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대답하고 싶습니다

INFJ의 해방일지 (3)

by 재희


“오늘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


취향이 흐릿한 사람이라, 제일 취약한 질문 유형이 좋아하는 걸 묻는 거다. ‘딱히 없는데…’ 한 마디 대답할 수 있지만 매번 그러는 것도 민망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숙고(熟考)에 들어간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좋아하는 음식 메뉴를 머릿속에서 훑어보며 그 메뉴를 생각할 때 나의 마음이 어떤지 비교해본다. 그리고 2~3개 정도 메뉴가 파이널 라운드를 겨루고 있을 때쯤이면 아내가 말한다.


“아, 그냥 빨리 좀 말해봐!”


속된 말로 ‘진지충’에 해당한다. 아내는 저녁 식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볍게 물은 건데, 저녁식사 기획안을 쓰고 있으니…


일부러 진지하려는 건 아닌데 욕구나 성향이 선명하지 않다 보니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최근엔 회사 동료가 이런 질문을 했다.


“오늘 행사에서 뭐가 제일 좋으셨어요?”


음… 난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으로 훑으며 좋았던 장면을 떠올리려 애썼다. 대충 대답해도 되는데 굳이 그런다. 감각, 감정이 무딘 이유도 있는 것 같고.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강한 것 같다.


동료는 그냥 가볍게 행사 소감 정도 물은 건데, 나 혼자 다큐를 쓰고 있다.


최근 만났던 상담사는 ‘빨리 답변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말해보라고. 하지만 생각이 가볍게 안 떠오르는데 난들 어떡하나.


암튼 그 후로 대충, 빠르게 대답해보는 훈련에 임하고 있지만, 성과는 썩 좋지 않다.


대충이 어려운 사람… 그런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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