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 생존자의 수기10] 전업주부? 이제 내가 전업주부라고?
아이의 발달 고민에서 한숨 돌리자, 다른 우울이 손님처럼 찾아왔다.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고 퇴사를 했다. 일찍 태어난 아이를 좀더 살피고 싶었고, 임신 중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퇴사 후 소속이 없어지는 기분은 생경했다. 아이 이유식 재료를 사기 위해 생협 가입신청서를 쓰던 날, 직업란 맨 마지막줄 '전업주부'에 체크를 했다.
'전업주부? 내가 이제 전업주부라고?'
전업주부, 전업주부란 무엇인가. 정성껏 요리를 하고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며 아이의 필요를 24시간 채워주는 집안의 천사? 아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브런치를 즐기는 맘충? 경제활동에서 도태된 패배자 혹은 무상보육시대에 사라져가는 이름?
전업주부의 현실은 이랬다. 아이 밥은 열심히 차려도 내 밥 한끼는 차려먹기 힘들고, 집은 아무리 치워도 아이가 흘린 밥풀과 먼지, 장난감이 뒤엉켜 삽시간에 엉망이 됐다.남편에게 육아와 가사를 당당히 요구하거나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에 망설여졌다. 내 이름으로 맺어온 사회적 관계들이 사라지고 ‘좋은 엄마’에 대한 기준이 턱없이 높아졌다. 어린이집을 보내려고 알아볼 때, 아이 반찬을 살 때, 내 안의 누군가가 말했다. '너는 전업이잖아?'
가장 큰 문제. 알 수 없는 불안의 감정이 계속되었다. 지금 나의 상황은 뭔가 불완전하다고, 무언가 시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내 안의 누군가가 소곤거렸다.
'정신차려. 애가 건강히 크는 것만으로도 황송해하라구. 직장 다닐 때는 뭐 행복하기만 했어?'
내 안의 다른 누군가가 질책했으나, '정신차려'지지는 않았다.
'대학을 가라, 취업을 해라, 더 많은 성취를 하며 살아라' 16년간 받아온 교육의 메시지다. 근대 교육은 누군가를 돌볼 필요가 없는'자율적 개인'을 상정하고,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적 성취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몇 년전 한 지방 고등학교의 논술 캠프 강사로 갔다가 목도한 풍경. 1층 로비에는 학생들이 그린 포스터와 문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두가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보라' 그 모든 문구들은 (원하는 대학에 가겠다는) 성취와 성공과 상승을 열렬히 바라고 있었다. 그 캠프의 주제 책은 현병철의 <피로사회>였으니, 책을 든 손을 멋쩍게 바라볼 수 밖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성취, 성공, 상승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성공 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부류였다. 나의 직업이 가치있는 변화를 가져오길 바랐고, 그 고민에 월급과 직업적 안정성은 빠져있었다.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시작한 후에도 틈만 나면 탈주를 꿈꾸었다.
그러나 엄마라는 역할이 추가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남편은 직장과 학업으로 얼굴조차 보기 힘들고, 엄마는 교사, 공무원, 대기업 직원이 아닌 내게 '애나 잘 키워라' 말했다. 사회적으로 각광받지 못하는 나의 직업은 '애 낳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가족의 참여와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다시 일을 하려면 아이를 어린이집 연장보육반에 맡기거나 시간제 시터를 써야 했다. 박봉에 시터 월급을 제하면 얼마가 남지……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다 멈췄다. 혼자일 때와 달리 돌보아야 할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일을 지속하려면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했는데, 그건 대개 높은 연봉이나 안정성이었다. 내겐 높은 연봉도, 안정성도 없었다.
엄마가 된 후의 혼란은 나의 삶을 현실적 관점에서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전공, 연봉, 안정성, 가족의 상황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귀하의 일과 가정 양립 가능성 점수는 F입니다. 그냥 집에서 애나 잘 키우세요.'
재평가 결과는 참담했다. 나는 지난날의 나의 선택들, 세상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를 변화시키겠다던 바람, 불안정한 삶의 지반 위에서 삶의 기쁨을 가꾸던 나날을 부정하고 후회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때 교대를 갔어야 했는데. 난 잘못 살았어!!!'
나는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엄마가 된 후에도 경력을 이어가는 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들처럼 좋은 일자리를 가졌다면, 완전한 단절의 기로에 서지 않았다면, 우울을 피할 수 있었을까.
공무원, 교사, 은행원 등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의 시간경험을 분석한 책,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을 읽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침을 준비하며 아이를 깨우고, 아이 아침을 먹이며 화장을 하고, 아이 등교를 시키며 출근을 하는 그녀들의 아침 일과에는 '1분도 저기가 없다'(<기획된 가족>, 75쪽 양길연의 말). 조주은은 이들의 시간 경험을 단순히 '일과 가정에서의 이중부담'(위의 책, 45쪽)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일을 처리하며 시간을 관리하는 '압축적 시간 경험'(위의 책, 46쪽)으로 설명한다.
그녀들이 동동거리는 동안 남편들은 뭐했을까? '맞벌이면 육아와 가사는 같이 해야지' 인터넷의 얼굴없는 남성들은 말하지만, 현실의 맞벌이 남편들은 육아와 가사를 여성만큼 고민하고 책임지지는 않는다. 과거에 비해 참여도가 높아졌다해도, 여성에 비해 더 짧은 시간, 단순한 업무를 한다. 장보기와 식재료 확인하기, 요리하기 대신 설거지하기, 아이 일정 조율과 친구 관계 관리 대신 놀이터에서 놀아주기.
맞벌이 여성의 삶은 엄마가 되는 동시에 일을 그만둔 나의 단절감, 혼란과는 달랐다. 그러나 격무와 수면부족,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남편에 대한) 분노 등 다른 형태의 우울과 닿아있었다.
전업주부로 사나, 맞벌이로 사나, 모두가 덫에 걸린 것 같았다.
위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사회학 도서의 건조한 문장이 돌진해왔다.
이상적인 노동자는 '정확한 출퇴근 시간이라는 시간규범을 엄수할 수 있는 사람이면서 회사를 위해 24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위의 책, 165쪽)다. 곧 출산이나 돌봄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노동자가 디폴트값이라는 얘기. 이상적인 노동자상은 필연적으로 돌봄과 양육을 전담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근대의 공사 분리와 성별 분리는 이상적 노동자 규범과 동시에 이상적 어머니 규범을 만들어냈다.
이 규범은 성별 분리를 전제한 것이기에, 한 사람이 이상적 노동자이며 동시에 이상적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애초에 양립이 어렵다. 엄마로 살고 싶으면서도 일을 하고 싶었던 내가 처한 모순과 분열은 나만의 문제, 나의 탓이 아니었다. 내가 질 좋은 일자리를 가지지 못해서, 교대에 가지 않아서, 더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원래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고해서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로만 살라거나, 일을 지속하기 위해 엄마되기를 포기하라고만 할 수는 없다. 둘다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것 말고, 둘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이 가능할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하고, 세상에 기여하고, 나의 성취에 합당한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싶다. 동시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다.
그게 그렇게 힘든 꿈이었을까. 오늘도 진로검색, 자아분열, 후회, 불안 속에 도돌이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