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는 계속 변할 것이다

[산후우울증 생존자의 수기 11] 에필로그

by 쓸쓸

나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어려움


난생 처음 다리 깁스를 하고 누워있던 어느날, 나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엄마가 된 후의 우울증 이야기였다.


나의 이야기는 29주에 아이를 낳은 이른둥이 엄마의 이야기면서 아이가 아플 때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들의 이야기, 아이의 결함 교정이나 소질 계발을 위해 무엇을 할까 검색하는 엄마들의 이야기였다. 동시에, 해결되지 않은 '내면 아이'의 이야기면서 좋은 엄마라는 이상을 강요하는 사회의 이야기였다. 그 모든 이야기는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나의 우울증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그 이야기가 단순히 원가정, 내면 아이에서 비롯되는 치료 내러티브이길 원하진 않았다.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산후우울증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나와 분리된 담론이길 원하진 않았다.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를 지적하고 싶었으나 나를 단순히 피해자 혹은 희생자로 위치시키고 싶진 않았다. 치료 내러티브가 아니면서도 내면의 이야기이고, 사회문화적 이야기이면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저항하는 '생존자'로서의 모습이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한다? 나는 자주 미궁에 빠졌고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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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감정 속에서 우울을 마주하는 어려움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행복했다. 아이와 함께 한낮의 공원에서 신발 벗고 햇볕을 쬘 때, 아이가 공원의 온갖 열매들을 그러모아 의기양양해 할 때, 아이의 눈으로 세상의 빛나는 것들을 함께 바라볼 때, 새로운 기쁨의 순간들을 알게 됐다. 육아의 기쁨과 우울 사이를 넘나들며, 양가감정을 똑바로 마주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육아의 기쁨이 크더라도, 잊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병원 의사가 ‘엄마가 책 많이 읽고 자극 많이 주세요’ 말할 때마다 작아지던 어깨, 재활병원에서 마주치는 이른둥이 엄마들의 지친 얼굴, 그리고 육퇴 후에 쇼핑앱을 부유하던 새벽, ‘내일은 어디 가지’ 답 없는 질문을 반복하던 날들을. 좋은 어머니에 대한 신화를 유포하고, 그렇지 않은 어머니에 대해 비난을 서슴지 않는, 아픈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게는 더 높은 어머니의 이상을 요구하는, 사회의 민낯에 진저리치던 날들을.



나의 이야기는 갱신될 것이다


글을 쓰며, 수잔 브라이슨의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를 읽었다. 수잔 브라이슨은 성폭력과 살인미수를 겪은 후 자신의 트라우마에 관한 글을 썼다. 그의 글은 정돈되거나 일관적이지 않았고, 그의 이야기는 계속 변해왔다.


'나는 좀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트라우마와 회복 과정에서 생겨난 일들을 말할 수 있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내가 전해준 이야기는 계속해서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었고, 어떤 측면에서는 정돈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끊임없이 다른 내용으로 수정되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수정될 수 있는 것이었다. (...) 한 사람의 과거는 자신의 삶의 새로운 측면이 드러날 때마다 끊임없이 변화해간다.' 244쪽


정돈되지도 일관되지도 않은 나의 이야기 역시, 계속 변해갈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한편으로는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어머니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규범들과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는 어머니들’(이진희(2015),『페미니스트 관계적 관점에서 본 좋은 어머니되기와 산후우울증 마우트너의 논의를 중심으로』)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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