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A
언니 이야기는 오랫동안 집안의 금기였다.
“그때는 왜 그렇게 공부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공부를 못하면 기대나 안했을 텐데, 공부를 너무 잘하니까….”
내가 아이를 낳은 후에야, 엄마는 조금씩 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에 대한 엄마의 이야기는 “그때는 왜 그렇게 공부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로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그 짧은 문장을 엄마가 얼마나 오래 곱씹었는지 나는 묻지 못했다.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사이, 각자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쌓여 있었다. 내가 내밀히 쌓아온 이야기는 내가 엄마 아빠의 하나 남은 자식이라는 부담이었다. 스물한살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이 했던 말, “언니 몫까지 두배로 열심히 살아라”라는 말을 몹시 구리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은 내 몸 어딘가를 돌아다니다 삶의 굽이마다 피어올랐다. 끝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서, 엄마 아빠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지지 못해서, 살갑게 가족 행사를 챙기지 못해서… 미안함과 딱 그만큼의 부담스러움이 뒤섞인 채로 오랫동안 엄마 아빠를 대해왔다.
엄마가 쌓아온 이야기는 나의 것과 달랐다. 하나 남은 딸은 엄마가 살아가는 이유였기에, 나를 향한 엄마의 관심에는 부담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언니 몫까지 두 배로 열심히 살”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언니가 떠난 후 엄마는 내게 좋은 대학, 사회적 성공, 번듯한 남편감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남들 눈에 멋질까’와 ‘어떻게 하면 딸이 행복하고 편안할까’ 앞에서 엄마는 갈등하면서도 늘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자식이 별 일없이 부모 곁에 살아있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야? 근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하잖아. 난 너한테 바라는 게 없어. 욕심이 날 때도 있긴 했지. 그래도 네가 행복하게 살면 그걸로 됐어.”
나는 엄마의 이 말이 엄마의 온 생애를 걸고, 생애를 관통해온 고통을 걸고, 일찍 잃은 딸의 존재를 걸고 하는 말임을 안다. 자식이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를 대리하는 존재가 아니며,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깨달음의 발로임을 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존재 자체로 고마워한다는 사실 앞에서 까닭 없이 당당하게 된다. 엄마가 만들어준 성공과 성취 바깥의 완충지대 덕이다.
Side B
누군가 ‘단지 너의 행복을 바랄 뿐이야’라고 말할 때, 그 말에는 약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너의 행복이 무엇인지 내가 정의할 수는 없지만 네가 행복하다고 하면 그걸로 됐다는 ‘쿨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연기든 진심이든. 엄마는 쿨함을 연기할 수 없었다. 엄마는 하나 남은 딸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할 태세였다. 엄마는 내가 상처와 고통을 모르는 말간 얼굴로, 더 이상 건강할 수 없는 몸으로 살기를 바랐다.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어’라고 말할 때, 엄마의 말은 맹렬하고 끈적끈적했다.
사라 아메드는 <행복의 약속>에서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해’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지’, ‘네가 그러면 나도 불행해’, ‘네 불행이 내 행복을 위협해’, ‘넌 날 위해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어’…. 행복은 “상호열망을 주고 받는 방식이자 상호성의 언어로 강압을 실행하고 감추는 형식이기도 해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행복해야 하고, 그가 나와 기꺼이 똑같은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려 해야 한다.
엄마가 바란 행복은 성공에 대한 일종의 대항 담론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바란 행복은 성공에서 멀어진 대신, 중산층 기혼 여성의 행복 판타지로 빨려 들어갔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실제 삶이 그렇든 그렇지 않든, 행복의 이미지는 언제나 정상가족 판타지와 연동되어 왔으니까. 사이좋은 배우자와 사랑스러운 아이들, 신도시의 '국평' 아파트와 쾌적한 공원, 이런 이미지는 TV광고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도 있다. 정상가족 판타지는 가장 주류적인 담론이지만, 천역덕스럽게 대항 담론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조건 없이 맺는 관계과 ‘진정한’ 행복이 가능한, 유일한 도피처의 얼굴을.
엄마는 오랫동안 옆집에 살던 여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 엄마는 참 예쁘게 살아.” 그는 공기업에 다니는 인상 좋은 남편과 아이 셋을 키우며, 평일 낮에 헬스클럽에 다니는 전업주부였다. 그의 하루가 고강도 웨이트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종종거림의 연장이라 해도, 그의 벚꽃 나들이가 차 댈 곳이 없어 주차장을 빙빙 도는 시간들과 형편 없는 맛의 소떡소떡으로 끝났다고 해도, ‘오늘의 집’에 나올 법한 그의 무광 화이트 싱크대가 쉼없는 걸레질을 부르는 주범이라 해도…, 엄마는 알 수 없다. 물론 옆집 여자는 자신의 삶에 누구보다 만족하며 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옆집 여자의 삶이 어떠하든 엄마는 옆집 여자의 삶을 ‘참 예쁘게’ 사는 것으로 보기로 선택했다는 것이고, 그 외의 것은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내가 일하거나 글 쓴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운동이나 다니고 애나 잘 보면서 살기를 바란다. 물론 그러한 전업주부의 삶은 중산층에게 한정된 판타지고, 내가 이러한 판타지에 접근할 수 있는 것조차 엄마가 식당 경영과 부동산으로 자산을 증식한 덕분이다.
옆집 여자의 세 아이로 대표되는 삶은 엄마가 이룰 수 없었던 꿈이다. 엄마는 내가 그저 행복하기를, 그리고 그 행복을 가정에서 찾기를 바란다. 나는 엄마에게 행복이라는 "덮개"(<행복의 약속>)가 필요한 거냐고 묻고, 엄마는 나에게 불행하기를 바라는 거냐고 묻는다. 나는 불행이 아니라 불행을 이해하는 더 나은 방법을 원하는 거라고 말하고, 엄마는 그런 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일흔이 넘은 엄마는 예전처럼 맹렬하고 끈적끈적하지 못하다. 나는 남편과 크게 싸우고 이혼을 상상한 어느날, '(엄마 또래) 여성의 평균 수명'을 검색하는 나 자신에게 흠칫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