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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Aug 25. 2022

어머니, 저 그냥 '엄마'라고 부를게요

시부모님과 같이 산다는 것

"시부모님이랑 같이 살면 불편하지 않아?"

"시부모님이랑 산다니 대단하다."


  시골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하면 으레 듣는 말이다. 사실 말이 같이 사는 거지 시부모님 집과 우리 집은 마당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다.(두 집 사이에는 별이 집이 있다) 이 집에 들어와 살기로 결정했을 때는 호기로운 이십 대였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오빠가 곁에 있는데 뭐가 대수랴. 이십 대의 사랑은 눈앞에 '핑크빛 꽃길 필터'를 만들어냈고, 필터에 더해 오빠와 함께 있으면 무슨 일이든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강력한 주술까지 걸렸다.


  사람들이 또 물어온다. "따로 살아도 불편하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어색했다. 신혼 초에는 어디서 주워들은 '출필고 반필면(出必告反必面)'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 들어가면 가방이고 옷이고 허물 벗듯 던져 넣고 "엄마, 배고파"부터 외쳐놓고는 며칠 만에 시부모님 앞에서는 조선시대 양갓집 규수인 양 굴었다. 어쨌든 출근할 때는 출근한다고 인사를 드려야 하나? 퇴근하면 퇴근했다고 인사를 드려야 하나? 과일을 못 깎는데 과일 먹을 때는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하나? 어머니가 저녁식사 준비를 할라치면 그럼 반찬이라도 한 가지 해와야 하나? 바깥에서 일을 하시면 도울 일은 없느냐고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행동과 말을 점검하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고민을 했음에도 나도 모르게 생각과는 다른 행동이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는 돌아서서 '아까는 이랬어야 하는 거 아닌가', '버릇없다, 예의 없다 생각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뒤를 이었다. 일상에서 계속되는 자기 점검과 의식적인 행동들은 몸을 불편하게 했고, 피로했고, 주눅 들었다. 마치 남의 집에 객이 한 명 끼어들어와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 기분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불러야 하는 일이었다. 거의 두 달 동안 '어머니', '어머님', '아버지', '아버님'을 일관성 없이 사용했다. 드라마에서나 들었던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단어는 도통 입에 붙질 않았다. 그 와중에 잔망스럽게 '엄마', '아빠'라는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29년을 키워 준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입을 떼기 시작한 순간부터 입에 찰싹 달라붙어있는 말인 것을 어쩌랴. 그럴 때는 어색해서 뒷말을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그런데', '있잖아요', '혹시' 같은 말로 대신했다. 하지만 시부모님을 불러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결혼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 나는 온 가족이 저녁 먹는 자리에서 선언했다.  


  "어머니, 저 그냥 '엄마'라고 부를게요. 아버지는 '아빠'라고 부를게요!"


   10년이 지난 지금 떠올려도 귀가 뜨거워진다. 그래도 그때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내가 싫어 질릴지경이었다. 되바라진 며느리의 과감한 명명식은 벼락같은 효과를 몰고 왔다. '엄마'라는 말의 힘일까? 불편했던 자세는 자연스러워졌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질문들도 한결 줄어들었다. 내가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러주었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로 와서 '시엄마'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남들보다 자연스러운 고부(姑婦)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가족이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담도 울타리도 없지만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이웃.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부탁은 정중하게, 배려에는 생색이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시부모님께서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신다. 아들 며느리 집이라도 함부로 출입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정중하게 부탁해오신다. 배려는 또 어떻고. 나가는 길에 버리려고 집 앞이나 차 옆에 쓰레기를 놓아두고는 하는데 어느새 보면 없어져있다. 그럼에도 "내가 쓰레기 갖다 버렸다" 말씀 한 번 하 않으신다. 눈앞에 잔소리할 거리가 천지인데도 '다 알아서 하겠지'하며 지켜봐 주신다. 그 거리는 난로를 쬘 때처럼 적당해서 부담스럽지도 서운하지도 않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 뜨거워서 상처받고, 또 너무 멀어지면 멀어지는 대로 속상할 텐데 우리가 가족이자 이웃으로 유지하는 거리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그저 따뜻하다.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며 우리 부부는 옹골차게 익어가고 있다. 모자라고 게으른 아들 며느리를 보는 속마음은 어떨지 헤아릴 수 없지만, 잔소리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시니 제 발 저린 도둑들은 부모님 덕에 조금씩 나은 부모가 되고 있다. <법구경>에 "향을 쌌던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것처럼 사람은 다 조금씩 물들어 그것을 익히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는 줄 모른다"는 구절이 있다. 어질고 현명한 이를 가까이하면 도의 뜻이 높아지고 어리석은 이를 벗하면 재이 온다는 뜻다. 시부모님은 나를 향내가 나는 인간으로 만들어주신다. 내가 부모님처럼 현명하고 어진 사람이 되면 나를 보는 아이들은 또 향내가 나는 사람으로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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