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을 상상합니다

INFJ의 해방일지 (4)

by 재희

초등학생 아들과 밥을 먹을 때 난 수시로 아이의 물컵을 식탁 안쪽으로 밀어 놓는다. 컵을 실수로 건드릴까 불안해서.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때 가급적 행사 이틀 전에는 도착할 수 있도록 요청한다. 택배가 늦어지더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지하철 출발시간 5분 전에는 역에 도착할 수 있게 시간을 계획한다.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뭐든 최악의 상황이 자연스레 상상된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위험요소라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모든 상황이 예측 가능해야 안심이 된달까.


“왜 이렇게까지?” 싶은 피곤한 스타일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완벽한 준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계획하고 준비해도 인생은 내 뜻대로 안 된다. 오히려 예측 못한 상황에 대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아들이 물컵을 쏟아도 화내지 않고 안심시키고, 지하철을 놓쳐도 짜증 내지 않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마음과 태도가 삶을 평화롭게 한다.


완벽한 상황에 집착하면 모두가 완벽히 불안하고 불행하다. 철저히 준비하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인정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가지는 것. 나와 가족과 동료가 함께 편안하기 위한 요건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 그 요건을 갖추게 될 것인가… 갈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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