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람 Jun 24. 2022

이불 빨래 얼마 만에 한 번씩 하세요?

절로 되는 집안일은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 '건강상태 자가진단' 항목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다음으로 오늘 날씨를 확인한다. 최고 온도를 확인하고 아이들 옷을 어떻게 입혀 보낼지 생각한다. (일교차가 큰 봄가을에 기온 체크는 필수다!) 지난주 내내 습하고 찌는듯하더니 이번 주에는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내일 비 올 확률이 80%라니. 마음이 바빠진다.


  시골 주택에서 추운 겨울을 나려면 극세사 이불이 필수다. 인테리어고 뭐고 없다. '블랙 앤 화이트'를 콘셉트로 모던한 인테리어를 추구했던 집은 애저녁에 사라졌다. 무거운 극세사 이불에 폭 싸여 자는 기분이 얼마나 좋다고. 딸은 극세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낡을 대로 낡은 내 극세사 잠옷을 애착 이불 삼아 안고 잔다. 침대를 둘러보니 극세사 이불과 봄가을용 차렵이불이 뒤섞여 빨래가 산더미다. 도심보다 2~3도 낮은 기온 덕에 겨울 이불은 늦게 들어가고 빨리 나온다. 6월이 되자마자 여름 침구를 꺼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마음만 먹고 3주가 지나버렸다. 부피도 크고 무거운 침구를 정리하고 넣는 일은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혔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해가 쨍쨍하다. 바람이 좀 부는데 이불이 넘어질 정도는 아니다. 그래 오늘이야! 아침부터 세탁기를 내리 돌렸다. 세탁기를 세 번째 돌릴 때에는 괜히 세탁기한테  "오늘 일 너무 많이 시킨다. 미안해" 했다. 극세사 이불은 부피가 제법 크고 무거워서 세탁기에 넣을 때도 아무렇게욱여넣으면 빨래가 되지 않는다. 이불을 뒤집어서 길게 1/3로 접고 동글동글 말아서 세탁기에 넣는다. 안방, 아들방, 딸방 이불 세 채와 깔개까지 21kg 세탁기가 종일 돌았다. 전자제품은 '거거익선'이라는데 이다음에 세탁기가 고장 나면 꼭 24kg짜리를 사야지 다짐했다.


  난 정말 살림을 못하는데 이불 빨래만큼은 진심이다. 2~3주에 한 번씩 빤다. 베개에 벤 머리 냄새도 싫어서 베개 세탁도 자주 한다.(우리 엄마가 이 걸 아셔야 하는데) 몇 년 전 봄, 미세먼지가 너무 심했다. 빨래를 너는 동안 눈이 따끔거려 서 있을 수 없었고, 그 공기 중에 빨래를 널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 해 건조기를 구입했고, 21세기 들어 가장 훌륭한 소비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불은 뜨거운 햇볕에 말려야 제대로 소독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불 빨래는 꼭 날씨를 체크하면서 한다. 구름도 없이 해만 동그랗게 뜨는 날을 골라서. 말리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으면 낮에 볕에 널어두었다가 건조기 '침구 털기' 기능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불을 빨거나 서랍을 정리하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도 모르는데. 이렇게 힘들게 어깨에 이고 지고 널었다가 개켰다가 꺼냈다가 정리했다가 아무리 해도 티도 안나는 일. 지긋지긋하다 정말. 오늘도 이 일을 몇 번 반복하니 마지막 매트 세탁 때에는 욱이 올라왔다. 그래도 어쩌랴.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드디어 세탁기가 멈췄다. 바람에 살랑거리며 소독되고 있는 이불을 보니 뿌듯하다. 아이스커피를 한 잔 탔다. 좋구나. 글을 쓰면서 문득 궁금해져서 '이불 빨래 주기'라고 쳐보았다. 응? 이게 뭐지?




아니 이 힘든 일을 일주일에 한 번 하라고?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오늘 침구가 뽀송뽀송한가요? 아내와 엄마에게 한 마디 건네주세요.

"여보, 오늘 고생했겠네."

"엄마 매 번 고마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