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너를 만났다
*김혜진의 소설 "너라는 생활"을 읽고 쓴 픽션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유아차를 힘껏 밀고 들어가, 7층 버튼을 눌렀다. 이곳에 다시 온 게 몇 년 만이지? 정확히 십년 전인가. 갓 돌이 된 첫째를 유아차에 태우고 주1회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닌 게. 문화센터 프로그램이라고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정기적으로 갈 데가 있다는 것, 좁은 아파트에 갇힌 고립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는 것, 옷장 안에 그나마 괜찮은 옷을 꺼내입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 ‘정도’의 만족감을 제공하기 위해 백화점은 기꺼이 바닥의 모든 턱을 없애고, 널찍한 수유실과 화장실을 만들고, 유아차 여러 대가 들어가도 공간이 남는 엘리베이터를 운행했다. 이곳에서 소비자로 존재할 뿐이라 해도 괜찮았다. 초보 엄마라는 강력하고 무거운 정체성을 잠시만 잊을 수 있다면, 하루 종일 나만 바라보는 아이의 팽팽한 관심에서 살짝 비껴날 수만 있다면.
지금은 달랐다. 나의 일상은 첫째, 그리고 첫째를 키우면서 맺은 관계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둘째에겐 엄마와 팽팽하게 둘이서 관계를 맺을 기회가 없었다. 둘만의 관계가 버거워 문화센터로 도망치듯 가지 않아도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또다시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등록하고 만걸까. 관성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의 일반적인 로드맵을 착착 실천하지 않았을 때의 불안을 감내하기보다는 그렇게 했을 때의 편안함을 얻으려는 끈질긴 관성. 그놈의 엄마로서의 찜찜함 때문이기도 했다. 고맘때 첫째에게 기울였던 관심의 반도 둘째에게는 주지 않고 있다는 찜찜함, 둘만의 시간과 추억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찜찜함. 십년 전에는 둘만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문화센터에 갔는데, 이제는 둘만의 관계를 찾고 싶어 문화센터에 간다고?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띵동’ 소리와 함께 7층 문이 열렸다. 문화센터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훅 들어왔다. 아, 내가 어쩌자고 이 곳에 다시 온 거지. 후회의 감정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너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학 시절에도 먼저 다가온 건 너였다.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다른 동기들과 달리, 너는 나처럼 서울 변두리에 있는 집에서 통학을 했다. 나의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네 정거장만 가면 너의 집이었지만, 너와 하교를 같이 한 적은 없었다. 대학 신입생이 되자마자 너는 CC가 되었고, 남자친구가 늘 너와 등하교를 함께 했으니까.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2호선 환승역에서 너와 마주친 건 네 남자친구가 입대한 직후였다. 너는 남자친구가 입대한 날의 이야기, 남자친구에게 쓰고 있는 편지 이야기를 했고, 내 대학 생활과 친구들에 대해 물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하교를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다. 수업이 같은 요일에 수업을 마친 후 자연스레 같이 가다가, 수업이 다른 요일에도 서로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지하철을 타곤 했다.
나는 네가 좋았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자연스러움, 대화를 이끄는 편안함, 말갛고 오목조목 균형 잡힌 얼굴. 너와 함께 있을 때면 네가 특별히 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너에게서 눈을 떼 교정을 걷는 다른 얼굴을 바라보면, 다른 얼굴들이 어딘가 모르게 균형이 깨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시 너의 얼굴을 바라보고, 놀랍도록 균형 잡힌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황홀함을 느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네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것에 으쓱해졌다.
너와의 하교길은 오래 가지 못했다. 복학생 선배의 꾸준한 고백을 네가 받아주면서부터였다. 너의 하교길은 다시 다른 남자의 차지가 되었다. 물론 너는 캠퍼스에서 마주치면 먼저 반갑게 인사를 했고 다정하게 안부를 물었다. 연락을 주고받거나 숙제를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의 밀도는 아니었다. 복학생 선배의 손을 잡은 네가 해맑게 인사를 걸어올 때면, 너의 손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너의 손이 내 안에 이해할 수 없는 수치심을 불러일으켰으므로. 나는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생각했다. 왜 그때는 새 남자친구가 생긴 너 앞에서 ‘쿨’해야 한다고, 질투심을 내보이면 안된다고 믿었던 걸까. 하지만 내가 속에 있는 것들을 내보이려고 할 때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거나 설상가상으로 눈물 몇 방울을 떨굴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건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는 일이었다. 목소리를 떨거나 울지 않고도, 주변의 공기를 엄숙하게 만들지 않고도, 내 마음과 원하는 바를 적절한 수위로 전달할 수 있는 스킬은 더 많은 관계 속에서 더 많이 좌절한 후에야 구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표현되지 못한 마음은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부풀어올랐다. 너와의 하교길을 지속할 수 없다는 서운함이 너의 ‘남친 환승기’에 잠시 이용당했다가 버려졌다는 피해의식으로 발전할 무렵, 과 안에서는 너에 대한 평판이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남친이 입대한지 얼마 안되어 새로운 남친을 만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전남친과 현남친이 과 선후배 사이라는 것이었다. 한 복학생 선배는 네가 과 선후배 사이에 분란을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날선 발언을 뱉었다. 나는 그들의 말에 수긍하지도 대항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학교에서 너를 만나면 인사를 했고, 너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다가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먼저 다가온 건 너였다.
“어머, 은정아! 은정이 맞지?”
여전히 균형 잡힌 얼굴이었고 살가운 태도였다. 나는 눈만 깜빡거렸다.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사람을 마주칠 때 걸려오는 버퍼링이었다. 이건 너무 의외의 만남이 아닌가? 대학 동기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마주친다고? 가까스로 나는 대학 시절 나와 네가 가까운 동네에 살았고, 지금도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듯 너도 그럴 수 있겠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또다시 물음표가 솟았다. 영유아 대상 문화센터에서 마주치기엔 너와 나는 나이가 너무 많지 않은가. 엄마가 되었다는 혼란과 흥분을 고스란히 담은 채 분주히 유아차를 미는 이 7층의 여자들과 달리, 우리는 이미 40대 중반이 아닌가.
너의 얼굴과 네 유아차 속에 잠들어있는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 후 내가 물었다.
“너도 늦둥이 둘째인거야? 아니면 셋째?”
너는 눈가에 주름을 잡힌 채 수줍게 말했다.
“아, 내 조카야. 오늘 내가 휴가라 동생 대신 문화센터 데리고 온 거야. 동생이 여기저기 안아픈 데가 없다길래 집에서 좀 쉬라고.”
조금 뜸을 들인 후 너는 말을 이었다.
“나는… 애가 없어. 시험관도 여러번 했는데 안생겨서… 지금은 포기했어.”
오랜만에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다는 어색함도, 가끔 꿈에서 생생하게 재현되곤 하던 너에게 버려진 듯한 서운함도 와르르 무너진 건 그 순간이었다. 그 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둘째가 생기지 않아 오래 고생했다고, 십년 가까이 버리지 못했던 첫째의 육아용품을 다 나눠주고 깨끗이 마음을 비웠더니 거짓말처럼 둘째가 찾아왔다고…. 그 말을 하면서 내가 너의 손도 잡았던가? 그 사이 너의 조카는 잠에서 깨어 칭얼거렸다. 나는 너의 조카를 안아 달래고 떡뻥을 쥐어주었다. 너는 내 노련함에 감탄을 표하고 내 연락처를 묻고는 늦겠다며 자리를 떴다.
너가 떠난 자리에 정적이 싹텄고, 정적 속에서 내가 뱉은 말들의 잔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도 마음 편히 먹으면 잘 될 거라는 알량한 조언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나의 이야기들이 그와 다를 건 또 뭔가. 내가 어렵게 가진 둘째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너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너에 대한 오랜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졌구나. 무엇에 졌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나는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