또한 제가 획기적으로 예수에게 가깝게 다가선 해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인간의 ‘내적인 죄’에 대한 구제를 받겠다는 종교인들이야 무어라고 빈정거리든 말든, 저는 성서 속의 예수에게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예수를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많이 생각했고,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예수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로 말미암아 저의 이 서른다섯 살의 시점에서 하나의 새로운 정신적 지평이 열리고 있음을 저는 지금 감지합니다. 

어떠한 권위에도 기댐이 없이언어를 빼앗긴 죄인’(‘억눌린 백성이라 하건 땅의 백성이라고 하건 마찬가지입니다만)의 생생한 소원에 즉응하는 삶을 산 예수의 사랑이 권력자들에게는 반권력투쟁 지도자의 투지나 음모보다 훨씬 더 두려운 것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그것은 ‘이데올로기’나 ‘소속의식’의 홍수 한가운데를 헤쳐 가야 하는 제가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간직해야 할 진정 귀중한 교훈이요 좌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땅속에 들어갈 때까지도 이 좌표를 움켜쥐고 놓지 않을 것입니다. ((서준식, 『서준식 옥중서한』,  326쪽)
  
노년의 서준식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인생은 한번 뿐이라 시대의 소용돌이에서 피할 수 없고, 이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고, 어떤 길을 선택할 때의 빛과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시행착오나 상처를 거치지 않을 수 없고, 세상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없다. 문득 그 사실이 참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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