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서 홍보 활동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부채감으로 인스타에 가입했다. 별세계에 빠져 남의 피드를 구경하다가, 그걸 구경하는 나를 지켜보다가, 인스타는 무슨…. 조용히 접기로 했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인스타에는 두 부류가 있다.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하는 부류와 자신의 소박함을 과시하는 부류. 전자가 명품 로고가 박힌 가방을 교묘한 각도로 보여주거나 테이블 위에 (명품 키홀더에 끼운) 차키를 무심하게 툭 올려놓는다면, 후자는 군더더기 없는 화이트 앤 우드 인테리어, 제철 음식을 정갈한 도자기 그릇에 차려낸 식탁, 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뒷모습 같은 것들을 전시한다. 아, 린넨 앞치마도 빼놓을 수 없다. 하얀 셔츠(김치국물이라도 튀면 어쩌려고?)에 거친 촉감이 느껴지는 린넨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에 열중하는 여성의 옆모습 같은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들은 #미니멀라이프, #소박한살림, #자연주의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유통된다. 이 해시태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해시태그를 꼽자면 #미니멀라이프 일 것이다. 미니멀라이프는 미니멀리즘(최소주의) 철학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미니멀라이프의 스펙트럼은 소유를 단순화해 반소비주의적 가치를 실천하는 신념, 불필요한 것을 줄여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라이프스타일, 하얀 벽지와 군더더기없는 미드센츄리 가구로 대표되는 인테리어 등으로 다양하게 퍼져있다. 최근에는 널찍하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집, 흰색 커텐, 발뮤다 토스터기, 아보카도 샐러드, 나무 식기, 소창 행주 등의 아이템으로 대표되는 미니멀라이프 유튜버 공식이 “미니멀리즘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미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래도… 예쁘긴 예쁘다. 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린넨 재질의 의류다. 특히 아이보리, 베이지, 브라운 톤의 린넨에는 매번 눈이 돌아간다. 린넨은 마의 일종인 ‘아마’라는 식물의 줄기로 만드는데, 기원전 1만년경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사용된 소재라고 한다. 통기성이 뛰어나고 땀에 젖어도 금방 마르는 반면 구김이 심한 것이 단점인데, 내추럴하고 빈티지한 무드가 유행하면서 구김마저 사랑받고 있다. 일찍이 데이비드 브룩스는 ‘보보스’(자본을 사랑하는 부르주아와 자유를 사랑하는 보헤미안의 정신을 모두 지닌 사람들)를 묘사하며, 이들의 소비 규칙 중 하나를 "거친 것은 진정성이고 미덕이다"라고 말했는데… "매끄러운 플라스틱 장난감보다는 울퉁불퉁한 나무 장난감을, 매끄럽고 화려한 도자기보다는 까끌까끌하고 투박한 도자기를, 매끈한 튤립보다는 거칠고 특이한 야생화를", 그리고 "비단이 아닌 무명" 셔츠를 좋아한다는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쩐지 그렇게 린넨 옷이 갖고 싶더라.
아, 나는 린넨 앞치마를 갖고 싶지는 않다. 린넨 앞치마가 약속하는 것들- ‘집안의 천사’로서 집을 정갈하게 가꾸고 가족을 위해 요리하면서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기혼 여성의 이미지-에 나는 더이상 관심이 없다. 대신 나는 린넨 셔츠가 갖고 싶다. 가정 안에 붙박힌 존재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반물질주의적, 생태적이면서도 문화적으로 세련된 개인으로 보이고 싶다. 동시에 나는 린넨 셔츠를 따로 분리해 세탁하고 다림질할 에너지가 없고, 그걸 입고 나갈 데도 없다. 그래서 여름이면 온라인쇼핑몰의 린넨 의류를 기웃거리다가도 만만한 면 티셔츠를 구매한다.
<단순한 열망 : 미니멀리즘 탐구>의 저자 카일 차이카는 자기 계발에 초점을 맞춘 오늘날의 미니멀리즘이 오히려 자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단순해보이는 물건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는 또 하나의 계급 의존적 방식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침실은 깨끗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 여전히 형편없다.” 나는 린넨 셔츠를 입거나 옷의 색상을 단순화하는 것으로 혼란한 세계에 대응하려 하지만, 나의 대응은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미니멀라이프 인플루언서가 제공하는 상업화된 미니멀리즘의 환상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넋을 놓고 피드를 내리다, 서둘러 인스타 화면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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